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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10일 저녁 7시경 롯데시네마에선 백발의 노인이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몇명되지 않았어요. 젊은 관객들이 대부분이었지요. <Z> <낙원은 서쪽이다>와 함께 부산을 찾은 정치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었습니다. <낙원은 서쪽이다>의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자 극장 안의 사람들은 모두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오랜 팬들도 있었어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노신사는 “고등학교 시절 당신의 영화 <고백>(1970)을 보고 정치학과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영화인의 길에 들어섰다”며 “만나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라는 떨리는 고백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다소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그의 이력의 지극히 일부분이나마 열거해야 할 듯합니다. 그리스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정치스릴러 <Z>(1969)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칸영화제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미국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편집상까지 수상) 그는 이후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고백>과 <계엄령>(1973) 그리고 <의문의 실종>(1982)같은 작품을 통해 ‘정치영화의 거장’이란 수식어를 달게 됩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모국 그리스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하게 된(그의 부모가 좌파라는 이유였습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게 정치라는 것은 일상의 모든 것과 관련된 그 무엇이었죠. “정치는 5년이나 10년에 한 번씩 하는 투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투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미국의 정치제도를 생각한 표현인 것 같아서 의역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가 모두 정치라고 할 수 있죠.”


그의 최근작 <낙원은 서쪽이다>(2008)는 프랑스에 몰래 숨어든 그리스 출신의 불법이민자 엘리아스의 오디세이입니다. 밀입국선에 몸을 실은 그의 여행은 해안경비정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도주하고 경찰은 그를 추적하지요. 수많은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대략 세어본 것만 해도 20여 가지, 쉴 새 없이 이어지죠. 그는 도망자지만 일을 하기도 하고, 우정을 느끼기도 하며, 심지어 사랑을 하기도 하죠. 그런 와중에도 잠시 동안 우리는 엘리아스가 이민자라는 사실을 각성하게 됩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불현듯 몇몇 장면들을 밀어넣습니다. 해변에 떠밀려온 그리스인들의 시체들이나(엘리아스와 같은 배를 탔던 사람들입니다), 화염병으로 집시들(그들은 엘리아스를 숨겨줍니다)의 거처를 불태우는 프랑스 경찰이 등장하죠. 그러니까 이 작품은 웃음과 눈물, 각성이 동시에 어우러진 영화입니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던 영화가 맞이하는 엔딩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일거리를 찾거든 파리에 있는 자신을 찾아오라는 마술사의 말을 철석같이 밑었던 엘리아스는 그 많은 어려움을 거쳐 마침내 마술사를 만나지요. 하지만 마술사는 실망스런 반응을 보입니다. 사실 그는 엘리아스에게 일자리를 줄 생각이 없었어요. 그는 그냥 떠벌이였던 겁니다. 엘리아스는 마술사가 남기고간 마술봉을(플라스틱 막대기일겁니다) 들고서 망연자실 합니다. 마술사를 찾아 헤매던 그에게 어떤 노인이 했던 말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세상은 정말 엉망이야. 마술이 아니라면 구할 수가 없을 정도지”


관객과의 만남에서 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울기도 하고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웃기도 했죠. 하지만 영화가 끝난 이 순간 제가 느끼는 감정이란 영화의 끝, 엘리아스의 감정과 마찬가지입니다. 참담한 심정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영화 속의 노인은 엉망이 되어 버린 세상을 바꾸려면 마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감독님께는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 알려주실 마술이 있을까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마술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엘리아스가 마술봉을 흔드니 경찰이 배로 늘어나잖아요. 총이 그렇듯 마술봉 역시 세상을 만들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저는 영화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바로 이러한 감정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거장께 경의를 표합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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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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