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제베트 바토리를 아시나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라는 휘황찬란한 닉네임을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16세기 헝가리에서 실존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인생은 권력과 부의 꼭대기에서 시작해 잔혹과 광기로 마무리되는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15살이 되던 1575년 헝가리의 용맹한 군주 페렌츠 나더스디 백작과 결혼합니다. 당대 모든 유력가문은 부러움과 공포를 동시에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란실바니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가문이자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바토리 가문과 전장에서의 잔혹함과 용맹함으로 이름 높던 나더스디 가문의 결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잦은 전쟁으로 영지를 떠나있던 남편이 결국 전쟁 통에 목숨을 잃게 된 후, 에르제베트 바토리의 삶은 기이한 소문으로 둘러싸였습니다. 그녀가 젊은 여성을 죽여서 피를 마시고 심지어는 그 피를 모아 목욕까지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목사의 탄원으로 조사에 나선 왕궁은 백작부인의 시녀와 하인들을 잡아들여 추궁을 시작했습니다. 잔인한 고문이 이어졌고 곧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자그마치 1568명의 젊은 여인들을 갖가지 고문도구를 동원해 괴롭히다가는 이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이 밝혀진 것입니다. 형의 집행은 빨랐습니다. 그녀는 종신금고형을 받아 죽음을 맞기까지 폐쇄된 탑의 꼭대기에 갇혔습니다. 그나마 그녀의 혈통을 감안한 감형. 최소한의 음식과 물이 공급되었고 죽기까지 3년 동안을 그녀는 철저한 어둠 속에서 연명했습니다.
과거의 재구성, 시대의 희생자 바토리
영화 <카운테스>는 이 기괴한 전설을 처음부터 리셋합니다. 줄리 델피(<비포 선셋>(2004) <비포 선라이즈>(1995)의 그 사랑스런 여인 말입니다)는 이 기묘한 이야기의 연출과 주연을 맡아 에르제베트 바토리의 삶을 재구성하지요. 대충의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다소 과민하고 나약한 여성이었으며, 그녀를 반미치광이로 만든 것은 그녀의 가문과 재력, 그리고 군사력을 두려워했던 당시의 권력 주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살해행위가 그녀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게 아니라 권력을 노린 교활한 음모의 소산이라는 것이 바로 <카운테스>의 시선이자 자세입니다.
이에 따른 설정과 진행은 그리 낯설지가 않습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지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2007)역시 굶주린 국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반문했다던 사치와 허영의 상징,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 속의 한 여자로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우린 역사, 좀 더 엄밀하게 말해 기록된 역사란 그 것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매우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전적으로 거짓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최근 씨네21에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를 예로 들며 보르헤스의 <영웅과 배신자에 대한 논고>를 언급한 적이 있지요.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한스 란다처럼 교활한 작자들이라면 영웅과 배신자의 위치는 순식간에 뒤바뀌곤 하는 것입니다.
저간의 자료들을 감안할 때 에르제베트 바토리가 영웅일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보르헤스식 회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가정이 가능합니다. <카운테스>가 시도하는 작업은 역사와 전설을 통해 괴물로 자리 잡은 한 여성의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카운테스> 속의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살인마, 흡혈귀가 아니라 그저 젊음에 눈이 먼 어리석고 외로운 여성입니다. 그 어리석음과 외로움의 시작 역시 자못 동정이 가는 대목입니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그녀를 둘러싼 교활한 남성들의 음모로 인해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게 될 사랑에 빠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를 홀린 젊은 남성은 그녀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 채 떠나고 말입니다. 외로운 권력자로서 자신만의 완고한 공간과 위치 속에 갇힌 그녀가 느닷없는 이별과 외로움 속에서 광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제법 부드러운 설득력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그러한 연유로 그녀가 벌이는 엽기적인 살해행각에 대해서까지 지지와 이해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젊은 연인이 떠나간 이유를 자신의 늙은 육체에서 찾았고, 젊음을 갈구하다가는 반쯤 돌아버린 나머지, 젊은 여성의 피가 자신의 젊음을 돌려준다는 기괴한 믿음을 품습니다. 잘못된 믿음은 욕망의 폭주로 이어집니다. 그녀는 주위의 젊은 여자들을 거리낌없이 학살합니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살해 행각의 주체는 그녀이고 1500여명의 목숨이 끊어졌다는 사실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온적인 시선, 남아있는 아쉬움
줄리 델피 감독은 백작부인의 살해행위를 그대로 재연합니다. 하지만 의문입니다. 바토리 부인의 젊음에 대한 집착과 살인 행위는 영화의 기본적인 흐름을 크게 거스르는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드라마를 포기하는 대신 문제제기 방식을 좀 더 강하게 밀어 붙였더라면, 영화는 확실히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가령 그녀는 피의 목욕을 즐긴 것이 아니라 토마토 주스, 내지는 산딸기 주스 목욕을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그녀의 힘과 부를 시기한 남성 권력자들이 토마토와 산딸기를 피로 뒤바꿨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희생당한 1568명의 죽음 역시 의심이 가능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불러온 수많은 죽음들은 그녀의 호사스런 피부관리법을 잔혹한 탐욕으로 둔갑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지나친 상상력일까요? 하지만 바토리 백작부인과 비슷한 악명으로 널리 알려진 드라큘라 백작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상상력은 모종의 의혹으로 수렴되지요. 15세기 루마니아의 악명 높은 군주였던 블라드 체페슈(내지는 블라드 드라큘라로 불렸습니다)는 이후 브람 스토커의 문학작품 <드라큘라>(1897)를 통해 끔찍하지만 매력적인 흡혈귀로 재탄생합니다. 그저 끔찍한 살인귀에 불과한 바토리 부인과는 매우 상반된 운명 아닙니까?
에르제베트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블라드 드라큘라)
이건 우리가 떠올리는 그들의 근래 이미지를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드라지는 특징입니다. 먼저 드라큘라 백작은 위험한 악마이지만 매력적인 로맨티스트입니다. 오직 한 여인만을 위한 위험한 욕망, 그리고 집념어린 사랑을 품은 그는 다소간 음침하고 사악하지만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매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바토리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교활하고 잔혹하기만 한 존재입니다. 젊은 여성을 탐하는 그녀는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위협적이기는 마찬가지, 공공의 적이 따로 없습니다. 물론 그들 각자의 기록이나 전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식의 회의주의, 내지는 적절한 수준의 여성주의를 적용한다면 역시나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차이는 남성중심주의라 불리는 뿌리 깊은 굴절에 대한 의혹을 짙게 합니다.
때문에 <카운테스>의 미진함이 더더욱 아쉽습니다. 만약 조금만 더 확연한 시각을 부여했다면 영화는 그녀를 둘러싼 시대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그 기록에 대한 의혹을 보다 명징하게 짚어냈을 것입니다. <카운테스>라는 제목 뒤에 가려진 에르제베트 바토리의 삶 역시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을 향해 뻗어갔을 것입니다. 한 여성이 그저 속절없이 괴물이 되고 무참하게 죽어간 이야기의 그 은폐된 가능성 속으로 말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 報告書. Psychopath ]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게 쓰여지고 있습니다.실제 싸이코패스들이 벌이는 엽기적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하곤 합니다.싸이코 패스란 어떤 증상인지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선천적 전두엽 이상의 비밀을 갖고 있다 선천적으로 인간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에 이상이 있는 정신질환자라는 주장. 특히 이들에겐 공격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 성분이 결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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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리 백작부인을 다룬 영화는 2008년에 나온게 더 나은듯 싶네요.
2009/12/24 15:31bathory(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