역도라는 스포츠는 이를테면 가장 스포츠다운 스포츠랄 수 있다. ‘역도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이르듯, 역도에는 경쟁자와 겨루며 같이 달릴 트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고 승부 역시 제일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 분명히 결정된다. 복잡한 룰 없이 그야말로 원초적인 기량만을 겨루는 경기. 외로운 스포츠지만 그만큼 정직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킹콩을 들다> 역시 이러한 역도의 정직한 특성을 정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그 면면 역시나 무척이나 정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 변명의 여지없이 이 영화, ‘신파’다.
영화는 시작부터 두 명의 패배자를 보여준다. 한 명은 88서울올림픽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동메달리스트라는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해야 했던 이지봉(이범수)이며, 또 다른 한 명은 금메달이 확실시된다는 섣부른 부채질 때문에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숨기면서까지 2008베이징올림픽 출전을 감행하고야 마는 박영자(조안)다. 은퇴 이후 역도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허덕이는 ‘패배자’ 이지봉, 그리고 이미 패배가 예견된 도전에 무리하게 몸을 맡긴 ‘예정된 패배자’ 박영자가 각각 대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에서 영화의 도입부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리고 1992년, 전병관 선수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 역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덕분에 이루어진 이들의 만남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패배를 딛고 일어서려는 루저와 또 다른 어린 루저들의 눈물어린 도전기로 자연히 연계된다.
그러나 이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역도의 ‘역’자도 모르는 풋내기들을 데리고 역도부를 만들었으니 특훈에 특훈을 거듭해도 모자랄지언대 코치 이지봉은 박영자를 비롯한 보성여중 역도부원들에게 영화의 러닝타임이 1시간을 넘어설 즈음까지도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역도부 코치로 부임한 그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은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취사시설을 마련해 주고, 보살펴 주는 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기숙시설을 마련해준 것뿐. 역도에 일생을 걸었다 배신당한 그는 이제 역도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아 학생들이 공부하고 먹고 잘 수 있는 터전을 일굴 뿐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듯이 그는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대로 평온하고도 의미 있는 침잠을 갈구한다.
왜? 역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그럴싸한 자위여구. 이지봉의 말마따나 설사 세계대회에서 신기록을 세웠다고 해도 사람들은 농구대잔치 예선에 더 열광할 것이다. 영광은커녕 세계 3등의 성적조차 축구 예선 도중 아나운서의 코멘트 한 마디와 자막 한 줄로 대체되는 역도의 참담한 현실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툼한 약봉지로써 맞닥뜨리는 지봉에게 역도란 절대로 배워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워서 득 될 거 하나 없는 그런 것, 배우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은 것. 결코 쉽지 않고 무엇보다 어렵지만 그나마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몸 다치고 돈 못 버는 스포츠, 그게 바로 역도란 얘기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결코 제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배운 것도 없이 도내대회에 출전해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하고 돌아온 소녀역사들은 읍소한다. 소녀들은 이제 역도를 배워야 한다, 배우고 싶다 한다. 그리고 지봉은 자신의 인생을 망친 그 역도라는 경기를 다시금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가르치며 맞닥뜨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그들은 어깨 위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를 역도를 통해 들어올리기로 마음을 굳힌다. 단 하나의 장점도 찾을 수 없는 역도의 완전무결한 단점을 알고도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의 막이 오른 지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시점부터 진행되는 이들의 본격적인 도전기가 매순간 눈물범벅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불가능한 신화를 일궈내기 위한 이들의 도전에 더해지는 에피소드 하나하나 역시 이들의 감당하기 버거운 삶이라는 상투성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될 만하다. 실제로 아무리 악인일지라도 한꺼풀 벗기면 나름의 이유나 매력을 품곤 하는 그 조금의 입체성마저 일절 배제한 영화 속 몇 명의 악인들은 근래 보기 드문 절대악 그 자체로 그려진다. 이들 악인들이 이지봉과 아이들을 괴롭히며 각자가 거대한 바벨이 되어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이야기는 매순간 그렇게 축축한 눈물바다를 이룬다.
간간히 작정한 웃음들이 눈물로 구겨진 얼굴을 이완시키려하지만 <킹콩을 들다>의 인상은 실패자들의 분투에 눈물콧물 다 뽑아내는 순간들이 어우러지며 어느새 관객마저 자연스레 무장해제 시키는 정직하디 정직한 ‘신파극’으로 굳어진다. 그만큼 역도라는 스포츠 자체의 성격이나 오늘날의 위치를 그대로 각 캐릭터들이 맞닥뜨린 현실에 이입시키는 영화는 별다른 기교 없이 무척이나 올곧고 정직하게 나아간다. 소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역도를 결심하는 순간부터 2008년 베이징을 향하는 박영자의 모습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그들의 정신은 정말로 그랬다. 울컥 목을 차고 오르는 순간을 넘어 진정으로 마음을 쓰리고 아리게 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정도로 작정하고 덤비는 신파극을 섣불리 폄하할 수 없는 것은 신기하게도 바로 그런 정직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어코 선택하면서 아무런 영광도 바라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는 이들 역사(力士)들의 모습은 작정한 최루책마저 긍정할 만큼 우리 모두에게도 먼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이런 얘기와도 일면 맞닿는다. FILMON이 문을 연지 어느새 1년이 넘었고 그 사이 크고 작은 성과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까지 이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그동안 내가 비겁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다리를 걸치고 있던 그곳은 처음엔 FILMON과 마찬가지로 꽤나 큰 꿈을 꾸고 들어간 곳이기도 했고 사회에 나온 이후 유일하게 안정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곳이기도 했다. 허나 매체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달려드는 그곳의 목적 전치가 나는 매순간 힘에 겨웠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참고 참으며 바꾸려 했지만 끝끝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바보 같이 또 몇 차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로지 그곳이 꽤나 안정적인 직장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최후까지도 그것을 놓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하지만 맨 처음 이 직종을 선택한 후 몇 번이나 맞닥뜨린 고비를 넘어서며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고 있노라는 참으로 하찮고도 의미 없는 초심 때문이었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아니게 변해 가던 그 일은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제리 맥과이어처럼 멋있게 사표를 내리라는 계획은 소심하게시리 전체 이메일로 대체한 채 같이 나올 금붕어 한 마리 챙기지 못했건만 그래도 정말로 시원한 마음으로 그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사직서 양식에 써야할 사직사유에 몇 마디 문장을 주저리주저리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 단 한 마디 ‘훌륭한 기자가 되고 싶어서’라는 같잖은 말을 남기고서. 열의 아홉이 겉으로 속으로 나를 비웃고 욕했다. ‘또라이’라고 말이다.
세상 어느 직업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이지봉이 역설하는 역도처럼 이 일 역시 하면 할수록 손해일지 모른다. 안 하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 남는 것은 그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허울 좋은 자기만족. 어쩌면 이것이 <킹콩을 들다>의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그리고 누군가의 보이지 않은 바벨을 지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또 세상 참 재밌는 것이 유능한 우리 FILMON 팀원들 덕에 얼마 전 FILMON이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벤처사업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무실도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됐고 FILMON 식구들이 진정으로 꿈꾸고 있던 목표에도 보다 근접해나갈 수 있게 됐다(나로선 뜻하지 않게 참으로 빠른 시일 내에 ‘또라이’로 취급당하지 않을 작은 빌미를 하나 마련한 것이기도 하고).
이를 발판으로 FILMON은 좀 더 멀리 보다 높이 나아가고 들어 올릴 수 있게 된 듯하다. 근시일 내에 새로운 기자와 마케터도 모집할 예정이다. 환상은 일찌감치 버리되 꿈은 어울려 크게 꿀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삶이라는 바벨, 그리고 이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꿈이라는 이름의 바벨. 설령 이 무시무시한 ‘바벨 스포츠’에 배신당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도전의 가치는 여전히 놀랍고 의미 있다는 진실이 눈물로 얼룩진 <킹콩을 들다>를 통해 새삼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당신의 바벨은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아직도 있다면 당신 역시 들어 올리지 않으련지. 강상준 기자(FILMON)
이범수, 조안 주연의 스포츠 영화 <킹콩을 들다>가 개봉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비인기종목인 역도를 다루고 있는 스포츠 영화다. 비인기 종목이란 언제나 힘들고 서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 역도 역시 전병관 선수 이후 장미란이란 세계적인 역사(力士)가 나오기 전까지 철저하게 국민들의 관심 대상 밖 스포츠였다. 리뷰어 역시 마찬가지다. 장미란 선수 때문에 전병
* 우선 제가 실수로 다음 view에 송고할 때, '영화'란이 아닌 'tv,드라마'란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거슬렸을 분들께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영화 '킹콩을 들다'를 보고 왔다. 항상 영화를 보고 나면 드는 궁금증에 하나는 이것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역시나마 극과 극으로 갈라지는 평들이다. 전체적인 평점은 높아보이는데, 의견은 극과 극일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향이 그런 것일까? '최고', '제..
극장에 갔는데 다른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시간이 맞는 영화를 선택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본 영화가 가슴 깊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 본 "킹콩을 들다" (http://www.kingkong2009.co.kr/)가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킹콩을 들다"는 보기 전까지 다양한 영화들과 겹쳐서 그다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일본 영화 "스윙걸즈"나 우리나라 영화 "국가대표"를 섞어놓은 영화 정도로 생각을 했죠.^^ 영화를 보면 이런 부분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고의 평점으로 인기를 쭉~누리고 있는 킹콩을들다
2009/07/07 10:23저도 이영화를 보고 글을 썼는데 추천만57개이고 베스트는
안주네요~^^; 님은 꼭 베스트 뜨시길...글이 좋음 ㅋ
영화 잘 보고 왔습니다. 완전 같이 빠져서 울다 웃다 하고 왔지요.
2009/07/07 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