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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스타일리시 디스토피아 애니메이션

REVIEW ON 2009/09/09 06:05 Posted by 파란다이스


2006년 아카데미 단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주목받았던 쉐인 액커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9>이 보다 명확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스토리 라인을 다지며 동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됐다. <9>은 이전 단편작과 마찬가지로 쉐인 액커가 감독을 맡아 단편의 간결한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팀 버튼과 티무르 베크맘베토프가 공동제작자로 가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시 파괴된 유럽의 잿빛 풍경과 폴란드 초현실주의 작가 지슬라브 벡진스키의 판타지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독특한 질감을 보다 구체화했다.
 

문명은 전소되고 생명체 또한 완전히 사라진 황량한 도시에서 천조각과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마지막 생명체들이 기계괴물과 싸운다. 그저 익숙한 SF 설정 같지만 <9>의 세계관은 기계문명과 중세시대 신비주의 과학의 절묘한 교집합을 향하며 특별한 영지를 구축해낸다. 전쟁으로 치달았던 탐욕의 시대 이후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폐허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기계들의 척살 작업은 SF 컨셉을 기반으로 한 기계문명의 잔재를 공고히 한다. 그러나 등번호를 달고 있는 소형인간들이 단순 인조인간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지상 최후의 생명체임을 분명히 하는 설정은 이 평범하고도 익숙한 디스토피아에 유효한 변칙수를 행사한다. <9>은 연금술사의 시대, 즉 과학 이전의 시대에 소형인간이라는 뜻의 ‘호문쿨루스’를 창조하려 했던 판타지를 계승함으로써 ‘생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영화의 대명제에 중요한 해법을 제시할 뿐 아니라 영화의 거의 전부를 담당하고 있는 세계관에도 보다 흥미로운 토대를 마련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9>의 가장 독특한 성취는 빛바랜 세피아 톤으로 구현된 폐허와 기계문명의 잔재로 이루어진 세계 그 자체다. 여기에 조리개를 움츠리며 멍한 감정을 발산하는 소형 생명체들의 생경한 디자인과 움직임이 더해지고 이들이 작은 기계부품 등을 이용해 만든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이 가세하면서 생소한 질감의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나는 것. 또한 기계괴물과 소형인간들을 정교하게 대치시키는 수려한 액션 신 역시 독특한 세계와 스타일 자체가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9>의 위상을 더욱 뒷받침한다.


스타일은 스토리마저 압도했다. 각기 다른 능력과 성격을 지닌 9명의 캐릭터들을 롤플레잉 게임식으로 그저 계속해서 괴물들 앞에 풀어놓는 진행방식은 잔뜩 미스터리를 머금은 영화의 풍경마저 단순화한다. 이들을 공격하는 코브라나 익룡 형태의 기계괴물 등이 단순히 외관상의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매 장면 효과적인 액션 시퀀스를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험을 주장하는 주인공 9(일라이저 우드)과 희생과 은둔을 당연시하는 리더 1(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대치, 그리고 주인공들의 탄생비화와 목적과 같은 중요한 줄기 또한 단선적이고 부수적인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아홉수 ‘9’가 상징하는 바대로 온통 세기말을 향할 것 같은 <9>의 세계가 결코 암흑과 폐허에서 나뒹굴지 않으며 매순간 모험으로 빛나는 것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단선적인 스토리마저 상쇄할 우월한 스타일. 빛나는 스타일의 디스토피아를 구축한 <9>의 특별한 영예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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