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상의 기준을 창조하는 TV조차 ‘왜 남의 생각, 남의 기준으로 살까?’라며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가증스레 반문하는 시대다. 물론 이 물음의 근거는 역시나 세상의 기준을 고착시키는 TV의 본질 그대로다. 걸음마가 늦으면 진다는 생각은 황당하고, 영어유치원 못가고 반장이 되지 못해 졌다는 생각은 황망하며, 영어발음이 된장이면 지는 걸까라며 물을 때는 참으로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대기업 못가고 외제차 없으면 지는 걸까라는 고민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CF 덕분에 생전 처음 해보기도 했다). 남의 생각, 남의 기준을 운운하지만 알고 보면 이 기준은 ‘생각대로T’만의 생각이요 기준이라는 걸 굳이 행간을 읽어내며 깨우칠 필요도 없다. 지지 않기 위해서는 걸음마도 빨리 깨우쳐야 하고 영어유치원에 반장을 거쳐 유려한 영어발음으로 대기업에 입사해 외제차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CF가 빙 돌려서라도 곧추 세우려는 세상사의 성공기준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해, 그게 답이야’라는 쿨한 해답을 건네기 위한 그 속내가 생각대로 참 구차하다.
<다 큰 여자들>이란 볼품없는 제목으로 10월 8일 국내 개봉한 도미나가 마사노리의 작품 역시 세상의 기준과 자기 생각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어느새 서른을 코앞에 둔 두 주인공은 한쪽은 커리어우먼으로 다른 한쪽은 가정주부로서 각자 행복한 삶을 영위해야 마땅하지만 세상만사 다 그렇듯 그들은 현재의 자기 삶이 아닌 자기가 갖지 못한 상대방의 인생을 더욱 흠모한다. 그러나 영화의 원제(コンナオトナノオンナノコ) 안에 담긴 ‘어른아이’라는 뉘앙스가 대변하듯 현대인에게 있어 서른이라는 나이는 정착할 수도 또 그렇다고 변화할 수도 없는 묘한 정점을 이룬다. 생각대로 하면 그게 답이라지만 생각대로 하기엔 버거운 나이. 20대 때는 막연히 결혼을 하거나 성공하리라 믿었던 서른이란 나이는 여전히 성장기적 아이 시절과 다를 바 없다.
영화는 뒤늦게 남의 삶이 더 그럴듯해 보인 두 여자의 이야기를 독특한 필치의 유머로 압축한다. 자기 인생에 대한 푸념과 변화에의 갈등을 단어 하나하나 끊어 말하듯 또박또박 건조하게 전달하는 내레이션은 매번 “이해하시겠습니까?”라는 말로 마무리되지만 그럴 때마다 왠지 이해할 것도 같고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도 같은 불명확한 느낌만 진득하게 배어나온다. 하지만 아주 이해 못할 얘기는 아닌 그들의 푸념은 영화의 건조하고도 무심한 질감 아래 묵묵히 변화를 욕망하고 또 감내하면서 비로소 의미를 만들어간다.
<다 큰 여자들>에는 뒤늦게 남의 인생, 그러나 그것이 진짜 자기 인생임을 깨닫고 변화하려는 ‘사춘기 어른’의 성장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펼쳐진다. 뒤늦게 결혼을 꿈꾸는 치아키(오다 에리카)가 직장을 박차고 목장으로 도피하는 선택이 우스운 건 사실이지만 영화는 이를 절대로 황당한 코미디 안에 가두지 않는다. 또 겉으로는 예쁜 딸을 키우는 행복한 보통 전업주부로 보이지만 실상은 육아 스트레스로 맥주캔을 끼고 살고 남편과의 부부관계도 끊긴지 1년이 넘은 폭발직전의 욕구불만 주부 마사미(모노우 아키코) 역시 그 원초적 욕망을 표현한 판타지는 황당할지언정 남의 기준대로 행복을 가꿨던 그의 무미한 삶은 결코 코미디 안에 머물지 않는다.
두 어른아이가 각각 도피와 도전을 시작으로 새 삶을 목표하는 이야기는 분명 코믹한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그들의 어리석은 충동으로 단정 짓고 폭소로 점철된 코미디에만 가두지 않을뿐더러 당연한 교훈에 쿨함을 더하려는 어느 CF처럼 얄팍한 자기성찰을 조언하지도 않는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 또 아이에게 뺏긴 자기 삶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영화 속 어른아이들의 모습은 쓸쓸한 풍경 안에 터지는 냉소처럼 매순간 날카롭고도 차갑다. 그저 남의 이야기 같고 또 과장되게 부풀려진 이야기 같지만 그 실상은 현실의 편린으로 가득 찬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뿐이다.
왜 남의 기준대로 사냐고? 뻔하다. 자기 기준이 없는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은연중에 남의 기준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버려진 옥수수가 자라 방안을 가득 메운 영화의 어느 풍경처럼 뒤늦게라도 자신의 길을 찾는 일이란 막을 수 없는 성장과도 같다는 사실이다. 살다보면 결혼한 누군가가 부러울 때도 있고 싱글이 부러울 때도 있을 게다. 또 외제차가 아무렇지 않다가 어느 순간 부러워지고 또 어느 순간에는 해탈할 때도 있는 법이다. 역시나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치아키와 마사미가 뒤늦게라도 꿈꾸던 삶을 쟁취하려 했던 그 도전은 도전만으로도 무조건 칭찬받아 마땅한 이유가 된다. 어찌됐건 자기만의 길을 낸 어른보다 남의 기준에 휩쓸린 어른이 더 많은 사회에서 스스로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건 분명 대담하고도 대단한 선택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남의 기준에 휩쓸린 어른들이 또 다시 남의 기준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 기준이란 그 단어조차 무익하다. 그럼에도 매번 그놈의 남의 기준과 싸우고 결국 자기 기준이라는 것을 세우고 어른이 되는 현실이란 참으로 처량하다(자기 기준이란 말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이 <다 큰 여자들>이 건네는 깨는 웃음이 건조한 풍경 아래 웃음과 쓸쓸함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까닭이며, 동시에 남의 기준을 운운하며 애써 쿨한 척 젊은 척 있는 척 하는 CF가 먹히는 이유다. 참으로 현실만큼이나 우습고 쓸쓸한 영화요, 영화만큼이나 쓸쓸하고도 우스운 현실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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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2009/10/10 00:34강상준입니다. 출처만 밝혀주시면 인용 및 링크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10/10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