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태원 살인사건>은 이렇다 할 기대감이 들지 않는 영화다. 항상 뻣뻣해 보이는 장근석이란 배우도 그렇고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이태원이란 장소도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다. 재미가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역시 많이 의심스럽고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그보다 더 의심스럽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문장 “I'll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with me." 가 더욱 미심쩍은 거다. 정말 근사한 거, 끝내주는 거 볼 수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이태원 살인사건>은 뜻밖에도 괜찮은 영화다. 기발한 반전이나 현란한 편집이 개입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것들을 충실하게 해내면서 특별한 관점에 도달하는 그리고 그게 충분히 관람의 재미나 의의로 이어질 수 있는 종류의 영화다. 물론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확실히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구어체의 cool, 즉 ‘멋지고, 근사하고, 끝내준다’ 보다는 ‘서늘하고, 차갑다’는 cool, 원래의 뜻이지만 오히려 잘 사용하지 않는 cool의 첫 번째 의미에 가까운 영화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이태원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런 영화들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관객은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범죄영화의 기본 서사를 인내심 있게 지켜보지 않더라도 사건의 진범이나 수사결과를 간단한 검색만으로 미리 알아낼 수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 아무리 치밀한 두뇌싸움을 펼쳐놓은들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을 이길 수는 없다. 범죄영화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출발인 셈이다.

대부분의 범죄영화들은 <프라이멀 피어>처럼 교활한 범죄자 내지는 <양들의 침묵>처럼 천재 범죄자를 등장시키거나, <트윈 픽스> 또는 <세븐>과 같이 어둡지만 현란한 스타일을 구사한다. 이러한 캐릭터나 스타일이 범죄를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그럴싸한 요소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이런 면에서 상당히 특이한 영화다. 사건의 두 용의자 피어슨(장근석)과 알렉스(신승환)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여타 범죄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교활하거나 천재적인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스타일 역시 차분한 편이다. 여러 가지 효과가 사용되는 부분이라고 해봐야 사건을 수사하는 박검사(정진영)의 내적 혼란을 표현하는 장면 정도가 전부다.


80년대부터 장산곶매, 서울영상집단 등에서 활동한 홍기선 감독은 이미 19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상업영화계에 데뷔한 중견감독이다. 그는 <이태원 살인사건>을 기존의 범죄영화와는 현격하게 다른 방식으로 몰아간다. 특히 혼란에 빠진 박검사(정진영)의 캐릭터는 영화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를 설명해 준다. 박검사는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 수사를 진행하지만 법의 불완전함은 그의 노력을 번번이 무위로 돌린다. 차근차근 진행되는 재판도, 안팎의 압력을 이겨내는 불굴의 수사력도 결국 무력할 뿐이다.

영화는 간혹, 현실과 박검사의 상상을 섞어 놓는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어떤 가혹한 현실이 살인사건보다 더한 긴장감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이 지점부터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주목하기 바란다. 여기서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어떤 기묘한 추위가 몸으로 스며드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다. 영화가 반복한 대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보여줄 게 있어, 따라와 봐" 유주하 기자(FILMON)


연관기사
<왼편 마지막 집> - 악다구니 인과응보
<오펀: 천사의 비밀> - 반전이 전부는 아니랍니다
<퍼펙트 겟어웨이> - 이 영화, 이 감독을 주목해야할 이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film-on.kr/trackback/625 관련글 쓰기

  1. 이태원 살인사건, 귀신에게 묻고 싶은 영화

    Tracked from 서른 살의 철학자, 여자  삭제

    이태원 살인사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 시작 전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 '팩션'임이 공지됩니다. 당시의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에게는 이 영화는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 내용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점이 있습니다. 뻔한 결론을 알면서도 전개과정이 궁금해서 또 보게 되는 인기드라마 같은 스타일입니다. 결론은 이미 알아도 그 과정을 재구성해 가는 과정이..

    2009/09/14 01:16
  2. 법제도의 맹점과 허망함 - [이태원 살인사건]

    Tracked from 컬쳐몬닷컴  삭제

    이태원 살인사건 감독 홍기선 출연 정진영, 장근석, 신승환, 고창석, 오광록, 김중기, 송영창 등 제작 영화사 수박, 선 필름 2009. 한국. @ CGV 나에게 4월 3일은 여느날처럼 평이하게 하루를 보내기가 어려운 날이다. 제주도가 고향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접했던 4.3항쟁의 이야기들은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빠져나오질 않는다. 우리 집은 특별하게 관계가 없는 이야기지만, 좁은 지역의 특성상 한 두 집 건너면 관계된 사람들..

    2009/09/18 16:0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lalawin.com BlogIcon 라라윈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리뷰를 읽으면서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9/14 01:16

◀ Prev 1  ... 312 313 314 315 316 317 318 319 320  ... 740  Next ▶

카테고리

FILMON (740)
REVIEW ON (343)
FEATURE ON (121)
PEOPLE ON (86)
CULTURE ON (68)
ESSAY ON (59)
TALK ON (15)
FOCUS ON (39)
NOTICE ON (8)
CONTACT US (1)

영화웹진 FILMON

'미래'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미래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Copyrightⓒ FILM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