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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자연 다큐멘터리는 명품이다. 미세한 곤충의 인생부터 거대한 지구의 아름다움까지 웅장한 촬영과 기품 있는 편집으로 빚어낸 경이로운 영상은 늘 감탄을 자아낸다. 빼어난 영상미와 세상을 움직이는 메시지로 다큐멘터리의 진화를 이끌어 온 BBC가 TV용 콘텐츠에서 탈피해 최초로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의 영예를 거머쥔 건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미어캣 가족. 20센티미터의 신장, 1킬로그램 남짓한 몸무게의 고양이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듯한 이 자그마한 포유류는 두 발로 서서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잔뜩 긴장한 채 천적을 경계하는 행동으로 유명해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의 몽타주 화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미어캣의 모험>은 ‘사막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미어캣의 삶에 밀착한 전형적인 동물 다큐멘터리다. 모래에 굴을 파고 30여 마리가 무리지어 생활하는 미어캣은 거미나 메뚜기 같은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데, 이들의 근거지인 칼라하리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환경으로 손꼽힌다. 미어캣들은 타들어가는 듯한 건기를 배곯으며 견뎌내고, 사자와 독수리의 위협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생존해나간다. 영화는 갓 태어난 새끼 미어캣 ‘콜로’를 중심으로 미어캣과 사막의 생태계를 생동감 있게 기록한다. 형의 가르침으로 표독스러운 전갈 사냥에 성공하며 여엇한 미어캣으로 자라나는 콜로. 마샬 독수리에게 사랑하는 형을 빼앗기고, 길을 잃어 사자 밥이 될 위기도 겪는 등 눈물겨운 시련이 함께 하는 콜로의 모험은 한 편의 어드벤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특히 콜로가 커다란 코브라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비좁은 모래굴 속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로 포착한 근접 신은 웬만한 액션 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미어캣의 모험>은 2008년 타계한 배우 폴 뉴먼이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오프닝 크래딧에 폴 뉴먼이 내레이션을 맡았다는 문구가 크고 선명하게 빛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폴 뉴먼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한국에선 더빙판으로만 개봉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 적 폴 뉴먼’인데다 한국에서의 인지도도 높지 않은 게 사실이며,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더빙판만 선보이는 것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작품을 왜곡하면서까지 더빙을 고수해야만 했던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에선 여름방학에 맞춘 가족영화로 <미어캣의 모험>의 포지션을 정한 것 같다. 그리고 부모 손잡고 극장에 올 어린이를 위해 최대한 눈높이를 낮춰 쉽고 가볍게 더빙을 입하기로 했나보다. 하지만 쉽고 가벼운 것과 유치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깜찍하게 작위적인 발성으로 “미어캣 계의 구준표”라느니 철지난 유행어를 남발하며 싼티나는 대사를 집어 넣는 게 진정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일까? 작품의 본질을 흐리는 건 단지 미숙한 더빙뿐만이 아니다. 마땅히 객관적 관찰자의 시선이어야 할 다큐멘터리이건만, 철저히 작고 연약한 미어캣에 감정이입해 억지 드라마를 구성하다보니 살모사나 독수리가 사막의 평화를 위해 물리쳐야 할 사악한 존재처럼 묘사됐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로 이뤄진 자연의 섭리를 이해시켜야 마땅할 자연 다큐에서조차 얄팍한 재미를 위해 그릇된 재구성을 일삼는 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문제다.


“인기 연예인들을 성우로 활용해 작품성보다는 홍보에 집중했던 기존의 가족영화들과 차별화하여 가족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쉽고 재미있게 재구성했다”는 보도자료 속 한국어 더빙 제작의 취지는 ‘가족영화=애들영화=유치한 영화’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작품의 진가를 희석시킨 나머지 <미어캣의 모험>을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감흥을 주지 못할 애매한 위치에 남겨놨다. 수입사 측에선 뉴먼의 내레이션을 차단해 버린 것이 못내 걸렸던지 “폴 뉴먼의 목소리는 추후 발매되는 DVD에는 수록되어 국내 관객들에게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고 공지했다. 결국 BBC의 역사적인 첫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는 필름이 아닌 DVD를 통해서만 그 원본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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