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속편까지 제작되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리고 그 네 번째 영화가 제대로 된 경우는 더더욱 흔하지 않다. 자신 있는 시네필이라면 명작이라 부를만한 4편들을 꼽아보시라. 절대로 만만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사실 시리즈를 탄생시키는 가장 큰 에너지는 다름 아닌 짭짤한 수익에서 기원한다. 이미 검증된 캐릭터와 이야기 그리고 전작의 팬들을 이끌고 있는 작품이라면 그 속편 역시 어느 정도 안정권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기계인간들은 그렇게도 자주 과거를 방문했던 것이며(<터미네이터> 시리즈), 여전사 리플리는 무려 복제인간(<에이리언> 시리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2000년에 개봉했던 <데스티네이션>의 네 번째 시리즈다. <X파일>의 제작, 각본, 감독으로 주가를 올리던 제임스 왕은 단돈 2300만 달러(이렇게 말하니 무척 적은 돈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를 들여 <데스티네이션>을 완성했고, 무려 1억1200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했다. 이렇다 할 스타도 없이 조용히 개봉한 B급 공포물로선 가히 기념비적인 결과였다. 2003년과 2006년에 개봉한 2편과 3편에 대해서 언론과 평단 모두 혹독한 평가를 내렸지만, 각각 9000만, 1억 1300만달러를 벌어들인 시리즈의 뛰어난 상업성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의 제작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2000년 당시 제임스 왕은 이미 불멸의 TV시리즈 <X파일>로 절정의 감각을 인정받은 감독이었다. 영화계에 야심을 품고 있던 그에겐 3억불 아니 4억불의 가치를 훌쩍 넘어서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그건 그가 <X파일>에서 숱하게 반복, 재생산해내던 외계인, 괴물, 초자연적 존재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음침한 것이었다. 그건 공포를 조장하는 인간도 괴물도 아니었고 심지어 생명체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로봇도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운명이 절대적으로 예정되어있다는 예정설 또는 결정론을 바탕으로 ‘죽음’ 그 자체를 공포영화의 장르규칙 내에 끌어들이는 도발적인 시도를 감행한다.
<데스티네이션>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한 고등학생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비행기에 탑승한 그는 순간 강렬한 환영을 경험한다. 환영은 비행기가 출발과 동시에 폭발하고 그와 그의 친구들이 모두 죽는다는 미래를 마치 예견하듯 알려준다. 그는 직감적으로 비행기에서 내려야한다고 주장하고 그 자신을 포함해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까지 총 7명의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리게 된다. 곧바로 이어지는 비행기의 폭발. 살아남은 7명은 안도하지만 곧 실체를 파악할 수없는 위험이 그들을 엄습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이 연달아 일어나며 마치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듯 살아남은 사람들이 줄지어 사망하기 시작한다. 어떠한 살인마도 괴물도 등장하지 않지만 초자연적인 공포가 생성된다. 바로 장구한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데스티네이션>시리즈는 몇 가지 기본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첫째, ‘죽음’은 결정되어 있다. 피할 수 있지만 잠시 뿐. 결국 죽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둘째, ‘죽음’은 일상의 물건이나 상황이 물리적,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중에 일어난다. 셋째, 주인공은 그 ‘죽음’을 미리 보는 능력을 갖는다. 그는 ‘죽음’을 피하거나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데스티네이션>시리즈에서 ‘죽음’이 일어나는 과정은 일련의 게임과도 같다. 화면은 관객이 예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을 던진다. 세면대 위에 놓인 날카로운 면도칼이나 위태롭게 놓인 무거운 망치는 차라리 평범한 편이다. 이 시리즈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일상적인 물건이나 상황에 잠재한 위험성이다. 끓어오르는 냄비 속의 물, 질기고 단단한 전깃줄은 순식간에 위협적인 살인도구로 돌변한다. 그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마다 카메라는 격한 클로즈업이나 과장된 각도를 통해 관객에게 죽음의 과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화면이 주목하는 여러 가지 단서들이 주인공들을 죽이는 장면을 머리 속에서 미리 만들어 본다. 그건 때로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덕분에 감독에겐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 “자, 어떻게 죽일까” 이게 바로 <데스티네이션>의 힘이다. 우리 주변에 널린 모든 물건들의 역습. 여기에 서린 그 엄청난 가변성 말이다.
특히 앞서 말한 2번 설정(‘죽음’은 일상의 물건이나 상황이 물리적,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중에 일어난다)은 이 시리즈가 4편까지 뻗어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에서 ‘죽음’은 갑작스런 심장마비 따위의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에서의 죽음은 결코 한 단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죽음은 다양한 물건과 여러 상황들의 맞물림을 통해 등장인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최종 파괴력을 획득한다. 인간 주변의 물건이나 상황이 어떠한 특정 조건만 갖춘다면 그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진다. 그 설득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영화의 공포는 현실적인 것으로 탈바꿈한다. 관객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나 상황들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더구나 이 과정(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이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귀결되는 순간, 죽음을 야기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초자연적인 공포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3번 설정(주인공은 그 ‘죽음’을 미리 보는 능력을 갖는다. 그는 ‘죽음’을 피하거나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은 관객의 숨겨진 욕망에 다름 아니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어떠한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죽었어야 했던 자들은 결국 모두 죽는다. 다만 누구라도 살아남기를 바라는 관객의 은밀한 욕망이 영화를 진행시킨다. 하지만 결국 관객은 승복해야만 한다. 1번의 설정(죽음은 ‘결정’되어 있다)은 <데스티네이션>시리즈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규칙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절대적으로 관객을 패배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난 알고 있다고. 결국 모두 죽어” 지독히도 지기 싫어하는 관객들은 어떻게라도 영화를 이겨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나약한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 공포영화 속의 죽음은 그 자체의 발발 유무보다는 과정과 타이밍이 관건이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어떠한 과정들은 속임수를 자임한다. 죽을 것 같던 인물들이 죽음을 모면하는 것이다. 물론 언제라도 새로운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어떠한 욕망도 논리도 이 시리즈의 게임과 설정 속에선 충분히 대체 가능한 하나의 변수에 불과한 것이다.
절대패배의 구조. 결코 재미없을 법한 이 구조 속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짜릿함에 가깝다. 순간순간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장치가 관여한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죽음의 과정을 그리는 과정에서 클로즈업과 CG 등의 현란한 시각효과를 활용한다. 일상 속의 평범한 사건, 물건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 시점들은 그 완성도가 매우 높다. 갑자기 화면을 지나치는 거대한 버스나 거대한 전광판은 비록 반칙(갑작스런 죽음의 장치는 2번 설정을 생각했을 때 예외적인 경우다)의 혐의는 있을지언정 뛰어난 타이밍으로 객석을 들썩이게 만든다.
북미개봉 5주차를 맞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4>는 북미에서만 646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여전한 살인의 기술을 증명하는 중이다. 더구나 이번 4편에서는 죽음의 과정이 더욱더 리얼해졌다. <데스티네이션 2>와 <셀룰러> 등을 연출했던 감독 데이비드 R. 엘리스는 시리즈에 3D효과를 도입했다. 무너지는 천장이 머리위로 떨어지고 부러진 나무의자가 눈앞에 꽂히는 기분이다(물론 사람에 따라서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렇게 말하니 이 영화가 대단히 뛰어난 작품인 것 같지만 솔직하게 말해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은 그저 그런 평작 수준의 속편이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발전했지만 이렇다 할 새로운 방향이나 설정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의 재료들을 다시 한 번 재탕하는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언제나 그랬다. 시리즈가 무려 네 번이나 반복됐음에도 어떤 물건들이 어떻게 사람을 잡을지는 절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또다시 영화관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절묘한 살인의 과학을 구경하기 위해서 말이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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