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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비디오 가게가 있다. 작은 비디오 대여점도 구경하기 힘든 요즘 세상에 이건 엄연한 자랑질이다. 게다가 이 대여점엔 당신이 찾는 웬만한 타이틀이 다 있다. 없다면 당장 구해준다.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가면 단 몇 초 만에 번쩍이는 타이틀을 안겨주는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있는 꿈 같은 공간. 그러던 어느 날 대학시절부터 10년 간 드나들던 이 대여점의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대여점은 근처 시장 골목의 지하 창고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의 시름도 깊어졌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동네 유일한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 비디오 가게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문득, 이젠 존재 이유마저 위협받는 비디오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아저씨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무작정 비디오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가게를 찾았을 때 아저씨의 책상 한 켠에는 오래된 한국영화 테이프가 박스 한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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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영상 손태영 사장님.


귀한 테이프들이 다 모여 있네요. 뭐 정리라도 하세요?

, 이거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테이프들이에요. 여기(대여용 테이프를 가리키며) 분해하면 테이프 값을 변상해야 한다고 붙인 것도, 껍데기는 놔두고 알맹이는 복사해서 자기가 갖고 복사본을 테이프 안에 집어 넣어 반납하는 사람 때문이에요. 이 사람은 비디오 50여 개를 겉에 스티커까지 조작해서 원본을 복사본으로 바꿔치기 하다가 최근에 나한테 들킨 거죠.

 
(박스를 살펴보다) , <괴시>(1981, 강범구 감독)도 작년 말에 입수하신 옛날 한국공포영화죠. 이 영화도 불량 콜렉터에게 수난을 당했군요. 어떻게 리스트를 쏙쏙 뽑아서 훔쳐가는 지 신기하네요.

한국영화 콜렉터들은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아마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 보다 더 잘 알 거에요.  


정말 대단 하네요.

18년 동안 장사하면서 사람들 상대해보면 진짜 상상도 못할 짓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전에 <위대한 피츠카랄도>라고 아주 귀한 영화가 있는데, 그걸 두 번을 구했는데 둘 다 잃어버렸어요. 어떤 사람은 빈 가방을 가져와서 한쪽 면을 싹 쓸어간 적도 있어요. 그땐 도난방지기가 없던 시절이었죠. 도난방지기가 3백만원이 넘고 비디오에 '택' 하나 붙이는 백 몇 십 원씩 했으니까 그것만 해도 몇 천만 원이잖아요. 그러다가 <만두부인 속 터졌네>라는 에로 영화 2편이 나왔을 때, 2편을 본 누가 1편을 빌리러 와서 찾아 보니까 없더라고요. 그 때 씩씩거리며 전화해서 바로 도난 방지기를 달았어요. 속만 썩고 있다가 '만두부인' 덕에 달았죠.(웃음)  

유명 감독의 희귀 한국영화 테이프는 거래 가격도 수십 만원을 호가한다고 들었는데, 빌려줄 때 손 떨리지 않으세요?

아니, 그보다 반갑죠. 사실 구하기 힘든 영화들이 정작 찾는 사람이 없잖아요. 주로 방송국에서 자료로 쓰려고 잠깐씩 빌려가는 건데, 옛날 영화를 보러 와주는 게 고맙죠. 저는 손님들이 봐줬으면 하는 맘에서 모으는 건데, 솔직히 안 봐주면 맥 빠지는 거잖아요.


전 그래도 선뜻 이해가 안 가요. 귀한 비디오를 구했는데, 저 같으면 손 떨리고 싫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웃음)

옛날 희귀 영화를 찾아서 보는 사람들은 이게 쉽게 구할 수 없는 영화라는 것을 아니까 테이프를 깨끗하게 보고 가져다줘요. 영화를 빌려가면 테이프가 걸레가 돼서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빌려주기 싫죠.

 

블랙리스트도 있겠어요.

그런 손님들은 벌써 다 떨어졌죠.(웃음) 아직까지 영화를 빌려 보는 사람들이 흔하지 않은 세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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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극장이 왜 그리 좋았는지

 

증권회사에 다니시다가 비디오 가게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이 험난한 사업에 뛰어드신 건가요?

부국증권이라는 회사를 다녔는데, 그때가 증권가의 호황이 끝나고 깡통계좌로 문제가 될 때였어요. 남편 몰래 증권 하다 집 날리고 이혼당한 아주머니가 객장에 나와서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뜨개질을 하루 종일 하거나, 사람이 죽기도 하고, 하여튼 난리였죠. 물론 나도 실적 때문에 집 두 채를 말아먹었죠. 결국 못 견디고 나왔는데 할 줄 아는 게 있나. 증권회사 다닐 때 8mm영화 동호회 쫓아다닐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어요. 아내랑 데이트하던 시절 극장에 하루도 안 거르고 갔으니까. 당시 아내 소원이 오죽하면 소원이 영화 안보는 거였으니.(웃음) 그때 한창 잘 나가던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릴까 하다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나름대로 전문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비디오 가게도 열게 된 거죠.

 

학창시절에도 영화 보러 많이 다니셨겠어요.

중학교 다닐 때부터 돈이 생기면 성남, 의정부 등 관람료가 싼 데를 쫓아다니는 거에요. 그것도 없을 때는 입장료 20원 하는 프랑스 문화원에도 가고 그랬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림만 보는 거지만 알고 보니 그 때 좋은 영화를 많이 봤더라고요. 그냥 영화관이란 게 좋았어요.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는 중학생이라. 독특했네요.

하긴 극장에 들락거리는 중학생들이 별로 없긴 했죠. 아버지께서 영화를 아주 좋아하셨어요. 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아버지 따라 같이 극장에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가 낚시에 빠지면서 나를 버리는 바람에(웃음) 그 뒤로 혼자 미쳐 돌아다닌 거죠. 그래서 공부도 잘 못했어요. 껌껌한 영화관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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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찾는 영화를 구해주는 게 낙이던 세월

 

개업할 때부터 쇠퇴기였다고 하셨지만, 비디오 가게 경기가 90년대까진 좋지 않았나요?

1991년도에 개업했는데 IMF때 까진 나쁘지 않았죠. IMF 이후에 경기가 나빠지며 운영이 힘들어졌고 결정적으로는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 되면서 문제가 됐죠. 지금 인터넷에서 엄청난 양의 영화를 항상 제공하잖아요. 게다가 TV에서 영화를 틀어대는 채널이 150개 정도니. 그런데도 이 비디오 가게를 계속 하고 있는 게 바보죠.(웃음)

 

한창 때는 분점도 낼 고민까지 하셨잖아요.

돈을 써도 주머니에 돈이 있던 때도 있었죠. 장사해서 그 동안 번 돈을 다 따지면 30억도 더 벌었을 거에요. 그런데 예전에 장사가 잘 될 때도 욕심이 많아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많이 써서 크게 돈을 모으진 못했어요. 그때는 비디오 하나 잘 만들면 대박 나는 때였어요. <라이온 킹> 50만 장 팔릴 때니까. 지금은 잘 돼도 2만장이니 상상이 가죠? 한창 장사할 때는 소위 말하는 마니아 영화까지 쏟아지던 때라 물건 값이 많이 들었어요. 한 달에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을 물건 값으로 지불한 적도 있으니까요.

 

미래영상은 희귀 고전부터 시작해서 최신판까지 없는 타이틀이 없다로 유명했잖아요. 국내 출시 된 영화들을 죄다 모으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비디오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도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사업이었어요. 어쩌면 낙이 없는 거죠. 그런데 손님이 찾는 영화를 내가 구해서 보여주는 게 낙이 되더라고요. 그 때만 해도 가는 데마다 비디오 가게였으니까, 장사를 좀 일찍 끝내고 유랑 다니는 거죠. 당일 치기로 충청도, 강원도도 가고. 마음에 드는 영화 하나 있으면 불쑥 달라면 안 되요. 신프로 나오면 여유 있게 사서 일찍 돌리고, 그거 들고 지방 가서 옛날 테이프랑 바꾸는 식으로 모아놓은 거죠. 처음엔 3천장으로 시작했어요. 내가 영화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지명도 있는 영화부터 챙기기 시작해서 지금은 10만장이 넘었네요.

 

미래영상이 또 다른 특징이 충실한 한국영화 컬렉션이잖아요. 여기에 집중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나요?

남다른 이유라기 보다 우리 영화를 우리가 아니면 누가 사랑하겠어요. 한국영화 배급사 사장들이나 관련된 사람들이 와서 옛날 영화 찾는 걸 보면 자기 영화를 소중하게 대를 물려서 보존해야겠다는 개념들이 없어요. 결국 남아 있는 것은 이런 비디오 물인데. 한국영화는 수요가 많지 않아서 절판도 잘 되요. 조금 찍다가 말아버리는 거죠. 나라도 사야지 싶은 거죠.


나 좋아서 하는 징역살이에요

 

작년 말에 갑자기 가게 문이 닫혀있어서 철렁했어요.

가게 이전을 하느라 잠시 닫아 둔 거였어요. 작년 11월부터 이전해서 12월에 새로 열었어요. 그 전에 가게가 15평이었는데 여기는 60평 정도 되요. 이리 이사온 가장 큰 이유는 사이트를 오픈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하기 위해서에요. 사실 점포로만 영업을 하는 건 너무 제한적이니까. 택배로 빌려주는 게 낮겠다 싶어서 타이틀을 많이 끌어안을 수 있는 데로 이사온 거죠.

 

새로 연 가게 입구에 손으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참 절박해 보였어요. 낮에는 영업을 할수 없다는 양해와 함께 가족들과의 마찰이나 미래영상의 처절한 상황 등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붙이기 어려운 개인적인 내용이던데.

하도 장사가 안되서 청소일이라도 배우려고 청소전문업체에 잠깐 나갔어요. 그러면 낮에는 영업을 못하니까, 안내를 해야죠. 손님들은 가입비까지 몇 만원씩 받아 놓고 무슨 똥배짱으로 영업을 안 하냐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 때는 아버지가 아프셔서 병간호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청소일 배우던 것도 잠깐 쉬었잖아요.

 

그때 몸이 다쳐서 청소는 잠시 쉰다고 하셨죠.

그 때도 청소회사에 갔더니 사장이 직원으론 못 쓰고, 배워서 차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일을 배우던 중에 다쳐서 그것도 못하게 됐어요. 그 뒤로 이것 저것 할 일을 찾아 보는데 아내하고 딸이 비디오 가게를 때려 치우고 다른 걸 생각해야지 이걸 유지할 생각을 하며 다른 일을 찾으니 할 일이 없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집에 생활비를 한 푼도 못 갖다 준 게 3년 됐거든요.

 

가족과의 마찰도 대단하겠어요.

나한테 변고가 생기면 우리 집에서는 가게 물건을 소중하게 알 사람이 없어요. 가족들도 원수 같이 생각해요. 이것들이 아빠도, 남편도 망쳐놨다고 생각하니까. 지난 번에 가족회의 할 때, 선포를 했어요. 나도 전부 기증할 생각도 했고 판로도 알아봤지만 만만치 않다. 내가 할 줄 아는 일은 영화 가지고 하는 일인데 같이 할 일을 알아보겠다.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죠. 지금 계획은 퀵서비스, 택배 사업을 같이 해서 물류 쪽에 손을 대는 거에요. 그 일을 해야 비디오 가게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퀵이나 택배서비스도 아침 9부터 오후6까지는 지키고 앉아있어야 하는 일이고, 비디오 가게도 가게를 꼬박 붙어있어야 하는 거니까.

 

집에도 일주일에 한번 들어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어요.

어쨌든 12까지는 문을 열어야 하는 거니까. 집에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이유는 단순히 택시비라도 아끼려고 그러는 거죠. 손님이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는 내가 손님의 시간을 뺏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손님의 시간에 철저히 맞춰줘야죠.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최대한 손님을 기다려 줘야지 손님도 나를 선택할 공산이 커지는 거잖아요.

 

굳이 12까지 가게를 지키는 게 무슨 사명감인지 고집인지.(웃음) 투철한 직업관이네요.

전에는 24시간도 했었잖아요. 손님이 필요한 영화가 있다면 아무 때나 와서 빌려볼 수 있는 가게를 만들겠다 싶었죠. 물론 이 일은 애착이 없으면 2~3년 하는 게 쉽지 않은 장사에요. 아침에 눈뜨고 와서 여기 들어오면 가게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니까요. 완전 징역살이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죠. 옛날부터 비디오가게 하다가 그만 둔 사람은 다시는 이 일을 다시 못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냥 나 좋아서 하는 거에요.

 

꼬꼬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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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해도 막상 현실적의 벽에 부딪힐 때 애초의 마음이 사라져지게 되지 않나요?

모든 사람들이 일에서 보람을 느낄 때는 월급날이죠. 내가 18년 해오면서 돈을 바라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을 한지는 8년 됐어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40살 까지만 전념을 하고 그 다음엔 편히 쉴 수 있을 만큼 키워놓자 싶었는데. 이렇게 몰락할 줄은 몰랐죠.(웃음) 물건을 내가 사고 싶은 만큼 못 사면 그만 둬야지 생각한 게 10년 전이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진 5년 전부터는 새로 물건을 못 사도 계속하자 바뀌었어요. 금전적인 것에 부담을 느끼지 말자고 맘 먹은 거에요.

 

새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 비디오 가게라 어떻게 운영될지 궁금한데요.

신 프로 안 산지는 꽤 됐어요. 그 전에는 적자야 나건 말건 백 퍼센트 샀지만, 요즘은 손님이 얘기하는 것만 사죠. 외화는 괜찮은 게 있으면 할인행사 때를 기다리죠. 예외는 한국영화에요. 한국영화는 나오면 바로 사요. 그나마 요즘은 방송국 때문에 먹고 살아요. 예전에 통신상에서 영화퀴즈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부터 우리 가게가 알려져서 방송국까지 인연이 닿았죠. 방송국에서 옛날 영화 자료화면이 필요하면 빌리러 오니까요.

 

그래도 가게 유지가 쉽진 않을 것 같은데.

지금 테이프 하나에 만원에 한다면 빌려보겠어요? 하지만 대여 가격도 물가 인상률만큼은 올려야지 생각은 해요. 암만 인터넷에서 자료가 막대하다고 해도 제공하지 못하는 영화가 있어요. 지금 영상자료원에서 찾지 못하는 자료가 있으면 나한테 올 정도니까요. 한번은 하도 가게를 유지하는 게 힘들어서 영상자료원이랑 영화진흥위원회에 가게 타이틀을 몽땅 줄 테니까 관리자로 써달라 했지만 물건은 괜찮은데 사람은 못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이걸 찢어서 팔면 가치나 의미가 없어요. 20년 가까이 어렵게 콜렉션 한걸 어디선가 가치 있게 소장해야 의미가 있는 거죠.

 

어쩌면 미래영상의 미래를 그 동안 구축된 아카이브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데서 찾을 수도 있겠네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어요. 결국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보존 되려면 DVD VHS를 통해서인데 VHS는 거의 생산이 중단된 상태에요. 조금씩은 생산되고 있는데 완전 중단도 멀지 않았어요. DVD HD-DVD로 진화해서 결국 블루레이가 존속하게 되겠죠. 그렇다면 그 전에 나와있던 포맷들은 어딘가로 사라져야 하는데 이걸 사라지게 해주는 일을 도와주면 어떨까 싶어요. 소비자는 물론 콜렉터들이 되겠죠. 영화 관련된 모든 것이 나를 거쳐서 콜렉터에게 넘겨지는 거에요. 이런 일을 하는 회사가 있긴 한데, 미래영상이란 걸 20년 가까이 해온 이름값으로 이제 복덕방 노릇을 하면서 비디오 대여도 하고 비디오 매매 대행, 더 넓게는 영화 필름, 전단지, 포스터, 시나리오 등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중계하는 일이 되겠죠. 일 하면서 감독, 제작자, 영화사 사장들도 여럿 오고 하니까 이런 사람들을 써먹어 보자 하는 거죠. 이건 인터넷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한 일이에요. 여기에 덤으로 물류유통이 있는 거고요.

 

계획대로만 된다면야 좋겠지만, 지금은 비디오 가게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는 시대잖아요. 미래영상이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여기가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이에요. 앞으로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을 감안해서 옮겨 온 거죠. 가능하면 비용을 줄이고 군살을 최대한 덜어서 지낼 수 있는 데서 지내야 더 목숨이 길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돼서 가겟세를 못 내서 쫓겨나지만 않으면 계속 할 거에요. 꼬꼬할아버지가 돼서도 용돈을 쓰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지요. 꿈이라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비디오 가게가 있어줬으면 하는 거에요.

수집하신 옛날 한국영화 중에 추천할 만한 타이틀이 뭔가요?
영화는 보는 사람이 좋으면 그만이죠. 가게 하면 영화 제대로 볼 시간이 없어요. 그냥 틀어놓고 비디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그제서야 돌아보는 거지.

한국영화 타이틀 수집에 열성이신데 영상자료 보존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 같은 게 있는 건가요?

우리 영화를 우리가 사랑해야지 무슨 이유가 있어요?


초토화된 시장상황에서 고집스레 비디오 대여점을 지키는 열혈 영화 애호가의 이미지를 그리며, 그럴싸한 대답을 기대한 나의 몇몇 질문은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오래된 비디오를 수집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영화를 빌려주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는 손태영 사장. 그는 내일도 가게 문을 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영락없는 비디오가게 아저씨'였다. 인터뷰를 끝낸 몇일 뒤 애니메이션 DVD를 빌리러 간 나에게 아저씨가 던진 한 마디. "어, 연체료 제하고 충전한 돈이 다 떨어진거 알아요?" 연체료 징수에 예외를 두지 않는, 무시무시한 비디오 가게 아저씨 앞에서 가난한 나의 지갑이 스르륵 열렸다
. 조형주 기자(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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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ma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군요...ㅠ.ㅠ

    2008/05/25 21:33
  2. 짱가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동네는 비디오 가게가 없어서 아쉬워요..
    제방엔 비디오 있는데... 가끔 녹화해둔, 비디오로 사둔 영화들..
    꺼내 보는 재미두 솔솔한데...
    한참때.. 비디오 무진장 빌려보며 날밤 새고 그랬던거 같은데..

    2008/06/21 09:32
  3. cauzzzz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디오가게 꼭 유지하시길 빕니다~~

    2008/08/15 15:05
  4. 윤현숙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손과장님 과 함께 부국증권에서 일했던 윤현숙인데 혹시 기억나네요? 이회순언니랑 숙녀언니랑...저는 현제 뉴욕에서 병원총 메니저로 일하고있답니다.. 너무 너무 반갑네요?? 저 기억나시죠?? 벌써 오래전인데 너무신기하네요,,

    2012/01/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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