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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바> - 몸으로 말하는 무지개 색 무언극

REVIEW ON 2009/08/07 08:44 Posted by 이실직고


인간은 언어를 만들어 내기 훨씬 전부터 춤을 춰 왔다. 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여러 예술 양식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예술이다. 춤은 지극히 동물적이다. 언어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인간은 춤을 통해 감정이나 생각을 체계적으로 가다듬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터뜨려 보인다. 춤을 통해 인간은 마음껏 기뻐 날뛰고 상대를 유혹하고 분노하고 흐느낀다.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춤에 매료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춤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동물로서의 인간’, 그 원초적 생명력을 일깨운다.

더욱이 그 춤이 룸바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룸바는 아프리카 특유의 원시적 리듬이 라틴아메리카의 강렬한 리듬과 만난 쿠바의 민속무용. <룸바>는 제목 그대로 스크린에 룸바의 리듬을 풀어 놓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돔(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피오나 고든)는 룸바를 너무나 사랑하는 부부. 틈만 나면 룸바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은 물론, 댄스경연대회에 나갔다하면 늘 1등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대회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사고는 돔과 피오나에게서 각각 기억과 다리를 앗아간다. 피오나는 물론이고 방금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돔과 한쪽 다리를 잃은 피오나. 두 사람은 더 이상 예전처럼 신나게 룸바를 출 수 없다. 룸바가 없는 두 사람의 삶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 간다. 집이 불타고 학교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과연 사랑의 춤, 룸바를 되찾을 수 있을까?

<룸바>에서 직접 돔과 피오나를 연기하는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은, 또 다른 한 명 브루노 로미와 함께 이 영화를 쓰고 연출한 이들이다. 세 명 모두 연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벨과 고든은 198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비주얼극을 만들어 공연할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단짝이다.

왼쪽부터 브루노 로미, 피오나 고든, 도미니크 아벨

세 사람은 <룸바>에서 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비언어적(非言語的)인 장치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영화는 인물의 대사를 최소화한 대신 배우들의 표정과 몸동작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한다. 마치 한 편의 무언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덕분에 이야기는 극도로 단순해지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익살스러워졌다. 더욱이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세트가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것이 무지개 색으로 물든 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생각보다 춤을 추는 장면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룸바>는 앞서 말한 비언어적 장치들을 통해 계속해서 육체적이고 시각적인 움직임을 선보인다. 그 뜨겁고 단순한 몸짓은 온갖 시련을 헤치고 수천 년을 살아온 인간의 거센 생명력, 그 가장 본질적인 희망을 노래한다.


돔과 피오나가 학교 체육관에서 신나게 룸바를 추는 장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뜨겁게 춤을 추는 장면 등 소박하면서도 유쾌한 장면이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룸바>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한 군무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현란한 춤을 보여주진 않는다. 대신에 따뜻한 유머와 즐거운 춤, 아기자기한 화면으로 관객의 입가에 가만히 미소를 띠우는 영화다. 이번 여름, 짜고 매운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달곰삼삼한 맛이 그리워질 때 찾을 만한 소품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여기에 하나 더, 이 말 없는 영화에 줄기차게 흐르는 'Obsesion', 'Son Al Son', 'Tabu', 'Sea Of Love', 'Sombras' 등의 음악들은 그야말로 주옥같다. 장성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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