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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오드리 니페네거의 동명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그 내용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간을 넘나드는 남자, 헨리(에릭 바나)의 연애담입니다. 헨리는 운명의 연인 클레어(레이첼 맥아담스)의 유년기에 홀연히 등장해 자신이 언젠가 그녀의 연인이 될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시간여행의 부작용 때문에 알몸으로 나타난 그에게 클레어는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입니다. 요즘의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게 됩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불행합니다. 원작소설의 팬들은 영화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발견하기 쉽습니다. 모두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잘해야 본전이라고. 게다가 원작은 흥미롭지만 다소 곤란한 아이디어를 채택했습니다. SF 같은, 내지는 판타지 같은 설정을 사랑이야기와 같이 엮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간단하게 <사랑과 영혼>(1990) <러브스토리>(1970) 그리고 <백 투 더 퓨처>(1985)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난제는 두 가지가 되는 셈입니다. 그 첫 번째가 비관적인 시선을 보내는 원작소설의 팬들이라면 두 번째는 사랑이야기와는 아무래도 궁합이 좋아 보이지 않는 ‘시간여행’이라는 테마일 것입니다.


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는 스릴러 연출로 이름을 알린 사람입니다. 조디 포스터가 나왔던 <플라이트 플랜>(2005)을 연출한 감독. 다소 뜬금없다는 의견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기본적으로 연애담이니까요. 하지만 제작자, 브래드 피트(네 바로 그 브래드 피트입니다)의 연출자 선정은 성공했습니다.

시간을 넘나들며 벌이는 연애란 치밀한 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난잡해지기 십상입니다. <백 투 더 퓨처>를 기억해 보세요. 복잡하게 얽히는 시간의 도치는 흥미진진한 만큼 어지러운 상상력입니다. 거기에 섬세한 감정이 결부된 사랑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로베르트 슈벤트케의 스릴러 연출 기술은 이러한 작업에 엄밀함과 에너지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헨리의 시간여행 때문에 벌어지는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이고, 때로는 아찔한 에피소드들을 적당한 길이와 리듬감으로 엮어냅니다. 물론 그러한 유머, 낭만, 아찔함의 절반은 이러한 이야기를 창조해낸 오드리 니페네거의 성취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잦은 시간 이동으로 산만해지는 이야기의 구조를, 영상 형식의 반복과 중첩으로 다잡는 시각적인 연출방식입니다. 헨리의 시간여행은 유독, 한 곳을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간여행은 주로 클레어의 집 주변에 집중됩니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영화는 그의 시간여행을 유전병으로 짐작합니다) 적당한 유추는 가능합니다. 어쩌면 헨리의 시간여행은 무의식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그의 시간여행은 결국 그의 감정과 의지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건 둘을 운명의 연인으로 묶는 원작과 영화의 기본 설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반복과 중첩은 시간여행이라는 다소 SF, 내지는 판타지 같은 설정에 관객이 적응하는 것을 돕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헨리는 시간을 이동하지만 예정된 현재나 미래의 일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의 감정은 다소 우울하고 답답한 것이지요. 관객은 반복되고 겹쳐지는 장면들을 통해 시간 속에서 그저 모든 것을 바로보기만 하는 헨리의 감정에 다다르게 됩니다.


시간여행으로 낯설게 바라본 연애

만약 우리에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지 않은 일들과 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해선 안 됐을 일들을 떠올리며 시간여행을 감행할 것입니다. 로맨스로서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여행이란 방법론으로 연애의 문제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작품입니다. 헨리의 시간여행은 비록 의도된 것이 아니지만 그의 뜬금없는 사라짐과 등장으로 인해 연애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설령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라 하더라도 시간여행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새롭고도 대단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방금 남자친구와 다퉈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데, 난데없이 알몸으로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는 3년 전의 남자친구를요(다른 남자친구가 아니라 방금 싸운 남자친구 말입니다). 헨리와 클레어의 연애는 다른 커플들의 만남처럼 어려움과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헨리의 시간여행은 이 모두를 적당히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립지대를 빚어냅니다. 그곳에선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진 연애의 파고들이 무중력상태에 빠집니다.


이건 그리 낯선 상황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연애의 파국은 대부분 어리석은 판단, 순간의 실수나 감정의 과잉에서 기인합니다. 수많은 연인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의 어리석음이나 실수, 과잉을 후회하고 반성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연애에 있어 시간을 넘나들게 된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른 뒤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보다 훨씬 현명해지거나 관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의 세계에선 오직 반성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 그리고 두려움과 설렘으로 가득한 미래가 현재와 나란히 흘러갑니다.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은 그렇게 때론 우리 마음속에 남은 희미한 그리움과 함께 공명할 것이고, 때론 아득한 설렘을 각성시킬 것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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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1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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