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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빌>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1965년 파리를 찍어놓고는 미래도시라고 우기는 것도 그렇지만 전형적인 필름느와르 캐릭터 레미 코숑(이반 존슨이라고도 한다. 에디 콘스탄틴)을 미래도시를 탐사하는 주인공으로 삼은 설정도 만만치가 않다. 거기다 잊을만하면 흘러나오는 폴 엘뤼아르의 초현실적인 시구들(아니면 단지 추상적이기만 한 헛소리들)까지. 관객들은 외치게 될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란 말인가” 달리 할 말이 없다. 이게 바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작가주의’라는 단어를 태동케 한 장 뤽 고다르의 영화니까.

1965년 작 <알파빌>은 장 뤽 고다르의 다른 작품들 <네 멋대로 해라>(1960)나 <주말>(1967) 과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의 중심에 서있던 흑백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사립탐정인지 정부요원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레미 코숑이 알파빌을 지배하는 슈퍼컴퓨터 알파60의 개발자 폰 브라운 박사(하워드 베르농)를 납치, 또는 암살하기 위해 알파빌에 들어왔다가 애꿎은 슈퍼컴퓨터만 망가뜨린다는 내용이다.


가상의 미래도시 알파빌은 침묵, 논리, 안전, 신중함을 원칙으로 삼는 슈퍼컴퓨터 알파60의 조종 아래 모든 인간들이 감정과 언어를 통제당하는 도시다. 레미 코숑은 브라운 박사를 찾는 과정에서 알파빌의 여인 나타샤(안나 카리나)와 운명적인 사랑을 겪으면서, 시의 힘으로 알파60이 완성한 논리와 과학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놀라운 것은 이런 초현실적인 설정들을 풀어내는 고다르만의 기법이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지금의 기준으로도 신선하다는 사실이다.

일단 고다르는 미래도시 알파빌의 겉모습이 현재와 다를 바 없다는 태도로 영화를 진행한다. 인물들의 복색은 물론, 건물, 차량까지, <알파빌>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 특유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의 눈으로 보자면 이러한 특징 덕분에 영화는 여타 SF영화들이 이루지 못한 현실적 미래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SF영화로서의 면모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고다르는 특정한 건물이나 구조물의 기하하적인 구도를 활용해 미래적인 감각을 투영한다거나, 몇 가지 설정들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방법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공간과 시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미셸 코숑은 <알파빌>을 이끌어 가는 심장과도 같은 캐릭터다. <카사블랑카>(1942)의 험프리 보가트를 연상케 하는 이 남자는 어울리지 않게 시를 읊조림으로서 알파60을 말 그대로 무찌른다. 코숑은 자신에게 농 짓거리를 거는 남자에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들이대는 사내다. 그런 그가 로봇처럼 살아가는 알파빌의 여인 나타샤를 사랑으로 일깨우더니, 좀 있다가는 논리와 이성의 화신 알파60에게 시의 난해함을 알려 자멸케 하는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부분은 가히 도전적이라 할만하다. 필름느와르식의 추적이 계속되다가도 알파60의 내레이션과 코숑의 내레이션이 사정없이 어우러지는가 하면, 곧이어 코숑과 나타샤의 연애사가 멜로드라마 풍으로 펼쳐지는 것이 <알파빌>의 서사방식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코숑과 알파60의 대결이나 코숑과 나타샤의 탈출 대목에선 아예 기존의 내러티브를 완전히 벗어난 영상기법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영화의 곳곳에서 흘러나오던 엘뤼아르의 시가 영상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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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하 2009/09/02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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