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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27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실종된 장소가 있다. ‘실종’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바처럼 3,270명이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 행방과 생사 여부는 여전히 묘연하기만 하단다. 뚜렷한 이유 없이 계속해서 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경신해가며 실종사건을 이어가는 발칸반도 리스니야크산은 그야말로 실존하는 미스터리의 근원지나 다름 없는 곳. <하이레인>은 이 험준한 미스터리의 공간을 무대삼아 암벽등반을 떠난 5명의 고교동창들이 실종된 1997년 실제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당연히 모든 이야기는 추측과 상상에 근거한다. 실종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3,270이란 숫자를 채운 이들 5명의 행방 역시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다만 영화는 이 정도 숫자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면 어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 천연의 요새 어느 곳에는 미지의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며 조심스레 운을 뗀다. 텍사스 어느 시골마을에 전기톱을 드리우던 살인마가 있었던 것처럼. 또 유럽 어느 곳에는 고문을 알선하는 호스텔이 있을지도 모르고,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는 오로지 소리에 의존해 먹잇감을 덮치는 어떤 존재가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하이레인>은 출입을 제한한 산악 루트를 따라 다다른 어느 이름 모를 산꼭대기쯤에는 인간사냥을 업으로 삼은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슬그머니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레인>이 모티브를 얻은 이 미스터리 공간은 장소에 서린 기괴함보다는 해발 1750M라는 장소 그 자체의 긴장감으로 우선 승부한다. 영화는 이 재료를 가공하기 위해 5명 주인공들 사이에 암벽등반 초심자를 배치하고 연적관계를 형성하면서 본격적인 조리에 나선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하이레인>은 로프 하나에 의존해 산을 오르고 마침내 ‘악마의 다리’라고 불리는 인공구조물을 건너며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맞이하기까지 관객에게 고소공포와 현기증을 효과적으로 이식한다. 이를 위해 카메라는 암벽등반 초심자 로익(요한 리베로)의 시선에서 서늘하고도 어지럽게 움직이고,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짜증을 부리는 게 외려 마땅해 뵈는 사악한 등반 코스는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폐쇄된 루트를 무시한 무모한 산악행, 그리고 이 모임에 갑자기 합류한 기욤(라파엘 렌글레)과 그로 인해 불거지는 불편한 관계는 이들 일행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를 선사함으로써 아무도 없는 깊은 산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서스펜스를 치밀하게 밀어붙인다.


하지만 다리가 끊어진 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5명에게 미지의 존재가 접근하고 또 이 존재가 서서히 실체화되면서 영화는 오히려 3,270명에 근거한 상상력이 조악했음을 스스로 상기시킨다. 특히 덫과 석궁 등을 꽤 정교하게 다루는 이 정체 모를 살인마가 그 존재를 완전히 드러낸 이후의 전개상황은 매순간 맥을 풀어놓기 충분하다. 그만큼 미스터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압도적인 공포감을 전달하고 형상화해야 할 존재는 멍청하고 나약하다 못해 때때로 상식 이하의 수준으로 행동하기 일쑤다. 영화는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이 미지의 존재에게도 자그마한 실화의 조각을 덧씌우며 상상력을 담보 받고자 하지만, 험준한 산세를 충분히 활용한 가운데 ‘칼네아데스의 판자’식의 위기감과 공포를 더했던 전반부의 순수한 서스펜스에 비한다면 이는 그저 아쉬운 위기, 나태한 절정에 그칠 뿐이다.

<하이레인>은 현기증이라는 뜻의 원제 ‘Vertige’에 의존했던 전반부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그만큼 절경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와 이에 따른 심리적 긴장감은 실화에 모티브를 얻은 영화의 시발점을 그럴듯하게 받친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프랑스산 산악 버전 <디센트>’ 정도를 목표했던 종착지를 향하며 득보다는 실의 하산행을 택했다. 귀신이나 괴물보다도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말. 이 말의 껍질이 아닌 본질을 이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남는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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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다이스 2009/09/0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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