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8월 31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일

FOCUS ON 2009/09/01 02:19 Posted by 쥬하

8월 31일 4시, 씨네큐브가 분주합니다. 매표소는 조명을 재배치하고 화면을 떼었다 붙이느라 어수선합니다. 그 주변에선 씨네큐브의 부흥을 이끌었던 초기 상영작의 필름들을 직접 잘라 소장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한창입니다.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물러나는 백두대간이 준비한 행사죠. 이런 저런 소문이나 소식을 듣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저마다 기억의 조각을 찾으려는지 필름들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합니다.

잠시 후 4시 30분, 마지막(?) 상영작 <세라핀>의 상영이 끝났습니다. 곧 이어 이벤트 형식으로 마련된 <타인의 취향> 무료 상영회가 준비돼 있으니, 엄밀하게는 ‘마지막 유료상영’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상하지요. 영화관 입구에 세워진 알림판에는 조금은 헷갈리는 내용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굿바이 큐브’ 라는 헤어짐의 인사가 적혀있는데, 바로 옆에는 “늘 그래왔듯 예술영화관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이 보란 듯이 적혀있으니 말이죠.



사실 8월 31일은 ‘씨네큐브의 마지막 날’이라기보다 ‘백두대간 씨네큐브의 마지막 날’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간 씨네큐브를 운영하던 백두대간이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니까요. 9월 1일 이후에도 영화관 씨네큐브는 변함없이 영화를 틀고 관객을 불러들일 예정입니다. 변한 것은 백두대간을 대신해, 케이블 TV 방송업체 티캐스트(Tcast)가 씨네큐브를 운영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2000년 지금의 광화문 자리에서 문을 연 씨네큐브는 백두대간과 흥국생명의 상호협력관계 안에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백두대간에서 영화수입과 홍보, 기획에 관련된 비용을 담당하고 흥국생명에선 극장건물의 임대료 및 매표인력, 영사실 인건비를 부담하는 식이었죠. 그러던 것이 지난 5월, 흥국생명의 갑작스런 협력 중단 통보가 있었던 겁니다.



두 운영주체가 서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일방적인 통보라는 건 다소 폭력적인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그 통보를 통해 관계가 끝나기라도 한다면 분명 마음이 상하게 되는 쪽이 생기게 되고요. 더구나 영화사 백두대간은 1995년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씨네마텍을 시작으로 지난 15년 동안 예술영화 산업을 뚝심 있게 밀고나간 기업이었으니, 이런 식의 갑작스런 통보에 그 상처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새로 씨네큐브의 운영을 맡은 티캐스트는 흥국생명과 마찬가지로 태광그룹의 계열사입니다. 재밌는 점은 이 티캐스트의 씨네큐브 운영을 흥국생명이 지원한다는 사실이죠. 정리하자면 이번 씨네큐브를 둘러 싼 사건들은 백두대간을 배제한 태광그룹의 예술영화사업 진출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할까요. 마냥 대기업의 횡포라고 비난하기엔 오랜 시간동안 예술영화산업에 힘을 보탰던 태광그룹의 공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예술영화산업의 맏형 역할을 자임했던 백두대간 측의 억울한 심정은 또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다행인 것은 티캐스트가 씨네큐브의 정체성을 여전히 예술영화관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입니다. 9월 1일 씨네큐브에선 8월 31일의 씨네큐브 상영작이었던 <조용한 혼돈>과 <블랙>이 상영됩니다. 상영이 예정된 영화들도 기존 씨네큐브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입니다. 전주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하는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를 비롯해 2005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됐던 <하바나 블루스>, 2008 말라가 스페인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산타렐라 패밀리> 같은 작품들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씨네큐브만의 고집이라 할 수 있었던 엄격한 관람 문화 역시 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티캐스트 측은 물을 제외한 음료 및 음식물의 반입 금지, 영화 정시 상영, 영화 시작 후 10분 이후 입장제한 등 기존의 방침들을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술영화관의 운영권마저 자본의 힘으로 인해 재편되는 광경은 적잖이 살벌해 보입니다. 백두대간은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물러나는 대신 이화여자대학교에 위치한 예술영화관 아트하우스모모의 운영에 좀 더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희망이 있다면 백두대간과 티캐스트의 관계가 국내 예술영화산업을 선도하는 건전한 대결구도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8월 31일 씨네큐브를 찾은 관객들의 열띤 표정을 바라보면서 더욱 더 간절해지는 생각이었습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연관기사
FILMON, 그들 각자의 영화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film-on.kr/trackback/606 관련글 쓰기

  1. 씨네큐브 폐관..상업주의에 멍든 가슴들

    Tracked from 평범한 땀c  삭제

    이메일을 열자,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씨네큐브의 운영을 접으며...... 얼마 전에도 "반두비"를 이 곳에서 보고,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씨네큐브를 닫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영화사 백두대간은 2010년 개관 10주년을 앞두고 씨네큐브 리노베이션 마스터 플랜을 세우는 등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러나, 2015년까지 앞으로 6년간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

    2009/09/01 11:40
  2. 이사간 친구, 씨네큐브에게.

    Tracked from 극장을 더 좋아한다.  삭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인지. 어쩌면 이전에 만났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때쯤 만났다는 건 분명하지. 2003년 늦가을. 입대를 앞두고 휴학했던 때, 나는 혼란스러웠어.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딘지 알 수 없었지. 그러다 우연히 너를 찾았어. <씨네21>을 보고 찾아갔었나... 아니면 신문 문화면에 나온 기사를 봤는지도. 사미라 마흐말마프란 감독이 찍은 이란 영화 <칠판>은, 참 우직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었어. 칠판을 등에 지고 산을..

    2009/09/02 08:49
  3. [올블로그 티페이퍼] 가을이 온다. 그리고 가을을 탄다.

    Tracked from 올블로그 티페이퍼  삭제

    62,070 명에게 발송된 올블로그 티페이퍼 제 80 호에 이 글이 실렸답니다.^^; 확인해보러 가시겠어요?

    2009/09/03 14:2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jisimy.tistory.com BlogIco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한 표현이네요.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체한 것 같은... 자본력에 있어서 차이가 엄청날텐데, 건전한 대결구도가 가능할지, 걱정이에요.

    2009/09/01 11:36
  2. 새벽거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깝깝할 따름이죠... 상황은 어렵게 돌아가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라도 있어야 다양성이 보장될 판국에 영진위 측에선 계속 예술영화관을 압박하는 짓이나 해대고 있으니... 올해 있었던 아트시네마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그나저나 전 대기업의 예술 지원에 대해선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건 국가적으로도 매우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문제는 얘네들이 이걸 순수한 차원에서 환원을 하느냐, 아니면 기업 이미지 메이킹에 써먹느냐라는 건데, 기자님 말씀대로라면(백두대간을 지원하다가 이제와서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자기네가 운영권을 가졌다는) 이건 후자 쪽에 가까운 일인 것 같아 씁쓸하네요. 만약 이게 어느 쪽이든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금방 없애버릴 가능성도 농후하니까 말이죠. 어쨌든 이제부터 전 광화문 시네큐브 불매하렵니다. 참 꼴뵈기 싫은 이면이 있었네요.

    2009/09/18 13:54

◀ Prev 1  ... 326 327 328 329 330 331 332 333 334  ... 740  Next ▶

카테고리

FILMON (740)
REVIEW ON (343)
FEATURE ON (121)
PEOPLE ON (86)
CULTURE ON (68)
ESSAY ON (59)
TALK ON (15)
FOCUS ON (39)
NOTICE ON (8)
CONTACT US (1)

영화웹진 FILMON

'미래'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미래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Copyrightⓒ FILM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