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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성(城)을 지어 나가기 마련이다. 그가 내놓는 영화 한 편 한 편이 그 성의 벽돌이 된다. 벽돌의 모양과 쌓는 위치에 따라 어느 것은 벽이 낮고 너른 성이 되고 어느 것은 튼튼한 골조와 철통같은 수비를 자랑하는 요새가 된다.

여기 마이클 만이라는 이름의 성이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그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히트>(1995) <인사이더>(1999) <알리>(2001) <콜래트럴>(2004) <마이애미 바이스>(2006)라는 벽돌로 지어진 단단한 성. 그 안쪽에는 누가 봐도 그의 영토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색깔이 분명한 마이클 만의 영화 세계가 펼쳐져 있다.


마이클 만의 성에 벽돌이 하나 늘었다. 다들 잘 알다시피 그 벽돌의 이름은 <퍼블릭 에너미>다. <퍼블릭 에너미>는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은행 강도 존 딜린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트> <콜래트럴>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대표작에서 더할 나위 없이 비장하게 현대 도시의 뒷골목을 누볐던 마이클 만이 존 딜린저라는 실존 인물을 스크린에 되살리기 위해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돌아간 것. 이번에도 역시 마이클 만은 벽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걸 잊지 않았다. 과연 <퍼블릭 에너미>에는 마이클 만의 트레이드마크라 불리는, 적수로 만난 두 사내, 범죄, 액션이 모두 들어 있다. <퍼블릭 에너미>를 가로지르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마이클 만 영화 세계의 본질과 변화를 함께 살핀다.

또 다른 나와 맞서는 두 사내

존 딜린저는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은행 강도. 미국인들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은행 강도 하면 주저 없이 그의 이름을 꼽는다. 전설의 은행 강도 딜린저는 살아생전 사람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황의 늪 속에서 사람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던 거대 은행만 노렸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딜린저(조니 뎁)는 은행에 쳐들어가 돈을 쓸어 담는 순간에도 창구에서 돈을 찾고 있던 고객들의 돈은 건드리지 않는다.
 

최고를 잡기 위해서는 최고가 필요한 법. 딜린저를 잡기 위해 FBI 최고의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찬 베일)가 투입된다. 곧 딜린저와 퍼비스는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아챈다. 사실 두 사내는 서로의 닮은꼴이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들인 만큼 두 사람 모두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과 기준이 있다. 딜린저와 퍼비스는 하나에서 열까지 그 원칙과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완벽주의자.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자신은 외롭고 고독하다. 결국 딜린저와 퍼비스에게 둘의 대결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나와 닮은 상대, 또 다른 나와 맞서는 데 그 어떤 속임수나 편법이 통할 리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원칙과 기준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그것은 그대로 스스로를 검증하는 과정 즉,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된다.

사실 <퍼블릭 에너미>에서 딜린저와 퍼비스의 대결 구도는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것은 영화가 뒤로 갈수록 딜린저와 퍼비스의 대결 구도 대신 궁지에 몰린 딜린저의 심리적 갈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 더 이상 자신의 원칙대로 은행을 털 수 없게 된 딜린저는 ‘겁쟁이로 살 것인가, 영웅으로 죽을 것인가’란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그 고민의 한가운데에는 운명의 여인 빌리(마리온 코티아르)가 있다.

<히트>

<히트>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 전에 이미 <히트>와 <콜래트럴>에서 이 같은 맞수 간의 대결 구도를 그린 바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히트>는 <퍼블릭 에너미>가 미처 끝맺지 못한 ‘두 맞수의 대결’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닐(로버트 드니로)과 LA 경찰국 강력계 수사반장 한나(알 파치노)는 적으로 만났지만 범죄자와 형사 사이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이야말로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을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겨눈 총구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거기엔 지금까지 일밖에 모르느라 소홀히 대했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일 때문에 저버려야 했던 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자신을 이해해 줄 유일한 친구를 꺾고 살아남은, 슬픈 승리자에게 숙제로 남겨진다.      

영광 따위 관심 없는 영웅의 심리적 갈등

1930년대 미국 사람들에게 딜린저는 영웅이었다. 보란 듯이 거대 은행을 털면서도 잘 잡히지 않았고 어쩌다 경찰에 잡혀도 용케 잘 빠져나갔다. 인질로 잡은 여성 은행원에게 코트를 걸쳐주고 체포됐을 때도 사진기 앞에서 검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쯤 되면 당시 할리우드가 그를 모델로 한 낭만적인 갱스터 영화를 만든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딜린저의 최후는 그다지 영광스럽지 않았다. <퍼블릭 에너미>가 그리고 있는 대로 딜린저는 1934년 7월 22일, <맨하탄 멜로드라마>(1934)를 보고 나오는 길에 극장 앞에  숨어 있던 FBI 요원들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이는 <퍼블릭 에너미>에서 그대로 묘사된다.

<퍼블릭 에너미>는 딜린저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재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에 따라 영화는 딜린저의 삶을 소재로 한 브라이언 버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딜린저의 일화를 하나하나 세세히 그리고 있다. 그에 따라 영화 초반, 딜린저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은행 강도, 배짱 두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데다 유머와 인간애까지 겸비한 영웅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첫눈에 빌리에게 운명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저돌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에 이르면 딜린저는 더 없이 낭만적인 영웅이 된다.


하지만 마이클 만의 관심은 딜린저의 그 같은 영웅적 면모를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영화의 목표는 딜린저의 일화가 말하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딜린저를 그리는 데 있다. 딜린저가 낭만적인 영웅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면 딱 그만큼만 그리겠다는 태도다. 마이클 만은 이 모든 것들을 그린 뒤에야 마침내 본심을 드러낸다. 마이클 만이 딜린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히 영웅의 모습 보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속 고민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딜린저에게 은행털이는 최고의 돈벌이이자 오락이었다. 애초에 그는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은행을 털면서 그럴 듯하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도 내일을 걱정해야 할 때가 왔다. 뒤를 봐주던 동료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며 하나둘 고개를 돌리고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 온다. 은행 강도의 애인으로 살기 불안해하는 빌리를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크게 한 건 해서 미국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딜린저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낭만적인 은행 강도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이제 그는 마지막 한 방이 절박한, 궁지에 몰린 은행 강도다.

<알리>

<인사이더>



마이클 만은 여기서 딜린저의 가슴에 청진기를 댄 듯 그의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앞서 말했듯 딜린저는 고민한다. ‘겁쟁이로 살 것인가, 영웅으로 죽을 것인가’. 그것은 ‘편법을 쓰고 요령을 부려서 이 곤경을 빠져나갈 것이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전설적인 은행 강도로서 자신이 세운 원칙과 기준을 지킬 것이냐’의 문제이자 ‘지금까지 지켜온 정체성을 저버릴 것이냐, 계속해서 지켜나갈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이클 만은 실존 인물을 그릴 때마다 늘 극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담배 회사의 비밀을 폭로한 전직 담배 회사 연구원 제프리 위건드의 실화를 그린 <인사이더>나 전설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삶을 소재로 한 <알리>에서도 그랬다. 마이클 만은 극적인 재미를 위해 실화를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영웅의 삶을 영웅적으로 그리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딜린저는 끝내 영웅으로 죽을 것을 택한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로 한 딜린저의 죽음은 겉보기에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하지만 마이클 만의 카메라는 그것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 담담한 시선은 영웅을 맞이하는 그 어떤 호들갑스러운 환호보다도 짙은 공감과 확신을 깔고 있다. 그것이 바로 마이클 만 식의 비장미다. 마이클 만은 딜린저를 통해 앞으로도 고집 세고 외로운 영웅을 그려가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이클 만의 성은 <퍼블릭 에너미>를 통해 더욱 단단하게 그 성벽을 높였다. 장성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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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니뎁의 조니뎁에 의한 조니엡을 위한 영화, 퍼블릭 에너미

    Tracked from pa.ra.ma  삭제

    영화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왔습니다. 정말 이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그저 '조니뎁'이었습니다. 그의 공허하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눈빛, 미지의 그 얼굴 표정은 마치 '가위손'의 에드워드가 가졌던 그 슬픔의 눈빛을 생각나게 만들었고, '캐리비안의 해석'의 잭 스페로우처럼 소유하고 싶지만 도무지 소유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매력적인 남자를 보여주더군요. 영화 '퍼블릭 에너미'는 미국 대공황시절 불황의 원인으로 지적받는 은행의 돈만 털며..

    2009/08/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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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umornara.kr BlogIcon 유머나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스토리는 정말 슬프더군요..

    2009/08/1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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