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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날>(장 이모우)


향후 10년 안에 출간 될 ‘세계영화사’에 이미 한 자리씩 예약해 놓은 35명의 감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 바로 그 영광스런 자리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테오 앙겔로풀로스, 기타노 다케시, 라스 폰 트리에, 첸 카이거, 구스 반 산트, 왕가위 등 전세계 5개 대륙, 25개의 나라, 35명의 감독들이 ‘영화관’을 주제로 만든 3분짜리 단편영화 33편을 모은 작품이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의 가장 큰 매력은 ‘발견’과 ‘반가움’이다. 먼저 ‘발견’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한국 극장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연간 3%의 관객 점유율을 넘기 힘든 영화의 제3세계인 브라질(월터 살레스), 덴마크(빌 어거스트), 핀란드(아키 카우리스마키), 이스라엘(아모스 지타이), 러시아 연방(안드레이 콘잘로브스키) 등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극장에서 거장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은 때론 낯설기도 하지만 신기한 것으로 가득한 유쾌한 여정이다.

두 번째 발견은 평소 잘 보지 않던 취향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영화를 보는 취향은 사람의 생김새만큼 다양하여, ‘영화관’에 모인 ‘그들 각자’ 전부를 좋아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연이 안 닿을 것 같은 감독들을 ‘억지로’ 조우하는 경험은 또한 기묘한 반가움을 남긴다. 

‘타인의 취향’과의 첫경험은 의외로 짜릿하다. 소매치기 소년과 감동에 젖은 눈물을 흘리는 여성이 만나는 찰나의 순간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어둠 속에서>(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한적한 극장 안에서 두 젊은 남녀가 펼치는 애정행각을 농염한 공기와 함께 잡아낸 <이걸 주려고 9천 킬로나 날아왔어요>(왕가위) 등의 작품은 서로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도그빌>이 상영되는 동안 연신 시끄럽게 떠드는 사업가를 응징하는 <그 남자의 직업>, 야한 영화를 보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 보다 더 큰 소리로 괴성(?)을 지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에로틱 영화 보기>는 그 기발한 상상력에 절로 웃음이 난다. 이렇듯 영화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와 스타일을 내세운 33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감독들의 이름에 서린 유구한 내공을 스스로 증명하는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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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새로운 감동 혹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발견'의 기쁨이 있었다면 동시에 사랑해마지 않던 감독들의 고유의 스타일 그대로의 짧은 영화 한토막을 볼 수 있는 것은 적지 않은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영화, 영화관은 기억에 스미고, 그 기억은 고스란히 과거를 담고 있다랄까.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두 거장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보는 날>과 첸 카이거 감독의 <자전거 모터>이다. 서정적인 영상 속에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아 이름을 날렸던 이 감독들이 2000년대 접어들어 CG로 무장한 무협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포스를 잃어버렸던 데에 실망한 관객이라면 이번 두 작품에서는 예전 그대로의 섬세한 감성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이 없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보는 날>은 이동 극장에 오는 날의 기쁨과 설렘을 재현한다. 동네 아이들은 대낮부터 이동 극장이 도착하고 영화가 상영되기만 기다린다. 그날 따라 지지 않는 해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면서 긴 시간을 기다리지만 결국 영화가 시작되고 피곤함에 자는 주인공 소년의 모습은 영화를 기다리는 모든 관객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 여기에 더해 간간히 눈길을 주고받는 영화 속 젊은 남녀의 모습에 담긴 수줍은 사랑은 정말이지 애틋하기까지 하다. 채플린 영화를 보기 위해 자전거 모터를 돌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자전거 모터>는 유년시절 영화가 주는 기쁨을 포착한다. 채플린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며 계속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극장 안 깊숙한 곳까지 확실히 전달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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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느에서 5,557마일 떨어진 마을>(월터 살레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디지털 시대에 앨범을 사서 음악을 듣는 행위와도 같다. 타이틀곡이 좋아 CD를 사듯,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티켓을 산다. 그런데 CD 속에 내가 원하던 타이틀곡 외에도 다양한 음악이 있듯,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란 앨범 속에는 내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와 상상력이 가득 담겨 있다. 앨범을 다 듣고 났을 때 한 뮤지션의 노력을 느낄 수 있듯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와 거리를 걸을 때쯤엔 감독들이 영화를 향해 품었을 애정과 극장에 대한 추억들까지 새삼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불이 켜지고 서둘러 상영관 밖으로 나가야 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낡지만 여전히 가치 있는 매력이 불꺼진 그들 각자의 영화관 안에는 넘실댄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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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촌총각 2008/05/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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