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워낭소리> 고영재 프로듀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작품이 너무 좋다’는 칭찬과 격려의 전화였다. 작품이 얼마나 좋기에. 서울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워낭소리>를 직접 확인했고, 서정적인 영상과 깊은 소리에 사로잡혔다. 그 후 <워낭소리>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렸다. 300만이라니. 독립영화로써는 꿈도 꿀 수 없는 숫자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워낭소리>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책이다.
책 <워낭소리>에는 영화와 이충렬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IMF가 터지고 아버지의 위기에 대한 말이 수도 없이 나왔지만, 이충렬 감독이 보기에 정작 그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와 소의 기억을 발견하고 현재의 그들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빠르게 스쳐가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한 때 ‘우리의 모습’은 모두 잊히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된 삶을 살던 이충렬 감독에게 <워낭소리>는 마지막 기회이자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라져간다. 그러나 정작 슬픈 것은 잊혀가는 것이다. (…) 그렇게 아버지는 삶의 변방으로 밀려나 버리고, 그 아버지가 키워낸 세대는 다시 아버지가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소의 등을 만지던 날, 손끝으로 전해오던 온기가 아버지의 말 없는 정(情)이었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 이제야 반추해본다. 봄날처럼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등 돌린, 그래서 잊어버린 어떤 소에 관하여. 우리가 가끔 마음을 줄 때 전부를 바친 어떤 소에 관하여.”(25~26쪽.)
작업은 무척 고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카메라를 의식해 촬영은 자꾸 지연됐다. 또 촬영이 지연되면서 그나마 없는 살림(제작비)은 쉽게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워낭소리>는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다. 만약 쉽게, 빠르게 진행됐다면 할아버지의 삶도, 늙은 소의 느린 걸음도 포착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충렬 감독은 느린 걸음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마치 느린 소달구지를 타고 졸기도 하고, 먼 곳에 시선을 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렇게 욕심은, 이충렬 감독은 비워진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우는 아이 손에 쥐어진 막대사탕이나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 손에 들린 과자 꾸러미가 어린 날의 기쁨이었듯이, 매일 마주치는 얼굴들 속에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 작디작은 따뜻함과 내일을 살아낼 힘이 있음을. 또한 행복하지 않다 느꼈던 것은 자꾸 채우려고만 했던 우리의 욕심 때문이었음을. 욕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땐 바다를 떠올릴 일이다. 하루에 한 번 자신을 비워내는 썰물처럼 비워낼 일이다. 썰물 다음에는 언제나 밀물이 가득 들어차오듯이 욕심을 비워낸 그 자리에는 할아버지의 무심한 웃음과도 같은 삶이 들어찰 것이다.” (55쪽.)
책은 문자와 사진으로 영화를 재구성하는 한편,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제작노트라고 할 수 있는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되새김질’을 보면 이충렬 감독이 어떤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초반 등장한 봉화 청량사에 가자고 제안한 것도 그고, 추석에 할아버지의 일과 건강에 대해 가족들에게 말을 건넨 것 또한 그다. 마이클 무어 감독처럼 모든 상황을 적극적으로 연출해 만드는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이는 애교라고 볼 수 있다. 또 이 연출이 극 전체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면 굳이 문제 삼을 이유가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한 가지 바람은 있다. 이왕 이렇게 얘기가 나온 거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아직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영화 장르’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많고, 농촌총각처럼 ‘있는 그대로를 찍지만, 편집을 통해 연출을 하는 영화 장르’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다. 영화 <워낭소리>가 독립 영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성공한 것처럼, 책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토론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 물론 감동은 기본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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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도 나왔어요? 글과 사진으로 보면서 제마음대로 상상에 빠지는게 전더좋은데^^
2009/10/16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