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비디오였다. 아시아에선 <주온>, 북미권에선 <그루지>라는 이름으로 장장 8편이나 이어진 <주온> 시리즈는 1999년 당시 무명이었던 시미즈 다카시의 비디오 영화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1시간을 조금 넘는 러닝타임의 두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조악해 보이기 십상인 비디오 특유의 질감을 역이용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포를 조합했다. 느릿한 호흡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화면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시간의 구성을 뒤섞어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치밀한 구성이 단연 압권이었다.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퍼졌고 시미즈 다카시는 순식간에 촉망받는 신인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곧이어 극장용으로 다시 만들어진 <주온>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마저 석권했으며 곧이어 할리우드 역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일본식 주택을 활용한 농밀한 공간 감각이나 원혼, 저주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 할리우드의 구미를 자극했던 것. 곧 <링>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성사시켰던 제작자 로이 리와 <이블 데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제작, 연출했던 샘 레이미가 시미즈 다카시를 불러들여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니 그 제목은 원한이라는 뜻의 <그루지>. 미국에서 첫 공개된 <그루지>는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시미즈 다카시는 2편까지 연출을 맡았다. 7월 개봉한 주온 탄생 10주년 기념작 <주온: 원혼의 부활> 그리고 8월 27일 국내 공개되는 <그루지 3>의 개봉에 즈음해, <주온> <그루지> 시리즈의 모든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일본에서 창궐한 공포의 역병, 그 10년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 유주하 기자(FILMON)
<주온> <주온 2> 비디오판 呪怨, 呪怨2, 1999
1시간 10분 남짓한 두 편으로 나뉜다. 30분 정도는 겹쳐지는 내용으로 총 90분정도의 분량이다. 만삭의 아내를 둔 학교 선생 고바야시(야나기 유레이)의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영화는 고바야시의 가정방문, 고바야시의 학교, 그리고 그 학교의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의 공포를 풀어놓는다. 주온의 뜻을 명시하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향후 10년간 이어질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문제의 집과 제작진의 크레딧을 교차로 보여준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적혀있는 담백한 크레딧, 그 사이사이에 마룻바닥을 비추고 계단을 비추고 다락을 비추는 것만으로 공포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시리즈 사이에서 가장 무섭다고 일컬어지는 작품들. 고요하게 흘러가지만 끔찍한 장면들이 많다. 턱이 날아가 버린 여고생, 임산부를 유린하는 미치광이가 등장한다. 절대 혼자보지 말 것.
<주온> 呪怨, 2002
비디오판의 인기에 힘입어 극장용으로 제작된 시리즈의 첫 편이다. 시점은 비디오판의 이후로 잡혀있다. 내용은 여전하다. 가야코(후지 타카코), 토시오(오제키 유다)의 원혼이 집을 중심으로 무차별 학살을 벌인다. 광각렌즈로 잡아낸 일본식 주택의 적막함도 효과적이지만 기이한 음향이 더 무섭다. 향후 반복 재생산될 토시오의 명장면들이 줄을 잇는다. 엘리베이터 토시오, 침대구석 토시오, 계단난간 토시오, 그리고 “토시오” 하는 토시오까지. 이불 속 가야코나 계단 하강 가야코도 빼놓을 수 없다. <주온>시리즈의 세계관은 기존 서구공포영화의 그것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여준다. 선악의 대립, 내지는 선의 승리 따위가 아예 검토도 되지 않는 세상이다. 일례로 원혼의 저주를 밝혀내려는 형사들이 등장하는데, 집념어린 이들 모두가 계단 하강 가야코에게 한 번에 몰살당한다.
<주온 2> 呪怨2, 2003
1편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다양한 설정들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주온 2>는 추리의 요소를 살짝 첨가해 극의 긴장감을 상승시키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영화를 시도함으로서 장르적인 설정을 변주하기도 한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무엇일까?” “바닥에 얼룩은 무엇 때문일까?” 같은 의문이 전자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면 주인공 쿄코(사카이 노리코)가 공포영화 전문배우라는 점. 그리고 그녀가 공포영화나 공포에 관련된 TV프로그램을 찍게 된다는 설정은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쿄코의 임신공포도 만만치 않은 역할을 담당한다. 수술실을 초토화 시키는 사악한 분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양육이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를 연상케 한다.
<주온: 원혼의 부활> 呪怨3, 2009
주온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주온: 하얀 노파>와 <주온: 검은 소녀>를 하나로 묶어 개봉한 것이다. 그동안 연출을 맡았던 시미즈 다카시는 일선에서 물러나 제작과 각본에 참여했고 미야케 류타와 아사토 마리가 연출을 담당했다. <주온: 원혼의 부활>은 다시금 비디오영화 시절의 <주온>으로 돌아간 작품이다. 담백한 화면과 느직한 리듬감이 10년 전 주온을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는 여전히 끔찍하다. 가야코, 토시오의 원혼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하는 내용과 비극적인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농구공을 들고 등장하는 할머니 귀신에서 웃음이 터질 수가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 기대가 높았던 탓인지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주온> 시리즈의 10주년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다.
<그루지> The Grudge, 2004
샘 레이미는 <주온> 시리즈의 가능성을 떡잎부터 알아봤다.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시미즈 다카시에게 리메이크 작품의 연출을 의뢰했고 <그루지>를 자신이 설립한 공포영화전문제작사 ‘고스트 하우스 픽쳐스’의 첫 작품으로 자신 있게 선택했다. 이쯤 되면 마케팅차원에서도 이미 이기고 들어간 셈. 영화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모티브로 한 오프닝 크레딧부터 비범한 인상을 풍겼고, 이는 미국인들에겐 충분히 새로울 만한 ‘시미즈 스타일’이었다. 박스오피스 성적은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개봉 첫 주에 전체 제작비의 4배를 벌어들였고, 개봉 2주차에는 1억 달러를 넘어서는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시미즈 다카시는 전미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이 됐다. 할리우드의 배우와 시스템이 만든 작품이지만 배경이나 효과에 있어서 <주온>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문제라면 미국영화 특유의 해결사 주인공이다. 캐릭터의 의지를 무시한 채 무차별적인 죽음이 벌어지는 <주온>시리즈에서 해결사 주인공은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루지 2> The Grudge 2, 2006
<그루지 2>는 <주온 2>처럼 새로운 설정들이 시도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전편의 주인공 카렌(사라 미셸 겔러)을 20분 만에 죽여 버리고 그녀의 동생 오브리(엠버 탐블린)로 하여금 <주온> 시리즈, 아니 <그루지> 시리즈의 비밀을 추적하게끔 이끈다. 결국 밝혀지는 가야코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무당집안의 딸로 태어나, 자신의 몸에 원혼을 가둬둔 채로 자랐고, 폭력적인 남편의 손에 무참히 살해돼 그 원한이 폭발하게 되었으니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 보시다시피 알고 보면 시시해지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덕분에 <그루지 2>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능력은 여전해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고스트 하우스 픽쳐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루지 3> The Grudge 3, 2009
<주온 - 원혼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그루지 3>에서도 시미즈 다카시가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신 신인 감독 토비 윌킨스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그간 <주온> <그루지> 시리즈가 머무르던 일본식 2층 연립주택을 벗어나 시카고에 위치한 허름한 아파트를 새로운 배경으로 삼는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변화와 함께 시리즈의 매력이 휘발됐다는 점이다. 가야코와 토시오의 등장에서 예전의 극적인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진데다, 지독하게 작위적인 캐릭터 나오코(이케하타 에미, 그녀는 무려 가야코의 자매다)가 등장해 <주온> <그루지>의 비밀스런 분위기를 온통 휘저어 놓는다. 불가해한 스토리텔링을 특유의 느직한 리듬감으로 표현하던 <주온>의 음험한 매력이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생뚱맞게 뛰어다니는 토시오는 무섭기는커녕 우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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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코 소리가 생각나네요. 꺽 꺽 꺼 꺼 꺽....
2009/08/28 11:55워낙에 공포영화를 못보는 체질이라 포스터만 봐도 머리카락이 쭈삣 올라섭니다.
2009/08/28 14:25한쪽 눈 감고 읽어보았어요. ㅠ.ㅠ
즐거운 오후시간 되시길 바래요.
마지막 부분에 ' 무려 가야코의 자매다'
2010/10/17 09:39이글을 쓰신분이 기자인지는 모르지만
기자가 아니라도 그렇지 많은 사람들 보라고 써놓은 글이 이따윕니까??
무려 가야코의 자매다...
제가 왜 이런 댓글을 다는지 모를만큼 무식하시다면
무려라는 단어 검색을 해보세요
한글날 당신을 가둬놓고 하루종일 굶기고 싶군요
독자니임 웃자고 던진 것을 죽자고 받으시면 어쩌십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되시지 말입니다. 정히 '무려'의 사용법을 구실로, 누군가를 가둬놓고 하루종일 굶기고 싶으시다면 지엄한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간단하게 '무려'라 쓰고 '심지어'로 읽으시면 되시겠습니다.
2010/10/20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