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하] <황금시대>가 개봉합니다. 올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는데 혹시 보셨나요? 그때는 제목이 <숏!숏!숏! 2009>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파란]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기획작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정식개봉까지 하게 되다니 이 작품에 참여한 10명 감독들의 말마따나 감회가 참 새롭네요.
[쥬하] 감독들 역시 감동적일 겁니다. 이게 아주 예산이 빡빡한 프로젝트였더군요. 편당 500만원. 10편이니까 총 5000만원으로 만든 영화라죠. 영화제용 영화를 넘어 일반 극장에서 개봉을 하게 될 줄 예상이나 했는지 모르겠어요.
[파란] 싼값으로 만들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기획이고 가격대 효율면에서도 최고인지라 흥행에도 성공하면 참 좋은 선례가 될 듯한데 말이죠. 관객 3만 명이 넘으면 각 감독들에게 인센티브조로 100만원이 지급된다죠?ㅋ
[쥬하] ㅋㅋㅋ 전 울 뻔했어요. 스탭들은 거의 무료 봉사했다던데 이분들에겐 인센티브도 없겠죠?
[파란] 감독들에게 지급될 100만원이 곧 스탭들의 인센티브겠죠. 뭐 어쨌든 중요한 건 영화 개개의 수준은 절대 500만원의 수준이 아니라는 거.
[쥬하] 동감이에요.
[파란] 스탭들이 오직 열정만 갖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요놈의 구조는 무척 안타깝지만 일단 처우 문제는 둘째 치고 경쟁을 통해 좀 더 괜찮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을 감독들의 노고만 생각한다면 결과는 꽤 대단합니다.
[쥬하] 완성도가 높은 편이죠, 그것도 꽤 고르게.
[파란] 영화의 주제는 제목처럼 ‘황금시대’, 즉 돈이었어요. 작품이 바뀔 때마다 동전이 땡그랑 거리면서 몇 번째 작품인지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근데 돈이라는 하해와 같이 넓은 주제만 던져주고 이걸 각자 알아서 요리하라고 하니 꽤 재미난 해석들이 나오더란 겁니다. 개중엔 주제라기보단 소재로 사용한 영화도 있었고요. 또 돈의 사회적 의미부터 단순 물리적 의미까지 참으로 다양했더랬죠.
[쥬하] 확실히 제목처럼 주제가 한정적으로 주어졌다면 영화들이 비슷비슷해질 수 있었죠.다행히 각각의 작품이 아주 다른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1. 최익환 감독의 <유언 Live>
[파란] 첫 번째 영화부터 들어가 볼까요?
[쥬하] 첫 번째 작품은 <여고괴담 4: 목소리>을 연출했던 최익환 감독의 <유언 Live>입니다. <유언 Live>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지지리 복도 없는 두 청년이 연달아 당한 사기에 밑천을 모두 날려먹고 자살 시도를 한다는 내용이죠. 이 모든 과정은 단 하나의 롱테이크로 완성된 영화이기도 하고요. 내용만 보면 매우 센 내용이 나올 것 같지만 사실 진행은 매우 코믹합니다. 코믹하다기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작정하고 코미디를 시도하는 편이죠.
[파란] 게다가 10편의 작품 중 가장 연극적인 작품이었죠.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되어 있고 코믹한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롱테이크로 담기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 여기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웃거리는 아주머니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말이죠.ㅋㅋ
[쥬하] ㅎㅎㅎ 시장바닥에 위치한 가게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시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보이더군요. 어떠셨어요? 좋으셨나요?
[파란] 이 작품이 이 영화의 맨 처음을 장식하게 된 까닭은 비교적 명확하지 않던가요.
[쥬하] ?
[파란] 10작품 중 ‘황금시대’라는 주제를 별다른 비틈 없이 가장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작품인지라 변칙적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돈을 은유하고 있는 다른 작품에 비해 <황금시대>라는 영화 전반의 기획에 대해 가장 유효적절한 설명을 해내고 있는 작품이죠. 물론 아이디어도 재미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기 때문에 적절히 포문의 기능을 해낼 수 있었던 거구요.
[쥬하] 저는 좀 별로였어요. 바로 언급하신 그 정직함 때문에 진부한 느낌이 있더군요.
[파란] 네, 뭐 저도 쉽게 말하자면 그런 얘기 한 거죠.ㅋㅋ
[쥬하] 코미디도 좋고, 배우들도 잘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좀 그랬죠. 이것 역시 동전의 양면이겠죠?
[파란] 네. 어쨌든 그래도 <황금시대>라는 영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작품이 기준 노릇을 할 필요는 있었겠죠. 감독이야 자기 작품이 기준에 머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ㅋ
[쥬하] ㅎㅎㅎ 아, 그리고 언론시사회 때 지나치게 웃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특히 이 작품에선 너무 웃으시더군요.
[파란] 웃기긴 하던데.ㅋ
[쥬하] 저는 웃기는 장면에서 그분이 너무 요란하게 웃으니까 웃기 싫어지더라는.
2. 남다정 감독의 <담뱃값>
[쥬하] 자, 2번째 작품은 <담뱃값>입니다. 이 작품을 연출한 남다정 감독은 단편영화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이다>를 연출했었어요. <담뱃값>의 줄거리는 좀 꼬여있습니다. 기사거리를 만들려는 방송기자의 어떤 씁쓸한 이야기죠.
[파란] 쉽게 말해 뉴스거리를 ‘연출’하는 얘긴데, 기자는 제목의 ‘담뱃값’처럼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에게 마이크를 달고 그 중학생은 노숙자에게 담뱃값을 쥐어준 뒤 담배를 사다달라고 부탁하죠. 요 상황에 청소년 흡연 문제를 방관하는 건 어른들이 문제다, 라는 식의 기자의 코멘트 하나만 붙어도 뉴스는 된다. 뭐 이런 씁쓸한 이야기랄까?ㅋ
[쥬하] ㅎㅎ 감독은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파란] 어떤 부분이 그렇다던가요?
[쥬하] 상황에 따라 약자였다가 강자가 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들이 모두 돈의 지배를 받는 다는 그런 것들. 좀 슬픈 이야기네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중생, 노숙자, 기자는 서로 돈, 즉 담뱃값을 중심으로 서로를 조종하고 상처 입히고 합니다.
[파란] 이들이 돈을 사이에 두고 결국 폭력관계까지 발전한다는 내용이 씁쓸하긴 하지만 다른 영화에 비해 그다지 아이디어가 빛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쥬하] 그래도 감독의 어떤 진심은 느껴지더군요.
[파란] 어떤 진심을 느끼셨는지?
[쥬하] 자신의 작업이 돈에 의해 순수성을 잃기도 한다는 걸 고백하는 내용이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좀 민망한 내용인데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여서 좋았습니다.
3.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
[쥬하] <동전 모으는 소년>은 <새드무비> <S 다이어리>의 권종관 감독 작품입니다. 학교 사물함 안에 커다란 유리병을 두고 동전을 모으는 어느 소년과 왠지 모를 퇴폐적인 기운이 흐르는 동급생의 부적절한 사랑이야기죠.
[파란] 사실 영화 전체에는 퇴폐적인 기운보다는 산뜻한 기운이 흐르지 않던가요. 마지막에 가서 영화가 이 산뜻함을 배신하면서 그 배신감이 더욱 극대화된다고 느꼈습니다만.
[쥬하] 이건 좀 의견이 갈릴 것 같은데요. 전 좀 퇴폐적이라고 느꼈어요. 처음부터 주변 여자아이들은 그녀를 흉보잖아요. 다만 동전 모으는 주인공 소년은 그녀의 실체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감을 품은 거죠. 물론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하고요.
[파란] 그 배신의 효과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영화는 상당히 산뜻한 느낌으로 치장하려 하죠. 자우림의 노래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라면서 흐르고.ㅋ 덕분에 어쨌든 결말부 동전 주머니의 활용도에 있어 확실한 효과를 보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청춘의 우울함이랄까. 잔혹한 성장담이랄까.
[쥬하] 말씀하신대로 확실히 둘이 데이트하는 장면은 많이 귀엽더군요.
[파란] 돈의 속성을 다방면으로 해석한 점도 생각해볼만하네요. 좋아하는 여자와 공연을 보러 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어느 순간 누군가를 해치는 도구가 된다는 직유가 바로 그렇죠.
[쥬하] 그런 면에서 여자아이를 표현하는 방식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죠. 그 나이 여자아이들처럼요. 덕분에 이야기는 성인풍이 됐죠.
[파란] 아무튼 이런 분위기는 제 취향.
[쥬하] 여자아이가 취향이었던 건 아니고요?
[파란] -3-; 근데 왜 그 남자아이는 집에서 동전을 모으던가 하지, 학교에서 모아서 이상한 애가 되는 건가요. 이런 건 그저 설정이니까 파고들면 안 되나.--;
[쥬하] 저도 그 점은 좀처럼 납득이 안 되더군요. 더구나 사물함에 그렇게 많은 동전을 두면 그게 온전히 남아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던데.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때 도난사건 한 번씩은 있었잖아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전을 모으고 있다면 전교생이 알고 있을 테고요. 뭐 설정은 설정일 뿐 집착하지 말자~ 이런 거겠죠?
[파란]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이 사실적인 드라마를 의도한 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여요. 전체적인 톤도 몽환적인 느낌을 상당 부분 부각시키고 있고 말이죠. 하지만 꽤 그림도 예쁘고 아이들의 연애 장면도 귀엽고 그래서 더 잔혹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쥬하] 특히 동전 모으는 그 아이, 누나들의 사랑 좀 받게 생겼더군요.
[파란] 오달수 씨와 함께 포스터를 장식한 기파랑 군이라죠. 앞으로 사랑 받나 지켜볼까요 그럼.
4. 이송희일 감독의 <불안>
[쥬하] 네 번째 작품 <불안>은 <후회하지 않아>의 이송희일 감독의 작품입니다.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차를 타고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는 내용입니다.
[파란] 두 남녀가 길가에서 고장 난 차를 고치는 문제를 가지고 실랑이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자가 이상하게 불안에 떨죠. 그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이것 역시 밝혀졌다고 하기 힘들고. 그냥 알 수 없는 불안. 바로 이게 이 작품의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에요.
[쥬하] 이 작품을 보면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적당히 통제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차 안과 차 밖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게 영화의 전부죠.
[파란] 하지만 그것 역시 박원상과 박미현이란 배우들이 있었기에 훌륭하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쥬하] 이송희일 감독의 인프라겠죠.
[파란] 박원상 씨는 그동안 여자 등쳐먹는 제비 역을 너무 많이 맡아서 그런지 영화가 진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고 있는 데다가 또 박원상 역시도 끝내 여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행동으로 일관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그냥 막 배어나오더군요.ㅋ 그게 사실상 이 영화의 ‘불안’ 요소를 극대화하는 지점인 듯합니다.
[쥬하] 저도 초반은 좀 혼란스럽고 짜증스러웠는데 마지막까지 가보니 정말 모든 가능성이 열리더군요. 정말 끝내주게 ‘불안’하게 끝나는 <불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이게 너무 결말을 위해 짜 맞춘 영화가 아닌가 싶었어요. 결말이 모든 걸 설명하긴 하는데 영화를 시간 순서로 볼 때 전반부부터 중반부까지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거든요. 단편이었길래 망정이지 조금만 더 호흡이 길었다면 정말 늘어지는 영화가 됐을겁니다.
[파란] 그러니까 단편이란 형식에 잘 맞춘 작품인 거죠. 근데 시간순서로 볼 때 어떤 게 납득이 안 되셨는지?
[쥬하] 아내의 불안이요. 궁금증을 증폭시키려는 건 알겠는데 기본적으로 인물의 개연성이 아예 존재하질 않아요. 힌트가 될 만한 것을 언뜻언뜻 내비친다면 좀 더 상승하는 맛이 있었을 텐데 그냥 계속 신경질, 짜증을 부리죠.
[파란] 그야 단편이니까······. 그 역시 의도적이었던 거 같은데. 도대체 왜 이 여자가 이러는지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키는 거죠. 그 불안 효과는 증폭되는 궁금증과 함께 적절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고요.
[쥬하] 여하튼 결말을 통해 빵 터지긴 하더군요.
5. 김은경 감독의 <톱>
[쥬하] 다음 작품은 <톱>입니다. 김은경 감독은 공포영화 <어느날 갑자기 세 번째 이야기: D-day> 를 연출했었죠.
[파란] <톱> 역시도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공포영화의 분위기를 빌리고 있죠.
[쥬하] 확실한 장르를 이용한 작품이다 보니 재미가 남다르더군요. 철물점을 지키는 청년에게 찾아온 미스터리의 여인이라.
[파란] 10분 분량의 단편에서 돈이란 주제로 공포영화를 해야겠다고 맘먹었다는 것만으로도 꽤 특별하다 할 만하죠.
[쥬하] 더구나 그 여인이 미인이라서 더 흥미롭고요. 여인의 정체에 대해서 상상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측면도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파란] 그 여인 엄청나게 매력적이던데.
[쥬하] ㅎㅎ
[파란] 아, 이정도면 주인공의 꿈에 등장할 만큼 정말로 영화의 목적에 걸맞게 자극적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쥬하] 배우 이름은 주은입니다.
[파란] 오케이. 메모 완료.
[쥬하] 확실히 공포영화에 있어서 주연급 여배우는 아름다워야 하는 건가요?
[파란] 그거슨 진리.
[쥬하] 쩝.
[파란] 여하튼 그녀가 군데군데 상처가 난데다 비에 흠뻑 젖어 문 닫은 철물점 안을 헤매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영화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끌어오죠. 게다가 짧은 시간 안에 장르적 장치들마저 꽤 여럿 활용하고 있더군요.
[쥬하] 전 배경을 철물점으로 잡은 것이 그냥 이상했어요. 별 개연성도 없어 보이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척척 들어맞더군요.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 유머를 좀 시도하는데 막상 영화를 볼 때는 피식 웃었는데 간혹 또 생각나면서 좀 더 많이 웃기더군요.
[파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인데 아마도 감독은 여기서 반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한 것 같아 좀 아쉽긴 했죠. 이 작품이 주제 면에서는 10작품 중 가장 돈을 피상적이고 소재적인 측면에서 활용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에로틱한 판타지와 호러의 경계가 맞닿아 있다는 것만은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점만큼은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화면도 참 예쁘고 말이죠. 더불어 여배우도······.
[쥬하] 음, 주은의 역할이 참으로 큰 영화로군요.
6. 양해훈 감독의 <시트콤>
[쥬하] 자, 이번에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연출했던 양해훈 감독의 <시트콤>입니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시트콤의 분위기를 내려는 영화입니다.
[파란] 이 작품은 부러 세트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고 또 코믹한 부분에 일부러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삽입하고 있기도 하죠.
[쥬하] 인물들 역시도 시트콤처럼 많이 과장됐죠.
[파란] 게다가 이 작품의 주인공 노형욱은 <거침없이 하이킥>, 윤영삼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통해 시트콤으로 각인된 배우들인데 이렇듯 그들의 백그라운드를 이용한 점도 이 영화의 본질을 명확히 하죠. 재밌는 건 윤영삼은 배우활동을 그만둔 상태라 감독이 출연을 설득하는 데 애먹었다고 하던데 결국 주말 딱 하루 시간을 내서 촬영하자고 해서 했다죠?
[쥬하] ㅎㅎㅎ
[파란] 그밖에 소유진, 윤동환 같은 배우들도 부러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이들이 ‘삼성LG’의 후계자 같은 얘길 하는 건 좀 웃기죠.
[쥬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생각보다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파란] 하지만 나쁜 놈의 대빵의 대빵의 대빵을 거슬러 오르는 건 별로 참신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고 그렇던데요. 이게 안 웃긴 건 진지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쥬하] 바로 그거죠. 강박. 진지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보겠다는 강박. 형식이나 시도 자체는 참신했는데 기술적으로 못 미쳤어요. 실제로 코미디는 덜 웃기고 진지하려 했던 내용은 산만하죠.
[파란] 주제의식을 꼭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하고자 하는 바,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는 우리 사회를 향한 ‘냉소’ 정도가 될 텐데 영화는 그 정도 선에서는 만족을 못했던 거 같아요. 덕분에 형식 자체는 특이한데 이를 자연스럽게 담아내진 못한 듯 합니다. 뭐 그런 것들이 어쩌면 영화의 제목처럼 시트콤일 수도 있겠네요.
[쥬하] 허긴 그러네요.
[파란] 하지만 철거민을 죽인 용역깡패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전부 시트콤이다, 라는 이야기는 불행히도 이제는 새로운 주장도 아니잖아요. 훌쩍. 형식적으로 꽤 재미난 설정이었기에 오히려 그 정도의 진부한 염세적 세계관이나 아이러니, 냉소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쁜 놈의 대빵의 대빵은 누구냐는 부분만 빼도 이 영화 꽤 깔끔할 것 같지 않나요?
[쥬하] 글쎄요. 전 그냥 코미디가 웃기지 않았던 게 참 곤란하더라고요. 어쨌든 웃기기로 작정했다면 웃기는 걸 얕잡아 보면 안 되죠. 이 역시 농익은 장인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인데 말이죠. 아니면 재능이 유별나거나. 그래도 소유진이 뜻밖에 좀 재미있던데요. 처음 수다스런 대사 부분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파란] 의상도 맘에 들었음.(부끄) 다음 넘어가죠.
7. 채기 감독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
[쥬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는 <빛나는 거짓>의 채기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한마디로 HD카메라로 촬영한 노숙자의 일상입니다. 좀 대놓고 예술영화 분위기 내는 영화라서 그런지 정신이 아득해 지더군요.
[파란] 10개 작품 중 유일한 흑백화면이 상징하듯 이 영화는 서사보다는 매 장면 이미지에 의존하죠.
[쥬하] 제가 공감할 수 있는 건 노숙자의 시간, 공간 감각이었어요. 좀 남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죠. 그런데 그게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어요. 전 감히 의심하건대 감독이 부족한 예산안에서 여태 생각해오던 촬영실험을 한 번 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파란] 좀 심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그냥 생활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일상성 안에 노숙자를 던져놓은 것 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누가 먹다 남긴 짜장면 그릇을 들고 끼니를 해결한다던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닦는 장면 등은 우리의 일상성과는 먼 광경이지만 이걸 생경한 무언가로 표현하고자 했다기보다는 정말 일상적인 풍경 아래 놓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쥬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파란] 어쨌든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확실히 다른 작품에 비한다면 이런 실험이 재미는 없죠. 너무 솔직했나..-3-;
[쥬하] 좀 미안한데요. 뭐 영화가 대중예술이기는 하지만 개념예술이 될 수도 있는 거겠죠.
[파란] 실제로 언론시사 때도 이 영화에 이르러서는 관객들 역시 다소 지루한 감을 숨기진 않던데.
[쥬하] 나중에 배드민턴 셔틀콕이 날아다닐 때는 저도 모르게 하품이;
[파란] ㅋ;;;
8.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
[쥬하] 여덟 번째 작품은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입니다.
[파란] 개인적으로는 제일 재밌게 본 작품이에요.ㅋㅋ
[쥬하] 윤성호 감독이야 <은하해방전선> <시선 1318> 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나름 믿을 수 있는 감독이죠. 최소한 웃기는 데에는 말이죠.
[파란] 맥락 없는 수다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계신 분이죠. 이 영화 역시 52주 연속으로 로또에 당첨된 남자의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전문가라는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 역의 임원희의 대사들 모두 뭔가 현학적이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껍데기에 다름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웃음이 묻어납니다.
[쥬하] 정말 말발 하나는 살아있더군요.
[파란] 이 경지는 윤성호 감독만의 유일무이한 색깔이기도 하죠.
[쥬하] 카메오들의 활약도 눈부셨죠. 진중권 교수, 이명선 아나운서, 양해훈 감독, 유운성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등등 정말 화려한 캐스팅이었어요. 좀 조합이 안 돼서 그렇지만요.ㅎㅎ
[파란] 이 영화 출연진 섭외에 대해 영화를 통해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나봤다는 윤성호 감독의 얘기가 인상적이던데요.
[쥬하] 확실히 수완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윤성호 감독은.
[파란] 이 작품 역시 그동안의 작품처럼 우익을 희화화하는 방법도 여전히 발군이고 말이죠.
[쥬하] 풍선 맞고 쓰러지는 여자 의원 정말 최고였죠. 그뿐만이 아니라 대사를 꾹꾹 눌러 담아선지 내용이 정말 많았던 거 같아요. 편집도 속도감이 넘쳐서 분위기가 붕붕 뜨더군요. 갑자기 극장 안이 후끈 달아오르더라는.
[파란] 어쩌면 이런 게 앞서 언급한 <시트콤>과 비교할 만한 지점이겠죠. 일단 이 작품 역시 냉소와 희화화가 넘치는데 굳이 그걸 주제의식화 해서 전면에 내세우진 않고 있어요. 덕분에 무지하게 웃기면서도 감독의 황금만능시대에 대한 단상 역시 확실히 드러나죠.
[쥬하] 확실히 웃기려면 요런 능청을 좀 부릴 필요는 있어요.
[파란] 비교컨대 형식적인 면에서도 과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설정은 더 참신해보입니다.
[쥬하] 각본 두께 또한 여타 <황금시대> 9편 합친 것하고 비슷할 거 같아요.
9. 김성호 감독의 <페니 러버>
[쥬하] 자, 다음은 김성호 감독의 <페니 러버>입니다. <거울 속으로>를 연출했던 감독이죠.
[파란] 또한 이번 기획의 반장님이셨다죠.
[쥬하] 네, 이 기획 자체를 두고 감독들과 의견조율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황금시대>에 참여한 단편은 뜻밖에도 멜로더군요. 다른 사람들 다 조율하고는 혼자 튀려고 한 건 아니겠죠? 여하튼 전 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았습니다. 과거 롤러코스터의 보컬이었고 지금은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 조원선을 주인공으로 해서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완전 유럽 스타일로 찍었더군요. 대사나 연기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요.
[파란] 작정한 멜로드라마였는데 건조하고도 아련한 느낌을 무진장 부각시키면서 진부함만큼은 확실히 벗어던졌죠. 추억에 매달리는 이야기라는 게 사실 구질구질해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특히 작정한 멜로의 형식이라면 더더욱.
[쥬하] 그렇죠. 그런데 조원선의 노래가 들어가니 이건 또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라고요. 적당한 무게도 있고, 달콤하기도 하고 쌉싸래하기도 하고. 조원선을 캐스팅한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그녀의 외모도 그렇고 연기 지도가 좋았던 덕분인지 카메라 앞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그야말로 저절로 삶이 녹아나더군요. 카메라도 인물의 얼굴 가까이 붙어서 감정을 세밀하게 전달한다던지 함으로써 전문배우가 아닌 사람을 배우로 기용했을 때의 장점이 한껏 묻어난다고나 할까요.
[파란] 정말 그녀의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냥 내버려둔 것 같은 날것의 느낌이 유효적절하게 작동하고 있죠.
[쥬하] 그런데 그에 비해 촬영은 매우 세련되서 이 느낌 또한 아주 좋았죠. 전 이 작품 때문에 김성호 감독이 조만간 멜로 장편을 찍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됐습니다.
[파란] 알고 보면 이 내용은 그저 옛사랑의 기억을 그리워하다 이제야 잊게 된다는 내용인데 그야말로 훌륭한 영화적 가공이 이렇게 옛사랑의 이야기를 또 한 번 뭉클 자극하게 하는군요.
[쥬하] 실제로 내용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익숙한 이야기죠. 한 여성의 홀로서기랄까. 그런 면에서 역시 <페니 러버>의 장점은 기술적인 성취가 월등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연기나 촬영 등이 충실하고 또 무척 세련된 느낌이죠.
10. 김영남 감독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
[쥬하] 자, 마지막 영화입니다.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은 얼마 전 개봉했던 <보트>의 김영남 감독 작품이죠. 이 이야기는 망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어떤 회사의 노사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파란]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순전히 조은지와 오달수라는 배우 그 자체의 캐릭터에 의존한 영화죠.
[쥬하] 그만큼 둘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어쩌면 연기가 아닐지도 몰라요.
[파란] 돈 못 주는 사용자와 돈 못 받은 노동자라는 이야기에서 계급과 관련한 얘기는 전혀 등장하지도 않거니와 영화는 둘의 앙상블을 작품의 거의 전부로 삼고 있어요. 이를테면 연기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의 둘의 호흡 역시 결과적으로 이 둘의 관계는 사장과 직원이라지만 사실 그들 역시 별반 다를 것도 없다는 동질감으로 흐르는데 상당한 역할, 아니 거의 전부를 해내고 있으니까요.
[쥬하] 각박한 세상을 따뜻하게 보려는 시도는 어쨌거나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달수가 연기하는 사장님 같은 분들을 좀 알고 있어요. 그분들 역시 정말 그런 느낌이죠.
[파란] 난 조은지 같은 노동자를 좀 알고 있는데······.
[쥬하] 여하튼 적당히 따뜻하게 웃기기에 성공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파란] 아무튼 이것 역시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살갑더군요.-3-
[쥬하]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가 극한으로 치닫더라도 결국 상대의 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식의 시선이 참 좋더군요.
[파란] 네, 씁쓸하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런 느낌. 이 역시 두 배우의 앙상블이겠죠. 실제로 이 영화에서와 같은 그런 역할을 맡았을 때 그 둘은 가장 빛나 보여요.
[쥬하] 그렇네요.
0. 누군가의 <황금시대>
[쥬하] 가장 좋았던 작품은 뭐였나요?
[파란]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이려나.
[쥬하] 하난가요?
[파란] ‘가장’은 원래 하나 아닌가요.
[쥬하] 음, 그렇다면 전 <페니 러버>입니다.
[파란] <동전 모으는 소년>도 좋았고요.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았던 거 같아요. 뭐 이렇게 보니 제각각의 색깔을 가진 단편들이 모여 정말 한상 제대로 차려냈다는 기분이군요. <황금시대>는 정말 이런 장르 저런 장르, 이런 실험 저런 시도 다 느껴볼 수 있다는 장점이 그득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요.
[쥬하] 저 역시 성공적인 옴니버스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파란] 10명의 감독들 또한 경쟁과 상호보완이라는 양 측면에서 굉장한 성과를 얻었다고 봐요. 흥행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포스터는 살짝 비호감이던데.
[쥬하] 전 이 10분 감독들의 헝그리 정신에 갈채를 보냅니다. 500만원으로 이런 영화들을 만들다니!
[파란] 아무튼 꼭 인센티브 챙기시고 더 재기발랄한 작품 또 다 같이 만드실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게 됐음. 독립영화를 향한 도의적 측면 완전 차치하고 순전히 영화 때문에요.
[쥬하] 장편이 기대되는 감독들도 많았습니다.
[파란] 이분들한테는 아무 주제나 던져줘도 정말 재밌는 거 만드실 분들이라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그나저나 말씀하신대로 조만간 다들 꼭 장편으로도 뵐 수 있기를.
[쥬하] 다만 고요한 응원을 보낼 따름입니다.
[파란] 아무튼 전주가 아닌 서울에서 만나게 된 <황금시대>가 개봉에만 의의를 두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기에 더더욱.
[쥬하] 실제로 소재도 막상 상당히 대중적이고요 돈이잖슴! 돈 얘기 보러 극장가세요~
[파란]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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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진사야의 비주얼 다이어리 삭제ⓒ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무겁지 않게 즐기는 돈의 향연 <황금시대>는 제목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돈(money)을 주제로 한 10편의 에피소드가 쉼 없이 돌아가는 옴니버스 영화다. 각 에피소드 속에서 비춰지는 돈은 빳빳한 초록빛 지폐가 되기도 하고, 잔뜩 낡아빠져 어디선가 구심점을 잃고 떠돌기만 할 수도 있는 10원짜리 동전이 되기도 하며, 언젠가 쓰임받기 위하여 꽁꽁 모셔져 있는 은빛 동전이 되기도 한다....
2009/09/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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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잼난 대담 잘 읽었습니다. 저는 <페니 러버>와 <톱>, <동전 모으는 소년>에 각 한 표씩 주고 싶어요. 셋 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훨씬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요. 특히 <페니 러버>는요. 어떻게 보면 열 세그먼트 중 가장 튀어 뵈는데, 그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2009/09/17 21:44그나저나 <유언 Live>를 놓고 연극 생각한 건 역시 저뿐만이 아니었군요 ㅋ 묘한 동질감 같은 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