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의 마지막, 빨간색 나팔바지를 차려입은 해적(이정진)이 음악에 맞춰 손가락을 위아래로 찌르며 신나게 디스코를 춘다. 김승진의 ‘스잔’과 박혜성의 ‘경아’가 번갈아 울려 퍼지는 <품행제로>(2002)의 롤러스케이트장, 나영(공효진)이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선보이며 스케이트장을 가른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프로야구의 열기는 <슈퍼스타 감사용>(2004)의 평범한 직장인 사용(이범수)을 하루아침에 프로 야구선수로 둔갑시킨다.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품행제로> <슈퍼스타 감사용>은 모두 1980년대 대한민국을 그린 영화들. 이들 영화에서처럼 1980년대 대한민국은 열심히 디스코를 추고 롤러스케이트장을 기웃거렸으며 야구 경기 결과에 울고 웃었다.
같은 시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도착한 영국 땅에는 통 넓은 바지 때문에 하루 종일 놀림을 당하는 11살 소년 숀(토마스 터구즈)이 살고 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고 있던 1983년, 포클랜드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숀은 우연히 동네 스킨헤드족과 어울리게 된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2006)는 그 해, 숀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이것이 영국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제목 그대로 영화는 숀의 삶을 통해 1980년대 영국 사회의 참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마거릿 대처와 포클랜드 전쟁, 스킨헤드는 이 영화가 1980년대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세 개의 꼭짓점이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실로 1980년대는 철의 여인의 시대였다. 3기 연임에 성공하며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총리직에 머문 대처는 1990년, 총리 생활을 마치기까지 11년 간 강력한 보수 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철(鐵)의 여인’이란 별명을 붙인 건 당시 세계 최강의 공산국가였던 소련이었다. 대처가 그만큼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웠기 때문. 그는 경제에 있어서도 시장주의 경제 정책이야말로 1960년대부터 침체 일로에 있던 영국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다. 1979년 여성 최초로 영국 총리의 자리에 오른 대처는 주요 국영사업을 사유화하고 교육, 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긴축 재정을 펼쳤다. 이와 함께 노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러 권한을 제한함으로써 오랜 시간 계속되던 석탄 노동자 파업을 진압했다.
대처의 경제 개혁은 과감하고 강경했다. 이로써 영국 경제는 점차 불황에서 벗어나 부흥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대처의 정책은 당시 영국 경제가 겪고 있던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한 미봉책에 불과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실제로 대처의 정책은 사회적으로 빈부와 지역의 격차를 넓히고 제조업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빌리 엘리어트>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시작과 함께 TV 속 대처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뒤, 영화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처 총리의 목소리에는 아랑곳 않는다는 듯 동네 곳곳, 대처에 대한 낙서를 화면에 담는다. 비슷한 시기의 영국을 그린 <빌리 엘리어트>(2000) 역시 <디스 이즈 잉글래드>와 마찬가지로 대처의 경제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빌리(제이미 벨)의 아버지 재키(게리 루이스)는 광부, 현재 파업 중이다. 그러나 대처가 반노조 정책을 통해 파업을 막으려 함에 따라 노조는 서서히 와해된다. 재키는 발레를 하고 싶다는 빌리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파업을 계속하는 동료들을 배신하고 출근 버스에 올라 계란 세례를 받는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에서 역시 마지막의 비극을 부르는 건 실업에 대한 불안이다. 결국 철의 여인의 가혹한 정책은 콤보(스테판 그레이엄)의 손에 '철의 흉기'를 들린다.
비극의 씨앗, 포클랜드 전쟁
포클랜드 전쟁 이전부터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를 둘러싼 영유권 논쟁을 벌여 왔다. 1826년,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령이라고 공식 선언한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선언의 근거. 그러나 포클랜드가 산업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한 영국은 1833년 군사력을 이용해 포클랜드에 살던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강제로 내쫓고 그곳에 영국인들을 이주시킨다. 그로부터 100여년 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1945년) 전 세계적으로 탈식민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에 힘입어 1946년, 아르헨티나가 다시금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다. 1973년, 유엔의 권고에 따라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협상이 시작됐으나 곧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아르헨티나는 1982년 4월 2일 무력을 사용하여 포클랜드를 점령한다. 그러자 영국의 대처 정부는 포클랜드에 대규모 기동부대를 파견해 75일간 전투를 벌인다. 결국 200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가 항복하면서 포클랜드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후 포클랜드의 영유권 문제는 유엔의 손으로 넘어가 지금까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은 정작 포클랜드의 영유권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지만 대처 정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엔의 중재를 따르지 않고 아르헨티나에 무력으로 맞서 항복을 받아낸 것이 영국 국민들의 마음을 산 것. 이로써 대처는 1983년 총리 연임에 성공한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에서 숀의 비극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숀에게 행복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의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지금, 숀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숀의 아버지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아침에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 그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미 숀의 현실이 되어 있다. 어머니 혼자 꾸려가는 살림이 예전 같을 리 없는 것. 그와 같은 현실은 숀에게 분노로 나타난다. 그래서 숀은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갈긴다. 거시적으로 볼 때, 포클랜드 전쟁은 대처 정권의 성공적인 업적의 하나로 평가받는 일이지만 적어도 숀의 입장에서 그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역사와 정치의 거대한 흐름 속에 묻힌 개개인의 영국, 그 얼굴 하나하나를 더듬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진짜 영국’의 얼굴이다.
내일이 불안한 청춘들, 스킨헤드
사진 Gavin Watson
출처 <디스 이즈 잉글랜드> 홈페이지
오늘날 스킨헤드는 극심한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문제적 집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스킨헤드란 말이 처음 생겼을 때의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스킨헤드는 1960년대 초 런던의 레게 클럽을 드나들던 젊은이들, 이른바 모드족(Mods)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자메이카의 루드 보이(Rude Boy) 문화가 더해지면서 비로소 스킨헤드가 탄생한다. 당시 영국의 조선소나 공장에서 일하던 양국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두 나라의 하위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나타났던 것. 스킨헤드들은 멜빵 차림에 부츠를 신고 빡빡머리에 모자를 쓰고 다녔다. ‘스킨헤드(민머리)’란 말이 붙은 것은 그 때문이다. 스킨헤드의 패션이나 음악, 생활 방식이 거칠게 표현됐던 것은 그들이 사회의 하위 계층으로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스킨헤드는 정치나 인종과 관련하여 특정한 입장을 띠지 않았다. 1980년대 초, 공영 주택 단지에 살던 영국 청소년들이 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스킨헤드는 다시 한 번 유행의 물결을 탄다. 군인을 연상시키는 스킨헤드의 거친 문화는 남과 다른 개성을 찾아 헤매던 십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거기서 날로 늘어나는 실업률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스킨헤드가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문제 집단으로 변질된 것은 1980년대 이후, 스킨헤드 문화의 공격성이 인종차별, 네오나치즘과 결합하면서부터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스킨헤드가 극단적 국수주의와 결합하면서 점차 인종차별적 색채를 띠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숀이 처음 어울리는 스킨헤드들은 인종이나 정치적인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쪽이다. 그저 할 일 없는 청춘들이 모여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쟁놀이를 하며 어울려 다니는 게 전부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흑인 밀키(앤드류 심)와 어울린다. 그러나 어느 날, 폭력적인 성향의 스킨헤드 콤보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나긴 경제 불황의 그림자 속에 일부 영국인들은 ‘외국 놈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콤보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잘못된 편 가르기와 폭력적인 대응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 그 비극은 숀의 열한 살 인생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간다. 처음, 숀과 스킨헤드들의 소꿉장난을 바라보며 킬킬거리던 영화는 어느새 자세를 고쳐 앉아 숀의 열한 살 인생이, 1983년의 영국 사회가 핏빛 폭력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더 없이 담담하게 지켜본다. 철의 여인, 전쟁, 스킨헤드를 하나로 잇는 그 삼각형 속에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진짜 영국의 모습이 있다. 그것이 <디스 이즈 잉글랜드>가 그리는 삼각형의 정체다. 장성란 기자(FILMON)
디스 이즈 잉글랜드 감독 셰인 메도우스 (2006 / 영국) 출연 스티븐 그레햄, 조셉 길건, 프랭크 하퍼, 잭 오코넬 상세보기 지난 8월 10일. 광화문에 위치해 있는 씨네큐브를 찾았다. 얼마전 위드블로그에서 블로그 리뷰로 선정된 영화 시사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 제목은 "디스 이즈 잉글랜드(This is England)" 영화의 배경은 1983년 영국. 철의 여인이자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낸 대처가 수상이었던 시대다. 또한 당시 포클랜드 전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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