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은 예술가인가? 이 질문의 답을 좀 더 깊숙하게 고찰하고자 한다면 필히 ‘영화는 무엇인가?’ 내지는 ‘예술은 무엇인가?’와 같이 바다보다 깊고 우주보다 넓은 질문에 대한 답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퍼펙트 겟어웨이>를 두고 그런 거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기 TV시리즈 <로스트>풍의 영화들을 얕잡아 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럴 필요가 없을 뿐이다. <퍼펙트 겟어웨이>는 영화와 감독을 둘러싼 현실적 상황 때문에(내지는 덕분에) 기획, 제작된 매우 경제적이며 실용적인 영화다. 또한 자본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현실적 판단이 영화의 미덕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예술적 야심보다 영화산업 속에서 단련된 연출가의 유능함이 훨씬 더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도망자> <워터월드> <지.아이.제인> 의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에이리언 2020>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을 연출했던 데이빗 토히감독은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거대한 프로젝트의 실패를 적어도 두 차례 이상 경험한 바 있다.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도망자>나 <지.아이.제인>은 논외로 하더라도,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었던 <워터월드>나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의 실패는 야심만만했던 한 작가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B급 SF영화로서 무시할 수 없는 성취를 이뤘던 <에이리언 2020>을 발판 삼은 블록버스터급 속편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이 흥행에서 참패했을 땐 참으로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자그마치 1억 달러가 넘게 들어간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은 총 3편이 예정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할리우드 주류 액션배우로 자리를 잡은 빈 디젤이 <에이리언 2020>에 이어 어두운 영웅 리딕 역을 다시 맡아 영화는 금세 화제에 올랐고, 공개된 영화 역시 빈 디젤의 근육만큼이나 남성미가 넘치는 SF물로서 나름의 재미가 출중한 작품이었다. 그런데도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은 박스오피스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이 영화를 사랑했던 팬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제 막 할리우드의 주류로 진입하려던 데이빗 토히에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퍼펙트 겟어웨이>는 슬럼프에 빠졌던 데이빗 토히 감독이 무려 5년 만에 들고 온 신작이다.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크게 2가지. 첫째는 물론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디서 본 듯한, 그리고 평이해 보이는 트로피컬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장르 특유의 구성과 긴장감이 수준급이다. 이에 더해 데이빗 토히만의 장르에 대한 해석이 독특한 재미를 준다(영화를 보다가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싶은 순간이 오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 외적인 부분인데, 바로 <리딕> 시리즈 속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데이빗 토히 감독은 전편의 흥행부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딕> 시리즈 속편의 연출을 맡을 예정이다. 이 불운했던 시리즈의 새로운 속편에선 전작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에서 꽃피우지 못했던 감독의 개성이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빗 토히 감독은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의 제작을 맡았던 유니버설픽처스와 결별하고 독립적으로 자금을 조달, 영화를 완성할 계획이다. 목표는 무려 R등급. 이 영화는 성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본격 SF물이자, 데이빗 토히의 역량이 한껏 집결된 작품일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1400만 달러라는 비교적 단출한 예산으로 제작한 <퍼펙트 겟어웨이>의 만듦새는 한층 더 주목할 만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밀한 설정, 캐릭터, 이야기 구성 등은 블록버스터에 관여하는 동안 무뎌졌을지도 모를 감독 본연의 감성을 되찾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캐릭터나 설정은 얼핏 평범해 보인다. 주인공인 신혼부부 클리프(스티브 잔)와 시드니(밀라 요보비치)는 순진하면서도 귀여운 커플이자 희생자들이며 그들의 신혼여행에 알 수 없는 위협을 가하는 히치하이커 커플이나 닉(티모시 올리펀트), 지나(키엘 산체즈) 커플은 신혼부부와 관객들을 시시각각 조여 오는 가해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배역 자체가 고도의 전략이나 마찬가지다. 데이빗 토히 감독은 주로 의지박약의 지식인 내지는 한심한 한량을 연기해온 스티브 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서 강력한 여전사를 연기한 밀라 요보비치, <다이 하드 4.0>을 통해 악당으로 새롭게 태어난 티모시 올리펀트 등을 기용하되 배우 고유의 이미지를 영화의 한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화가 벌이는 게임의 절반은 배우의 캐릭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이를 기획, 통제하는 것은 오롯이 데이빗 토히의 역량이고 말이다.
후반부 터져 나오는 액션 장면도 인상적이다. 속도를 높인 이후부터는 액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벌어지고 플래시백이 과감하게 사용된다(관객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겠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유려한 풍광이다. 이 역시 데이빗 토히 감독의 알뜰함이 빛나는 부분인데, 비용절감을 위해 감독은 카우아이 섬 외에도 푸에르토리코와 자메이카 등 비교적 촬영 비용이 적게 드는 장소를 두루 이용해 촬영을 마쳤다.
대중예술로서 영화는 필연적으로 상업성에 대한 고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때문에 영화감독은 미적인 각성을 추구하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상업예술품을 생산하는 기업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떠한 영화라도 그 극한에 다다른다면 관객은 온 몸을 꿰뚫는 감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시작점은 천지차이일지라도 모든 감독은 결국 하나의 지점을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라는 욕망의 전차 속에서 데이빗 토히처럼 굳은 심지를 가진 작가는 흔하지 않다. <퍼펙트 겟어웨이>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데이빗 토히는 항상 그 다음이 기대되는 감독이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든 일인가.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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