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괴물>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는데, 소문난 DVD 애호가인 그가 아끼는 타이틀, 영향 받은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계의 전통성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당시 인상 깊게 나눈 대화는 김기영 감독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페데리코 펠리니, 마틴 스콜세지 이외에 자신을 살찌운 한국 감독으로 가장 먼저 김기영을 꼽았다. 황학동을 뒤져 비디오테이프를 모으던 추억을 떠올리며 김기영 감독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출하던 그는 <하녀>(1960) DVD가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 주 전 <하녀> DVD가 출시됐다. 비단 봉준호뿐 아니라 DVD가 한국에 도입된 이래 가장 많은 이들이 애타게 기다렸을 고전이다. 그간 김기영의 작품들은 이따금 DVD로 나왔지만 <하녀>는 감감 무소식이었고, 작년 출시된 <김기영 컬렉션>에도 정작 대표작인 <하녀>가 포함되지 않아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러던 차에 마틴 스콜세지가 이끄는 세계영화재단의 지원으로 복원된 <하녀>가 얼마 전 DVD에 담겨 그 때빼고 광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한국영상자료원이 몇 년 째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한국 고전영화 DVD 컬렉션 중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록될 듯하다. 사실 한국영상자료원의 DVD 시리즈는 디지털 매체로 기록된 한국 고전영화의 문헌적 가치와 보존에 무게가 실린 것이었다. 적잖은 비용이 드는 복원은 엄두도 못 낸, 그야말로 ‘출시하는 데 의의를 둔’ DVD였다. 그런 가운데 출시된 <하녀>는 문헌적 중요성을 넘어 실제 DVD를 마주할 소비자에게 커다란 가치를 지닐 타이틀이다.
50년이 흐르는 동안 <하녀> 원본 네가 필름의 일부는 손실됐고, 필름은 스크래치로 도배됐다. 이에 복원팀은 손실된 20여 분을 해외 영화제 출품용으로 떠 놓은 영문자막 프린트로 채웠으며, 당시 필름에 손으로 직접 써 넣은 자막을 일일이 제거했다. 이렇게 모자란 부분을 이어 붙인 후 먼지와 스크래치, 음향 잡음을 없애고 색보정을 거친 <하녀>는 작품의 기괴한 에너지를 재생하는데 모자람 없는 DVD로 완성됐다. 잘 정돈된 흑백 질감으로 펼쳐지는 말쑥한 미장센과 폭발할 듯한 텐션은 우리가 왜 이 영화의 DVD를 그토록 원해왔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후반부 영문자막 프린트 부분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화질, 음질 저하는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지 별 수 없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원본 영상과 복원 후 영상을 실시간으로 비교해 보여주는 서플먼트는 <하녀>의 환골탈태를 한 눈에 확인해볼 수게 해준다. 상세한 복원 과정은 패키지에 수록된 소책자에 기록돼 있다.
세계적 관심 속에 복원된 필름과 더불어 <하녀>를 DVD로 봐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봉준호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함께 한 음성해설. 김기영 감독의 열혈 팬임을 자처한 봉 감독은 “무척 긴장된다”며 운을 뗀 후 ‘음성해설의 달인’다운 실력을 뽐내며 작품의 진가를 조목조목 해설해 나간다. 영화평론가 중 가장 많이 음성해설에 참여했을법한 김영진 평론가는 김기영 감독과 생전에 주고받았던 대화를 자주 언급하며 친밀한 상황을 연출한다.
두 사람은 <하녀>를 수십 번이나 감상해 외우다시피한 팬으로서 작품의 기막힌 매력을 공유하며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도 봉준호는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배우와 세트, 소품과 조명, 앵글과 편집 등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내포한 시대성과 주제의식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두 사람은 프로이트와 히치콕, 박찬욱을 아우르는 풍성한 해석을 주고받으며 아들 역을 맡은 연기 신동 안성기의 천연덕스러움과 ‘하녀’ 이은심이 발산하는 마력에 거듭 감탄했고, 아연실색의 엔딩에 또 한 번 황당해했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자 봉준호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는 “엄청나게 많이 본 영화지만 다시 봐도 재미있다”며 탄복했고, 김진아 감독이 연출하기로 했다는 <하녀>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우려를 살짝궁 내비치기도 했다.
“김기영적인 것이 한국영화에 뿌리 내리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는 김영진 평론가의 말에 봉준호 감독은 “이 DVD가 그것에 일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최소한의 공간과 인물로 최고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하녀>는 영화감독이나 시네필, 그리고 세대를 넘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작품의 파괴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DVD 역시 소장가치를 온전히 발휘한다. DVD를 구매하는 게 점점 유별난 행동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단 하나의 DVD를 사야 한다면 그것은 <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미래 기자(FILMON)
같은 영화, 다른 시선 매주 월요일마다 보트, 영민, 브로콜리너뿐야 이렇게 세명이 같은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각자의 시선으로 시작한 글은 서로의 글에 대해서까지 이어집니다. 이닥의 출중한 필자 셋이 같은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각자의 시선에 대해서 역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셋이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나눌 수 있습니다!!_- -필자에 대한 소개는 이닥의 구성원을 소개합니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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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반드시 소장해야할 dvd.
2009/08/20 17:38며칠 전에 질렀습니다. 어서 보고 싶지만 주변 정리가 아직 안 되어서 오픈케이스밖에 못 해 봤네요 ㅠㅠ
2009/08/20 22:31하녀 리메이크.... 저런 작품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이 정말 상상 이상의 압박일 거에요. 그나저나 진행이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얘기가 갑자기 안 들려오고 있어서..;;
드디어 봤슴다! 무섭고 재밌었어요
2009/10/07 09:23역시 세상은 광고투성이; 왠지 이 글 보니까 정말 무조건 사야 될 것 같은 기분이 잠시 들었다. 휴-
2009/11/02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