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올해만큼 ‘미친 엄마’가 활약한 적도 없다. 생각해보면 이전까지의 한국영화에서 미친 어머니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쿨하거나 억척스럽거나 복수심에 불탄 살인마가 되어 튄 엄마는 있었지만 광기어린, 일명 ‘똘끼’를 발산한 엄마는 드물었다. 그 미친 엄마의 중심에 <마더>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이라 할 만한 배우 김혜자를 데려다 모성이 가 닿을 수 있는 극단의 지점을 보여줬다. 영화는 뽀글거리는 아줌마 파마에 몸빼바지를 입은 촌부의 모습을 한 채 단순히 모자란 아들을 과잉보호하는 것 같던 여자의 피 끓는 모정을 지닌 엄마이자,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지닌 여성이자, 궁지에 몰린 인간으로서의 면면을 두루 살피며 전율을 안겨줬다. 특히 <마더>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모자의 관계로 금기를 넘어선 가족을 그려내 충격을 선사했다. 우리가 ‘엄마’라는 존재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그 이상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박쥐>의 엄마도 미치기로는 <마더> 못지않다. 머리뿐 아니라 몸 상태까지 심히 모자란 아들을 금지옥엽 보살피는 그녀는 이기적인 모정의 추함을 보여준다. 고아가 된 여자애를 데려다 키우는 보편적 모성애를 발현하면서도, 그 아이를 기어코 아들의 여자로 만들어 병수발과 집안일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조롱하기까지 하는 사악함이란. 그 모습은 영화가 발산하는 특유의 광기와 어우러져 매우 야릇한 느낌을 전달한다. 살해된 아들이 영화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박쥐>의 엄마는 온몸이 마비된 채 뱀파이어 며느리의 핏빛 난장과 끔찍한 최후를 목도하며 말없는 화자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앞선 두 영화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차우>의 엄마가 뿜어낸 광기도 인상적이다. 김 순경의 노모,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그녀는 비상식적인 인물들과 코미디로 버무려진 이 영화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동네의 미친 여자와 더불어 식인 멧돼지 못지않게 묘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 미친 동네 여자 또한 어긋난 모성애로 영화의 이상한 맥을 한줄기 형성하기도 한다(가히 올해 한국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미친 여자’라 할만하다).

세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남편 부재와 못난 아들이다. 이상한 어머니 곁엔 아버지가 없다. <마더> <박쥐>와 달리 <차우>에선 아들이 엄마를 보살피는 형편이긴 하지만 능력도, 용기도 없는 아들은 시골로 좌천 된데다 늙고 병든 엄마로부터 해방되길 원하는 못난 놈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두드러진 영화에서 어머니가 존재하긴 하나 전형적인 가정주부 혹은 성격 없이 미약한 역할에 머무는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읽힌다. 마치 엄마가 두드러지려면 아빠가 없어야만 하는 것처럼. 더욱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미친 엄마들은 대부분 공포물이라는 장르 안에서 형성한다는 것이다. 남편 없이 허술한 아들을 옆에 둔 미친 엄마는, 무섭다.

물론 <마더> <박쥐> <차우>에 등장한 엄마와 가족의 모습은 현실적인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하지만 비록 미치지 않았더라도 전반적으로 2009년 한국영화 속에 등장한 엄마들은 세다. <거북이 달린다>와 <반두비>의 엄마는 연하 남편과 연하 애인을 ‘슬하’에 두고 자녀양육과 생계,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거침이 돌진했다. 물론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와 <애자> 같이 (역시나 아버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주기적으로 또 전형적인 가족영화의 틀로 모녀의 갈등과 화해, 성장을 다룬 일련의 영화들도 있었다.

이렇게 어머니가 돋보인 가운데 아버지의 부재와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고개 숙인 아버지’다. 해변을 덮친 쓰나미보다 절절한 가족애가 더 부각된 <해운대>에서는 이혼 후 딸의 얼굴조차 모르고 살던 아빠와 어린 아들보다 더 철없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웃음과 감동을 일으켰다. 탈주범과 형사의 추격전을 그린 <거북이 달린다>가 기어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연상의 아내에게 신랄하게 구박받고 어린 딸내미로부터 굴욕적으로 걱정을 듣던 위기의 중년에 대한 연민이다. 이미 한국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권위’ 따윈 땅에 떨어지고 무의미한 것이 된 지 오래긴 하지만(<국가대표>에서 극도로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꼼짝 못하는 재복의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거북이 달린다>는 그러한 모습을 대놓고 꺼내 보여주며 등을 토닥인다. 가족을 인질삼은 범인과 죽기 살기로 맞서 승리한 남자가 멋지게 제복을 차려입고 소중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빠로 거듭나는 것으로 마무리한 <거북이 달린다>는 마치 이 시대 아버지에게 바치는 응원가와도 같다. 이밖에 <아부지> <부산>처럼 제목에서부터 ‘이건 아버지의 정에 관한 얘기다’라고 선전포고를 한 영화들도 언젠가부터 어깨가 움츠러든 아버지의 존재를 보듬는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폭력과 그로인한 가족의 파괴를 굉장히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그린 <똥파리>는 매우 아린 방식으로 가족을 말한다. 영화가 그리는 가정은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 주인공은 폭력을 휘둘러 가정을 파탄시킨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폭력으로 되갚는다. <똥파리>가 보여준 폭력의 세습은 부정하고 싶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엄마와 여동생을 죽게 한 원망스런 아버지를 기어이 찾아가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의 행동은 그 죽일 놈의 혈연 때문이다. 도대체 가족이 뭐기에. <똥파리>는 아무리 뿌리치려고 해도 떨어져나가지 않는 가족이라는 굴레가 한 남자를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직시한다.

비록 1970년대의 과거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행자>가 보여준 가족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여기서 아빠는 새 아내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어린 딸내미를 낯선 고아원에 놓고 도망간다. 졸지에 고아원의 불청객이 된 소녀의 눈물 어린 비참함은 대안가족의 형태를 띤 정감어린 고아원 풍경 속에서 점차 희석된다. 9살 소녀에게 아버지의 부재(배신)는 인생을 뒤흔드는 절망이지만, 고아원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은 소녀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 물론 이 가족 또한 소녀의 프랑스 입양이 결정되면서 이내 사라져버린다. 어렸을 때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인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여행자>는 이렇게 가족의 소멸과 생성을 슬프고도 감미롭게 그려낸다.

한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전복시켜 미스터리하게 풀어낸 독특한 작품이다. 아빠 없이 자란 것이 평생의 한이 된 여자가 언니와 함께 어딘가에 살고 있는 아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부모와 자식이 모두 있어야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식되고, 아빠 없이 자라는 것이 괜한 흠이 되는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영화는 여자로만 이뤄진 가족을 따스하게 비추며 아빠는 없어도 된다고,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오해가 풀린 순간, 홍길동도 아니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미소를 통해 영화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리며 기분 좋은 울림을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2009년 한국영화에서 가족은 불완전한 형태에 놓여 있거나 미스터리와 공포를 조성하는 장치로서 활용됐다. 또 부부, 형제, 자매보다는 부모 자식 사이에 생기는 기이함과 긴장감이 돋보이며, <가족의 탄생>(2006)이나 <좋지 아니한가>(2007)처럼 구성원들 각자의 별난 이야기를 통해 ‘가족’ 그 자체의 의미를 되새기려하는 일종의 가족영화가 아니라, 철저히 캐릭터화 된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장르적 속성이 두드러진 이야기 속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된 가족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어쩌면 이것은 ‘가족영화’라는 단어가 무색해지는 한국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일지도 모른다. 정미래 기자(FILMON)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film-on.kr/trackback/705 관련글 쓰기

  1. 태터앤미디어의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어쩌면 이것은 ‘가족영화’라는 단어가 무색해지는 한국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일지도 모른다. <2009 한국영화 속 가족의 어떤 경향>

    2009/11/28 21:43

댓글을 달아 주세요

◀ Prev 1  ... 254 255 256 257 258 259 260 261 262  ... 740  Next ▶

카테고리

FILMON (740)
REVIEW ON (343)
FEATURE ON (121)
PEOPLE ON (86)
CULTURE ON (68)
ESSAY ON (59)
TALK ON (15)
FOCUS ON (39)
NOTICE ON (8)
CONTACT US (1)

영화웹진 FILMON

'미래'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미래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Copyrightⓒ FILM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