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혜성 충돌까지 앞으로 5시간. 그러나 지구 종말을 겨우 5시간 남겨둔 이 순간에도 텅 빈 거리 어느 구석에 위치한 레코드점에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시간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혜성 충돌로 말미암을 대해일을 피하기 위해 후지산으로 피신했지만, 레코드가게 주인과 이곳의 유일한 손님 한 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평화로이 섹스 피스톨즈와 펑크록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혜성이 빗겨가진 않을까, 대해일이 이곳 일본까지는 미치지 않을지도 모르잖나, 브루스 윌리스라는 히어로가 등장해 그 유명한 ‘아마겟돈’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지 않았느냐, 는 참으로 구차한 낙관론으로 애써 희망을 붙들려 하는 이들. 그러나 레코드가게를 방문한 어느 염세적인 불청객, 아니 가장 현실적인 그의 별다를 것 없는 반박은 종말의 그 순간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듣겠다는 이들의 ‘야심’에 서서히 금을 내기 이른다.
이내 찾아오는 공포, 그리고 패닉. 세계를 구할 영웅 따위 있을 리 없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어느새 혜성은 저만치 다가와 지구를 향해 돌진 중이다. 이윽고 이들의 희망은 엉뚱하게도 이야기를 나누던 음악을 향한다. “이 음악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무려 전설의 영국 펑크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 1년 전 등장해 앞으로 닥칠 펑크록의 영광과 수혜와는 동떨어진 채 밴드 생명을 마감해야 했던 무명 펑크밴드 ‘게키린(逆鱗)’의 1975년 마지막 레코딩곡 ‘피쉬 스토리’가 세상을 구한단다. 이 음악을 듣고 한데 뭉친 영웅들에 의해 세계는 구원받을 것이라 한다. 하, 그러나 ‘나의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거대함과 사나움에 고래조차 달아나겠지’라는 가사로 이루어진 한낱 펑크록 따위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세상을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피쉬 스토리>는 바로 그런 이야기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지구상 어느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 모를 음악이란 녀석에 관한 작고도 위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피쉬 스토리>는 멸망을 앞둔 2012년 시점의 도입부를 지나, 이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펼친다. ‘피쉬 스토리’의 묵음 부분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1982년 이야기, 그리고 홋카이도로 향하는 페리호 납치 사건이 펼쳐지는 2009년 이야기가 그것. 혜성출몰 30년 전인 1982년, 먼 훗날 세계를 구하게 될 것이며 오늘밤 운명의 여인 또한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예언을 들은 어느 소심한 남자가 정말로 ‘피쉬 스토리’의 묵음 부분 여자의 비명소리를 맞닥뜨리는 이 에피소드는 어쩌면 ‘피쉬 스토리’라는 곡을 구체화하기 위한 그저 그런 포석쯤으로나 비칠 법하다. 게다가 테러리스트들이 선상납치를 벌이는 2009년 이야기는 더더욱 아리송하고 멀게 느껴지기 마련. ‘정의의 사도’를 운운하는 페리호 파티셰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 의해 정의의 사도로 훈련받았던 성장기를 이야기하고, 또 정말로 정의의 사도로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는 광경은 그래서 더더욱 실없는 농담 정도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개개의 이야기들이 1975년 펑크의 진정한 선구자 게키린의 이야기와 합치되는 순간은 그래서 더더욱 기묘하고도 절묘하다. ‘피쉬 스토리’라는 곡이 철저한 우연과 노력과 굳건한 신념의 산물이듯, 전혀 팔리지 않는 음악을 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 게키린의 앞날 또한 밝을 리 없다. 그렇다 해도 궁금하다. ‘피쉬 스토리’의 묵음 부분, 선택받은 어떤 이에게만 들린다는 여자의 비명소리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이 좋은 음악을 누군가 듣고는 있는지 그것조차 알 수 없다만 그렇다 해도 자신의 신념 그대로 나아가는 이들의 음악을 헛되다 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영화는 판타지와 농담을 두루 거친 이야기를 게키린의 ‘피쉬 스토리’로 수렴하면서 면밀한 연결고리를 만들 뿐 아니라 이 질문들에 대한 답 역시 그럴듯하게 완성한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들이 ‘피쉬 스토리’라는 곡 아래 소급되는 순간 실없는 농담은 의미심장한 역설이 되고, 팔리지 않는 음악 ‘피쉬 스토리’는 마침내 정말로 세계를 구원하는 묵직한 판타지를 짊어지는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피쉬 스토리>의 영화화에 이어 <골든 슬럼버>의 영화화까지 진행중인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명실공히 이사카 코타로 영상화의 첨병으로 그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감독으로 손꼽힌다. 장르문학의 품속에서 엉뚱한 아이디어를 섬세하게 직조해내는 이사카 코타로의 특별한 품새는 <피쉬 스토리>에서도 각기 다른 시공간의 에피소드를 유려히 꿰맞추며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으며, 나카무라 요시히로 역시 음악의 마력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해내고 있다.
영화는 음악의 힘이 극대화되는 1975년, 패배한 록커들의 절망과 희망의 순간만을 리얼한 세계로 포장한 후 유쾌한 판타지의 색채가 짙은 다른 에피소드와의 절묘한 합일을 유도한다. ‘피쉬 스토리’의 스튜디오 녹음 현장을 카메라 좌우 반복 패닝만으로 담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수수께끼와 희망의 힘을 전달하는 처연한 직접화법은 그만큼 영화의 절정으로 일컫기에 손색이 없다. 또한 ‘정의의 사도’가 테러리스트를 퇴치하는 2009년과 세계의 멸망 직전인 2012년에 이르는 흥겨운 농담 역시 음악이 지닌 진정성과 환상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지금 우리의 노래, 과연 누군가 듣고는 있는 건지. 그러나 나의 음악, 나의 소설, 나의 영화, 나의 작품들이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것 같아 울적해할 예술가들에게 건네는 <피쉬 스토리>의 농담 같은 메시지에는 진중한 힘과 그럴듯한 신념이 차고 넘친다. 당신의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것이 퍼지고 퍼져 자라고 자라 세계를 구할 수도 있고 말이지요, 라고 말이다. 이 무책임한 농담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영화 <피쉬 스토리>의 힘이다.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들이 펑크록넘버 ‘피쉬 스토리’의 진정성과 합치되는 순간, 혜성도 파괴하고 마는 그 불가사의한 힘과 결과만큼은 결코 농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당신의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 태곳적부터 진리였던 이 깨달음을 <피쉬 스토리>가 다시금 흥겹게 되뇐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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