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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

여기는 부산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국내 최대의 영화제답습니다. 쟁쟁한 작품들이 그득하지요. 그 와중에도 할리우드 스타 조쉬 하트넷과 일본의 대스타 기무라 타쿠야의 내한은 영화제 초반을 후끈 달구는 핫이슈입니다. 그 열기를 실감한 것은 뜻밖에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 상영에 즈음해서였습니다. 상영에 앞서 자리에 앉아있던 중에 옆자리 여성분의 낭랑한 전화통화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분은 방금 조쉬 하트넷과 기무라 타쿠야의 무대 행사를 들렀던 모양이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어요. 머리들도 너무 크고, 너도 나도 카메라를 높이 드는 바람에 사진조차 찍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조쉬 하트넷에 대한 좋은 감정을 잊지 않으시더군요. 이병헌이나 기무라 타쿠야는 보이지도 않는데 조쉬 하트넷만 보이더랍니다. 키가 커서요.

아, 그리고 야무진 팁이 있더군요. 톱스타들을 보기위해 잊지 말아야 할 장소가 바로 주차장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무라도 조쉬도 이병헌도 차를 탈 테니까요. 그리고 기자를 따라가야 한답니다. 글쎄요. 기자를 따라가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같은 기자도 있는 법이니까요. 여하튼 부산은 이렇게 달아오르는 중입니다.

<여행자>

어제 저는 두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초기작 <Z>와 한국계 프랑스 감독 우니 르콩트의 자전적인 영화 <여행자>를 말이죠. 두 편 모두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제라면 무조건 심각하게만 생각할까 걱정돼 첨언하자면 단순히 극적인 재미만 놓고 보아도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특히 <Z>는 1969년작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각이 번뜩입니다. 정치영화가 발랄하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보기 드문 예죠. 오늘 보게 될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신작 <낙원은 서쪽이다>도 몹시 기대됩니다.

영화의 사건이나 인물들이 실재 인물, 사건을 닮은 것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고 호쾌하게 밝히는 <Z>가 지극히 정치적인 영화라면 우니 르콩트의 <여행자>는 극단적으로 개인적인 영화입니다. <여행자>는 서두에서 영화의 내용이 1975년 서울근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미리 밝힙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실제 사건과 누군가의 진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라는 겁니다. 주인공 진희(김새론)는 바로 우니 르콩트의 분신입니다. 감독은 진희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봅니다. 진희는 깜찍하고 발랄한 소녀입니다. 아버지와 고기집에 가서는 술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발칙하게도 말이죠), 구성지게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불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희는 버려져요.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되지만 어쨌든 진희는 버림 받아 고아원으로 가게 됩니다. 고아원으로 간 진희는 고요하고 침울한 아이가 됩니다. 항상 “아빠가 데리러 올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면서 말이죠.

<여행자>

진희의 고아원 생활은 다소 낭만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과연 저렇게 따뜻한 보호자들이 있을까도 싶고, 저렇게 다정한 아이들만 모여 산다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미화된 기억이나 각색된 진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하지만 우니 르콩트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재현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감각으로 되살려내려고 하죠. 특히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 없을 명장면입니다. 관객들이 일제히 숨소리를 죽이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진희는 아버지와 행복하던 시절을 기억해냅니다. 그 기억은 찰나의 순간, 감각에 새겨진 것이죠. 자전거를 몰던 아버지의 숨소리와 자전거 바퀴소리가 극장을 가득 메웁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죠. 진희의 기억일 것이고 우니 르콩트의 기억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행자>는 11일 상영일정이 남아있고 또 10월 29일에는 정식개봉을 앞두고 있어 곧 일반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는 영화제 기간 중에는 13일 단 한번의 상영이 남아있으니 강력 추천합니다. <낙원은 서쪽이다>는 10일과 12일에 상영됩니다. 부산을 찾은 영화제 참가자분들은 참고하시고 즐거운 시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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