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17~19일) 명동 인디스페이스에서 ‘이주노동자영화제’가 열렸다. 아직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주노동자들. 그들이 만드는 영화제가 낯설기도 하지만 벌써 4회째다. 올해 슬로건은 ‘짬뽕이 좋아!’이다. 트레일러가 재미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짬뽕 속으로 다이빙한다. 관대한 짬뽕은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고,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천하일미로 거듭난다.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문화를 말하기 위해 2006년 시작한 영화제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찾아가 여는 지역상영회가 지난해 4곳인데 비해 올해는 7곳이라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지난해 했던 곳은 올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단속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축제가 그들을 단속하는 곳이 된다니, 아이러니다. 개막식이 열린 18일, 세차게 내린 비는 그들의 험난한 여정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제는 크게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새로운 삶을 찾아 낯선 나라로 이주한 여성들의 이야기 ‘나비의 노래’,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아니 보여서는 안 되는 비정한 현실을 그린 ‘그림자 인간’,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통해 이주민의 미래와 희망을 보고자 하는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아이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제작한 ‘이주의 시선’이 그것이다. 작품들은 현실의 아픔은 물론, 객체에서 주체로 향하려는 이주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그린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노경태 감독의 <허수아비들의 땅>,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 심상국 감독의 <로니를 찾아서> 등 국내 장편, 미국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세 명의 라틴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 <L.A (Made in L.A)> 등의 해외 작품, 그리고 국내외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림자 인간 - 단편2’ 섹션에서 상영된 작품 중 김태엽 감독의 <에일리언 블루스>, 한지혜 감독의 <기차를 세워주세요> 등은 주목할 만하다.
<에일리언 블루스>는 이주노동자들을 케로성에서 온 외계인으로 형상화 해 그들이 겪는 차가운 한국 사회를 그린다. 식당에서 젤리(이들의 주식)를 먹던 타이용은 TV를 통해 고향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을 목격한다. 가족이 걱정돼 전화를 하고 싶지만, 그에게는 한 통에 수십만 원이 되는 전화비가 없다. 소장에게 밀린 월급을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건 ‘개XX’라는 욕설과 폭력뿐. 그 친절하다는 대출업체들도 외계인한테만은 돈을 빌려줄 수 없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헤매는 타이용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작품은 슬픈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유머가 넘친다. 진지한 표정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언어를 나불대는 외계인들,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보면서 고향이 공격받고 있다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외계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웃긴다. 하지만 웃음 뒤에 오는 씁쓸함이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다. 지구인들이 붓을 만들기 위해 외계인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코털을 호시탐탐 노리는 설정은 코믹하면서도 서글프기만 하다. <에일리언 블루스>란 제목은 절묘하지 않을 수 없다.
<기차를 세워주세요>는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희망 없는 모든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단속반에게 쫓겨야 하는 불법 체류자 세르게이, 동양인의 외모를 가졌지만 한국말을 못해 소외당하는 프랑스인 짐(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지만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으로 짐작된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서울대를 때려치우고 이라크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려는 정연, 군 제대 후 아무것도 않고 있다 느닷없이 커밍아웃을 한 정민 등 네 주인공 모두 청춘의 로망도 장밋빛 미래도 없다.
작품에서 이들의 삶은 기차에 비유된다. 어느 순간 이들은 자신이 달리는 기차 위에 있음을 깨닫는다. 선택하지 않은 기차였기 때문에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유심히 지켜보니 기차는 ‘경쟁을 통해 성공으로 가는 기차’이다. 그런데 이들은 학력, 배경 등 세상이 원하는 좋은 스펙을 갖고 있지 않다. 자본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기차의 티켓을 갖지 않은 그들은 이제 기차에서 떠밀려야 하는가, 아니면 기차를 멈추고 당당히 내릴 수 있을까. 세르게이, 짐, 정연, 정민은 88만원 세대의 또 다른 초상이다. 그들의 고민은 절실하게 다가온다.
영화제는 이제 시작이다. 이번 개막전을 시작으로 9월 13일까지 진주, 마석, 천안, 부천, 익산, 안산, 김포 등지에서 지영상영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 수개월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음이 상처의 치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 영화제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모두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한편, 이주노동자들의 잔치가 되기를 바란다. 안효원 기자(FILMON)
*이주노동자영화제 홈페이지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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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22:59기억하고 있었는데 아쉽게 놓쳤습니다.
2009/07/22 07:35잘 써주셔서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짬뽕'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