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막연한 후회로 가득한 20대의 끝에서 더욱 아득한 상실감과 그 상실감의 정체를 찾아가는 <1Q84>. 이는 곧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보며 잃어버린 순간과 잊고 있던 것들을 되찾는 누구나의 힘겨운 모험과 다름 아니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유년기의 아픈 기억을 딛고 고독을 체화한 어른이 되어 ‘세계의 끝’에 있었을 서로의 공기번데기를 찾는 과정이 1Q84년이라는 이름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펼쳐지는 것 또한 그러하다. 특제 아이스픽으로 주도면밀한 살인을 거행하는 아오마메나 10년 연상의 유부녀 걸프렌드와의 관계를 세상에 대한 유일한 출구로 드리우며 침잠을 갈구하는 유령작가 덴고의 삶은 코뮌 선구와 공기번데기, 리틀 피플과 같은 문학적 장치와 판타지를 통해 오히려 더욱 우리 실제 세계에 밀착한다. 200Q년, 스스로를 가둔 채 각자의 영지 안에서 막연한 그리움과 끝도 없는 상실감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현재처럼 말이다.
<1Q84> 두 권만 들고 무작정 시작한 여행길이었지만 그래도 시원한 느낌보다는 남겨둔 무언가에 대한 찜찜한 생각들에 괴로웠던 게 사실이다. 어쩌면 이 힘겨움이 그저 누구나처럼 서른이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그런 크고 작은 일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죄스럽기까지 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 모든 것들이 지겹고 힘에 겹던 차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1Q84>가 혹시나 건넬지 모를 치유에 대한 기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날며칠동안 낮에는 올레길을 걸으며 지금껏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해답을 갈구하고 묵은 진리를 들추었으며, 밤에는 이제까지 하루키가 선보였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고독을 입고 상실을 긍정하는 아오마메와 덴고에 집중하며 낮에 밟아온 길을 곱씹었다. 이는 ‘세계의 끝’에서 이번엔 일각수가 아닌 눈 먼 산양과 함께 공기번데기를 재창조함으로써 형체도 없는 어머니의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자신의 유년기를 되감아가는 덴고, 그리고 매순간 한없이 그리운 무언가를 다투고 갈망하며 거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몸담은 아오마메의 이야기 모두가 20대 시절 탐독했던 하루키의 세계에 아직까지도 오롯이 머물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다른 단어, 다른 세계로 치환됐지만 하루키가 건네는 이야기는 여전히 그의 페이지 사이사이마다 흐르는 재즈와 클래식처럼 자연스레 듣고 익히며 깨닫는 사이 어느 순간 더욱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세계와 맞닿아 있다. 언제나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이야기하는 인물들의 정제된 느낌과 그 안에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특유의 고독감, 무심함, 상실감이 반가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비록 살인과 추행, 강간, 불륜 등이 더해지긴 했지만 현실과 판타지의 모호한 경계로 치장된 이 추한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개인의 모험은 그 옛날 쥐와 함께 땅콩껍질로 펍 바닥을 뒤덮던 시절과 여전히 궤를 같이 한다.
일주일 이상 지칠 대로 지칠 때까지 제주도를 걷던 어느 날. 1Q84년을 받아들이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마지막 행보를 가늠하고 <1Q84>의 진의를 나름의 판단으로 거둔 순간 여행은 끝이 났다. 아니, 끝내야 했다. 서른, 이제 정말로 잔치는 끝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잔치 말고도 끝나지 않은 것은 더욱 많다. 무심한 하루키의 세계에 자본주의의 전복이나 복수와 범죄, 유년기의 아픈 기억을 쓸어안고 살아가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그 이면에는 공기번데기를 가꾸고 두 개의 달을 바라보며 되찾아야 하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환상 역시 동량 존재하고 있지 않던가. 노회할 대로 노회한 시선으로 유년기를 완성하는 하루키는 이번에도 역시 완전한 치유를 선사하기보다는 원천적 상실감에 더해 세계 어딘가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나아가라는 희미하고도 신묘한 깨달음을 한 줄기 흘리는 데에 그치고 만다. 내 처음 바람과는 달리 하루키는 <1Q84>에 치유의 몫은 그다지 남겨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건네는 그리움과 상실의 정서에는 분명 그가 아니면 건넬 수 없는 묵직한 물음과 가치가 더욱 단단히 담겨 있다. 단지 그것뿐이었을 테지만 책장을 덮은 후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는 그래서 만만치 않았던 게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내가 품고 온 그 끝도 없는 상실감을 다지고 또 다지면서도 서울에 두고 온 내 삶을 정말로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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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와 제주도 여행, 그리고 올레길..
2009/11/30 16:09오래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드셨네요.
글쓴이의 걸음이 앞으로 더 힘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