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가 인간의 동경을 바탕에 둔 장르라면, SF는 인간의 비관을 극대화한 장르라 할 만하다. 그동안 ‘공상과학’이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에 대한 과학적 견지이자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한 일의 경고를 자임했던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 게다. 이를테면 신예 던컨 존스 감독의 <더 문>은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동경의 달나라가 아닌 과학적 상상력으로 정복한 지구 유일의 위성 위에 이런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펼쳐낸다. 무한 에너지의 보고로 달세계를 설정, 이를 채취하기 위한 노동자와 달기지와 월면차가 존재하는 그곳에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클론과 조작된 기억 등이 차례로 등장해 그동안의 SF 장르를 되새김질한다. 여태껏 수없이 다뤄졌던 다양한 공상의 산물, 그 가장 전통적인 SF 소재들이 달세계를 배경으로 가장 정통적인 SF를 꾸려 가는 것이다.
‘시즈마 드라이브’라는 완전무결한 에너지원의 세계에서 시작하는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은 요코야마 미츠데루 고전만화의 집약체이기 이전에 ‘대가 없는 결과’, 그 불가해함과 어리석은 착각을 작품의 대전제로 내세우는 애니메이션이다. 에너지 불평등, 고갈 혹은 공해 같은 특별한 부작용 하나 없이 무한의 에너지를 약속한 제3에너지혁명 시즈마 드라이브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번영을 가져다준다. 허나 부제인 ‘지구가 정지하는 날’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에너지원의 갑작스런 전지구적 정지와 이로 말미암은 에너지원의 수복 과정은 곧 아무런 대가 없이 얻은 이 가공 에너지에 대한 은유이자 작품의 주제로 기능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달 표면에 축적된 헬륨3가 인류의 신에너지로 각광받는 <더 문>의 세계에서도 이 무한 에너지의 완전무결성은 자연히 그 숨겨진 대가에 주목하게끔 하며 동시에 영화의 대주제를 이끈다. 홀로 무료한 달기지 생활을 3년이나 해온 샘 벨(샘 락웰)은 단순히 헬륨3를 채취해 지구로 수송하는 막중한 업무만을 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헬륨3는 아무런 공해도 부작용도 없이 신세기 지구를 구원해 준 완전무결한 에너지원이건만 그 대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 머지않아 밝혀지지만 헬륨3의 대가는 공해나 고갈 따위가 아니라 샘의 혹사와 그 예정된 죽음, 즉 달기지 근무자의 일회적 소모라는 이름으로 일차 확인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인공지능 거티(목소리 케빈 스페이시)에 의존해 홀로 무미건조한 생활을 반복하는 것만 보더라도 이곳의 생활이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만하다. 3년이라는 꽤 견딜만한 시간을 미끼로 어느새 고장이라는 간편한 이유를 들어 지구와의 송신은 끊기고 자연히 그의 삶을 지탱하던 가족과의 통화 역시 요원해지면서 자연히 그는 고립된다.
물론 샘이 치러야 할 헬륨3의 그 어마무지한 대가는 이뿐만이 아니다. 샘은 지구 귀환을 2주 앞둔 후부터 환각에 시달리다 마침내 기지 밖 월면차 작업 중 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달기지 안에서 눈을 뜬 그는 그때부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스마일 마크로 감정을 표현하며 케빈 스페이시의 정감 어린 말투로 구현된 그의 유일한 친구 인공지능 컴퓨터 거티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한다.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
<더 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9000, 통칭 ‘할’과 같은 임무를 띤 거티는 무한히 인간에 가까운 인공지능으로 자연히 언캐니밸리(인간에 가까운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서 느끼는 거부감)의 객체를 우선 연상시킨다. 할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자신의 존재(즉, 목숨)를 보존하기 위해 승무원을 살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티의 행동 역시 자연히 수상한 낌새를 풍기기 충분하다. 특히 박스 모양의 둔중한 형체를 한 채 기지 안을 천천히 맴도는 그의 메인 바디는 굳이 저예산 영화의 만듦새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수상쩍게 느껴진다.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사이보그에게 농락당한 1편 이후 시리즈 내내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들에 대해 품던 불신감과 마찬가지로 샘 역시 사고를 당한 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 육체와 불완전한 정신을 객관화할 유일한 타자 거티에게 자연히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연히 거티의 눈을 피해 달기지 밖으로 나가 사고당한 월면차 안에서 가사 상태에 빠진 자기 자신의 육체를 발견하기까지 샘의 의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
<에이리언>
<쥬라기 공원>
<토탈 리콜>
이후 자신의 육체를 기지 안으로 끌고 와 치료한 샘은 이제 두 명의 샘이 된다. 사고를 당한 원래의 샘과 그의 후임이 되어야 했던 샘, 이 두 명은 애초에 절대 만나지 않았어야 했을 만남을 통해 달기지 생활의 모든 해답을 유추해낸다. 무한에너지의 대가는 사실 인간이 아닌 클론에게 부과되어 있었던 것. 영화가 다양한 SF적 소재와 속성을 끌어와 새롭게 설계한 그 구심점에는 이 미스터리가 자리 잡아 다양한 소재와 속성들을 봉합해낸다. 샘의 클론들은 <토탈 리콜>처럼 자신의 모든 기억을 지구에 존재하는 가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처럼 처음부터 소모품으로 파견된 데에 불과했던 것이다. 샘과 또 하나의 샘이 기지 구석구석을 뒤져 수많은 자신의 모조품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 가설은 차츰 힘을 얻는다. <아일랜드>와 같이 곧 죽음을 맞이할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그저 지구로의 귀환만을 그리다 무수히 죽어갔을 또 다른 샘, 그리고 또 어느 기지에서 묵묵히 임무에 매달릴 다른 클론들의 희생은 그렇게 완전한 그림을 그리고 만다.
그러나 생명이란 모름지기 <쥬라기 공원>에서처럼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가깝다.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한 현대 공룡 세계에서도 스스로 생명을 만들고 이내 부화하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샘과 또 다른 샘이 같은 오리지널에 기반을 둔 복제인간이라 할지라도 성격과 취미와 특기가 확연히 갈리듯 생명에의 가치를 경시한 루나 인더스트리의 결말은 처음부터 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 기계적 생김새와는 다르게 종국까지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무언가를 선사하는 인공지능 거티,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에게 부과됐던 제한된 생명처럼 3년이라는 시간의 귀착점을 향해 고통스럽게 죽음을 향하는 샘과 또 다른 샘의 지구로의 귀환 작전은 이내 갖가지 SF장르가 말했던 것들의 총합과 같은 면모로 다가온다.
무제한 자원의 부작용을 끊임없이 잠재한 모든 과정들, 그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을 떠올리기 십상인 인공지능에 대한 불신과 그 역발상격인 거티의 희생까지 <더 문>이 내달린 길에 뭉텅 떨어진 미스터리 위에는 꽤나 많은 진실과 유구한 SF의 역사가 유려히 자리한다. 이 모두가 새롭진 않지만 그 익숙함 안에 SF의 낯익은 소재들을 구석구석 녹인 그 만듦새는 분명 전통의 SF이자 정통의 SF로 곧추 향한다. 강상준 기자(FILMON)
ⓒ (주)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더 문 [Moon] 감독 던칸 존스 출연 샘 락웰, 케빈 스페이시, 맷 베리, 로빈 찰크, 도미니크 맥엘리갓 등 2009. 영국. @ 아트하우스 모모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관계’라는 틀 속에서 성찰과 성장을 해나가며 그런 성찰의 과정은 인류역사의 추진력으로 된다. 인간이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성찰해나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인간이 처한 조건에 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