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모루(아사노 타다노부)는 죽었다. 이제 더 이상 니무라(오다기리 죠)에게 지금이 기다려야 할 때인지 가야 할 때인지를 알려줄 사람은 없다. 길잡이를 잃은 그의 미래를 과연 밝다고 할 수 있을까? 길쭉한 몸에 달린 기다란 팔과 다리. 언제나 안개가 서려 있는 듯한 눈동자. 이 영화에서 오다기리 죠는 그 모습 그대로 길을 잃고 부유하는 청춘이다. 그것은 영화에 나오는, 물결을 따라 가만히 움직이는 해파리의 아름다운 몸짓을 닮았다. 제목과 다르게, <밝은 미래>는 끝내 스물네 살의 청년 니무라의 미래에 빛을 비춰주지 않지만 당시 스물일곱의 오다기리 죠는 스크린에 특유의 매력을 똑똑히 아로새기며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밝혔다. 장성란 기자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 あずみ, 2003
섬세한 옆얼굴선과 고유의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청춘의 아이콘도 이런 역할을 맡았더랬다. 에도 시대의 미소녀 검객을 앞세운 펑키한 B급 활극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에서 오다기리 죠는 아즈미(우에토 아야)의 숙적 비조마루를 연기했다. 긴 머리 풀어 헤치고 순백의 기모노 자락을 펄럭이며 금자씨처럼 시뻘겋게 칠한 눈두덩이에 빨간 장미꽃을 들고 싸우는 악당이 ‘우리 오다기리’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안습’이다. 비조마루에게 장미꽃을 들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다름 아닌 오다기리가 낸 거라고 하니, 영화의 B급 정서를 완성하기 위해 그 한 몸 불사른 오다기리 죠에게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정미래 기자
<클럽 진주군> この世の外へ クラブ進駐軍, 2004
2차 대전 직후의 일본을 무대삼은 <클럽 진주군>의 정서는 온통 전쟁의 상흔으로 대변된다. 이는 재즈라는 승전국 문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본인 뮤지션이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한낱 도구에 불과한 미군 모두에게 마찬가지고 말이다. 재즈의 고요한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상처를 치유하는 <클럽 진주군>에서 오다기리 죠는 재즈를 모르는 건 물론이요 드럼스틱조차 잡은 적 없는 얼뜨기 드러머를 연기한다. 2대8 가리마에 하는 짓마다 어설프고 무모하기 그지없는 아케지마의 모습에서 반항아로 각인된 오다기리 죠의 시크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실제 밴드 드러머로도 활동하는 오다기리 죠의 경험이 이 초짜 드러머에게 전치된 모습 또한 잔재미. 재즈음악이 전하는 진한 희로애락에 더해 아케지마의 어리숙한 캐릭터는 영화의 ‘기쁨’과 ‘즐거움’ 거의 전부를 대변한다. 강상준 기자
<박치기!> パッチギ!, 2004
격동의 시대에도 사랑은 피어나는 법. 1968년, 일본 히가시고교와 조선고의 끊이지 않는 대립 속에도 코우스케(시오야 슌)는 조선고 여학생 경자(사와지리 에리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박치기!>에는 재일 조선인들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일본 내 분위기와 이에 대항하는 재일 조선인들의 생활상이 청년폭도 맹진과 함께 유쾌하고도 비장하게 피어난다. 이러한 가운데 <박치기!>의 메인테마곡이자 그 자체로 메인테마로 기능하는 노래 ‘임진강’을 코우스케에게 전수해주는 것이 바로 사카자키 역의 오다기리 죠. 그는 소년들에게 금지곡 ‘임진강’을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조선인들의 실상과 위치를 돌아보게 이끌고 기타를 통해 평화의 가치를 일깨운다. 훗날 미국물 먹고 온 후 히피로 변신한 사카자키의 모습 역시 압권. 피와 죽음이 점점이 밴 재일 조선인들의 애잔함 속에도 화합을 이끄는 이런 유쾌한 한량이 있기에 <박치기!>의 진정성은 더더욱 배가된다. 강상준 기자
<메종 드 히미코> メゾン·ド·ヒミコ, 2005
처자식 버리고 떠난 게이 아버지를 증오하며 억세게 살아가던 사오리(시바사키 코우)에게 찾아온 아름다운 남자. 하루히코(오다기리 죠)는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에 와달라고 한다. 가난에 허덕이던 사오리가 꺼림칙한 제안을 받아들인 표면적인 이유는 유산 상속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동하게 한 건 아버지의 연인 하루히코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상냥한 말투, 파리한 수염과 호리호리한 몸을 감싼 단정한 의상. 하루히코는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게이였다. 오다기리 죠는 <메종 드 히미코>로 한국의 여심도 완전히 사로잡았다. 2006년 1월 <메종 드 히미코>의 개봉 이후 오다기리의 전작들이 앞 다투어 개봉관에 들어찼고, 한국에 개봉하는 일본영화는 오다기리 죠가 출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정미래 기자
<스크랩 헤븐> スクラップ·ヘブン, 2005
기교 넘치는 연출로 ‘삐딱선’ 청춘들을 조명하는 이상일 감독의 대표작 <스크랩 헤븐>은 명실공히 오다기리 죠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연이은 서류정리에 염증을 느끼던 어느 날, 경찰관 신고(카세 료)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괴한에게 버스째 납치된다. 사건은 승객들을 협박하던 괴한이 자살하며 종결되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신고와 테츠(오다기리 죠), 그리고 사키(쿠리야마 치아키)의 인연은 조금 더 이어진다. 사건 3개월 후 신고는 우연히 테츠를 다시 만나고 테츠는 무료함을 호소하는 신고를 ‘복수대행업’이라는 탈출구로 끌어들인다. 타인의 크고 작은 복수를 대행하며 쾌감을 느끼고 팍팍한 인생을 타파해 나가는 신고와 테츠 콤비. 특히 반항적이고도 유쾌한 오다기리 죠 특유의 캐릭터가 그대로 작동하는 테츠는 모르는 사이 점점 나락으로 향하는 이들의 자기 소진에 보다 묵직한 힘을 더한다. 강상준 기자
<무시시> 蟲師, 2007
우루시바라 유키의 원작 만화 <충사>의 실사 영화판.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세운 원작에 대한 기대감에 더해 <아키라>의 감독 오토모 가츠히로, 거기에 오다기리 죠와 아오이 유우까지 주연을 맡아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하지만 공개된 영화는 기획의 참신함이 영화의 참신함으로 이어지지 못한 어중간한 작품이었다. 오다기리 죠는 벌레귀신들을 제압하는 주인공 긴코를 연기하는데, 그의 독특한 이미지가 캐릭터와 정확하게 조응하기는 하지만 영화의 진부함을 생각한다면 이마저도 불행한 일이다. 일상의 세계에서 신비한 느낌을 보여주는 것은 독특한 연기 세계의 발단이 될 수 있지만 신비한 세계 속의 신비한 캐릭터는 진부한 느낌이 되기 십상이다. 긴코는 오다기리 죠를 위한 배역으로 적절했지만 <무시시>는 그를 위한 영화로 부적격이었다. 유주하 기자
<유레루> ゆれる, 2007
아름다운 몸과 얼굴, 뛰어난 연기력, 스타로서의 명성. 오다기리 죠는 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스스로 그 모든 것을 벗어버리려는 것 같다. 우리는 곧잘 기사와 사진을 통해 모자와 머리로 얼굴을 뒤덮고 입을 다문 채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자연인 오다기리 죠의 모습을 접한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남자, 오다기리 죠. <유레루>의 타케루(오다기리 죠)는 그러한 오다기리 죠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인물이다. 도쿄에서 사진작가로 성공한 타케루는 돈, 명예, 여자, 스타일 그 모두를 가졌지만 그 어떤 것에도 만족을 얻지 못한다. ‘만족시키기 어려운 남자’의 무심한 얼굴은 우리를 더욱 더 애타게 만든다. 그러나 <유레루>의 끝에 그가 미처 가지지 못한 하나, 그가 그토록 집착하는 그 무엇의 정체가 드러난다. 자신보다 무엇 하나 나을 게 없는 형에 대한 열등감, 그 비밀스런 기억. 오다기리 죠는 <유레루>에서 자신의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진정한 내면 연기를 펼쳐 보인다. 이 영화에서 오다기리 죠와 타케루는 하나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오다기리 죠 최고의 연기를 꽃피웠다. 장성란 기자
<새드 배케이션> 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 2007
<새드 배케이션>은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북큐슈 3부작 <헬프리스> <유레카>의 마침표이자 합일점을 이루는 영화다. 북큐슈에 위치한 ‘마미야 운송’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집합소 같은 곳. <헬프리스>에서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켄지(아사노 타다노부)는 이곳에서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재회하고, <유레카>에서 버스납치사건을 겪은 코즈에(미야자키 아오이) 역시 마미야 운송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야쿠자에게 쫓기는 고토(오다기리 죠) 또한 마찬가지. 고토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끊임없이 핑핑 돌아가는 나침반 바늘을 켄지에게 건네며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비중은 크지 않지만 고독으로 점철된 모습을 한 채 두려움에 몸을 숨긴 고토의 나약함은 위태로운 둥지 마미야 운송의 현재이자 미래를 상징하기 충분하다. 강상준 기자
<텐텐> 轉轉, 2008
멍해 보이지만 뛰어난 추리력을 갖춘 풋내기 경찰, 키리야마 슈이치로(오다기리 죠)가 주인공이었던 TV드라마 <시효경찰>에서 감독 미키 사토시는 오다기리 죠의 멍한 표정을 십분 활용했다. 느릿한 성격과 이 세상사람 같지 않게 붕 떠있는 것 같은 오다기리 죠의 묘한 분위기는 느직한 리듬으로 능청을 떨어대는 미키 사토시 감독의 유머 코드와 더할 나위없는 궁합을 보여준다. <텐텐>으로 다시 만난 미키 사토시와 오다기리 죠는 별 볼일 없는 빚쟁이 청년의 수상쩍은 여행기를 그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여유롭게 풀어나간다. 한심하게 보이다가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근사해 보이다가 멍청해 보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다. <텐텐>의 오다기리 죠는 그걸 해낸다. 미키 사토시는 오다기리 죠에게, 오다기리 죠는 미키 사토시에게 감사할 일이다. 유주하 기자
<비몽> 2008
<플라스틱 시티> 蕩寇, 2009
감독 유릭와이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에 제2촬영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지아장커의 <소무> <플랫폼>의 촬영을 맡았다. 그의 세 번째 연출작 <플라스틱 시티>는 그 이력에 걸맞게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오다기리 죠는 브라질에 거주하는 이주민이자, 아시아계 범죄조직을 이끄는 유다(황추생)의 양자 키린역을 맡아, 어설픈 포르투갈어, 중국어 발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그럴싸한 느낌을 내는데 성공한다. 영화는 그 시각적 성취에 비해 볼품없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지만 오다기리 죠의 모습만은 확연한 기억을 남긴다. 그만의 느긋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과잉으로 치닫는 영화의 설정이나 줄거리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던데, <플라스틱 시티>의 오다기리 죠가 그렇다. 유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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