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1972년 아들이 엄마를 칼로 찔러 죽였다. 베이크라이트 합성수지를 발명하여 미국 최고의 재벌로 자리 잡은 베이클랜드 집안에서 발생한 일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상류층의 끔찍한 존속살해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으로 기록됐고, 이를 계기로 명문가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베이클랜드 실화를 바탕으로 아들에게 살해된 엄마와 엄마를 죽인 아들의 뒤틀린 삶과 절망적인 최후를 재현한다.

베이클랜드 상속남 브룩스(스테픈 딜런)와 결혼한 바바라(줄리안 무어)는 상류사회로의 입성에 성공한다. 그러나 비천한 출생신분과 숨길 수 없는 무식함은 사람들의 조롱을 유발하고, 고고한 남편 역시 바바라를 철저히 무시한다. 자괴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바바라는 점점 미쳐가고, 아들 안토니(에디 레드메인)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 부잣집 도련님 안토니(에디 레드메인)는 싸늘한 아빠를 대신해 가련한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보낸다. 파리로, 스페인으로 돌아다니며 누구나 부러워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황폐하기 그지없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바바라의 방황과 기이한 행동을 나열하며 자멸해가는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화가 조용히 주시하는 것은 안토니다. 영화는 안토니가 갓난아기인 순간부터 청소년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전개된다. 안토니가 점점 커가고 세계 곳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마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을 상기시키듯 연도와 장소를 자막으로 띄우는데, 이는 후에 일어날 비극적 사건을 대변하기위한 포석이다. 결국 남편에게 버림 받은 후 완전히 이성을 잃은 바바라가 동성애자인 안토니의 성적 취향을 간섭하고 급기야 성관계까지 시도하자 안토니는 엄마의 복부에 식칼을 찔러 넣는다. 안토니는 죽은 애완견의 목줄을 엄마가 감췄다는 이유로 흥분하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불행한 가족의 역사는 가혹한 결말을 맞는다.


톰 칼린 감독은 베이클랜드 일가의 백년사를 다룬 동명소설 중 바바라와 안토니의 삶을 끄집어내 영화화했다. 실화인데다 원작소설까지 있는 영화는 딜레마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는 철저히 사실 재현에 몰두하며 허례허식과 방탕함에 잠식된 상류사회와 한 여인의 몰락을 잔혹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영화는 충격적이긴 하지만 공허하다. 바바라의 도를 넘은 이상행동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원래 좀 미친 건지, 매정한 남편 때문인지 아님 상류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인지. 시한폭탄 같은 그녀의 이해되지 않는 행위를 지켜보면서 ‘왜 저래…’ 계속 떠오르는 의아함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영화는 ‘그냥 그 여자가 실제로 그랬으니까’라고 정당화해버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바바라가 입었던 옷, 집에 장식되어있던 물건들, 벽에 걸려 있던 액자까지 책에서 쓸 만한 것들을 가져다 모두 스크린에 펼쳤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바바라로 분한 줄리안 무어의 폭발적인 연기는 물론 압도적이지만, 어째 그녀가 걸친 명품 의상에 더 눈길이 간다. 허세 가득한 실크 가운과 핏빛 트위드 재킷 등 샤넬, 지방시, 구찌로 휘감은 유령 같은 육신만이 알 수 없는 광기를 발산할 뿐이다. 1940~70년대 미국 상류층의 고급스러운 일상을 구현한 비주얼과 충격적인 사건의 냉엄한 묘사,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세비지 그레이스>를 자극적이지만 공허함으로 기억되게 한다. 정미래 기자(FILMON)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y editor. 2009/07/13 10:03
| 1 ... 391 392 393 394 395 396 397 398 399 ... 7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