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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는 2012년 세상이 멸망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그 멸망의 과정을 곱씹어 보자면 제작진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존의 재난 영화들이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들을 한 가지씩 차용한다면, <2012>는 여러 가지 자연 재난들을 한꺼번에 소환해 난장판을 벌입니다. 지진으로 갈라지고 꺼져 들어가던 땅이 순식간에 화산폭발로 터져 나오고 이내 밀려오는 쓰나미에 잠겨버리죠. 시각적인 부분에 한정한다면 <2012>는 자연재해의 집대성, 재난영화의 결정판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흥행방법론으로 탄생한 재난영화는 거창한 스펙터클과 대다수의 관객을 배려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얽어 만들어집니다. 구경거리와 쉬운 이야기, 참 단조로운 구성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시각효과는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현실감과 구경거리로서의 역동성을 혼합하면 됩니다. 이야기는 더 간단해요. 비장하고 우스운 이야기를 교차시키다 이내 껴안고 울고 용서하게 만들면 되죠.
물론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많은 작품들이 대담한 스펙터클과 나름 감동적인 이야기를 준비한답시고 설치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리곤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어요. <2012>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고질라>(1998)가 바로 그런 작품이죠. 롤랜드 에머리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괴수물을 바탕으로 거대한 스펙터클과 느낌 있는 이야기를 시도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욕심이 과했죠. 고질라는 애초에 현실감이 없는 캐릭터예요.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는 지나치게 변형된 괴물의 모습으로 고질라 본연의 매력마저 흩어버린 데다가, 거칠게 곁들여진 이야기가 오감을 오그라들게 만들었어요. 영화는 재앙이 돼버렸습니다. 그에 비하면 <2012>는 매우 정석적인 느낌을 줍니다. 일단 자연재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재난의 재료죠. 시각효과는 화려한 물량공세를 벌입니다. 그러면서도 캐릭터와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질 않아요. 따분할지는 몰라도 정직하고 충실한 안배입니다.
물론 일주일 1회 이상 영화를 관람하는 준마니아급 관객에게 <2012>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재난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분류해 바라보자면 <2012>의 각 요소들은 너무나 예측가능하기에 극적인 긴장감을 현저하게 떨어트립니다. 이야기가 너무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눈물이 나와야 마땅한 장면에서 하품이 나올 수도 있어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몇몇 소수의 재난영화들은 기이한 결말이나 정서, 효과들로 뜻밖의 기쁨을 줍니다. 작년 초 선보였던 <미스트>(2008)는 그런 작품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어요. 감동을 위해 억지 해피엔딩도 마다않는 여타 재난영화들을 생각할 때, <미스트>의 결말은 괴팍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 정서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어둠과 혼란, 그 자체죠. 이러한 영화적 긴장, 창의적 자극을 목표로 하는 관객에게 <2012>는 따분하고 미숙한 작품일 수밖에 없어요.
결국 <2012>는 기존 재난영화의 범상한 기준에서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정석적인 오락 영화입니다. 불안전한 가정의 가장 잭슨(존 쿠삭)이 가족을 재결합하는 동안, 자동차는 무너져 내리는 도로를 질주하고, 비행기는 화산폭발을 피해 아슬아슬한 이륙을 감행합니다. 쫀쫀하게 구성된 재난 시퀀스는 칭찬이 아깝지 않습니다. 갈라진 땅 속에서 튀어 오른 지하철이 낮게 비행하던 비행기를 스치는 장면이나, 수많은 건물과 도로가 들어찬 땅 덩어리가 통째로 물속으로 빠지는 장면은 놀랍고도 시원한 스펙터클입니다. 반면 잭슨의 활약이 수십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주먹구구식 설정도 적잖이 끼어들지요.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세상이 무너지는 마당에 불가능이란 없는 겁니다. 그저 굉장한 재난의 광경과 이후 찾아드는 안도감을 맘껏 즐기면 될 것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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