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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여전히 큰 상처지만, 5.18로 향하는 <스카우트>는 치유의 영화였다. 아물지 않은 5.18의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많은 광주시민들이 있건만, <스카우트>의 광주는 오히려 호창(임창정)의 상처를 봉합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는 한국현대사에 남겨진 끔찍한 흉터를 재현하는 다른 영화들과 같이 그때의 아픔을 되새기는 비극의 굴레 안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가장 오락적인 소재를 동원해 가장 미시적인 곳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결국엔 5.18을 겪지 않은 세대들의 폐부까지 찌르고야마는 <스카우트>는 그렇게 가장 5.18다운 영화로 그 의미를 아로새긴다.

‘광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급파된 Y대 스카우터 호창은 군대에서 본 전두환의 모습을 “그 사람 진짜 남자더만. 하하하”라고 회상하는 녀석으로 운동권과도 무관하고 광주사람도 아닌 그저 그런 일개 소시민일 뿐이다. 애초에 호창은 광주에서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대학시절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헤어진 세영(엄지원)과 재회하고 또 예전 라이벌을 다시금 라이벌 대학의 스카우터로 대면하면서 그의 광주 체류는 점점 더 길어진다.

본의 아니게 길어진 호창의 광주 체류는 정확히 5월 17일 밤까지만 다뤄진다. 그리고 왜 세영이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길고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호창이 동열의 새 유니폼을 보고 떠올린 그 과거 속에는 결코 기억할 수 없었던, 기억하기 싫었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학생 시절, 총장실을 점거한 운동권 학생들을 ‘처리’하기 위해 등록금도 내지 않고 학교 다닐 수 있었던 야구 특기생에게 주어진 임무란 같은 학교 학생에게 야구배트를 휘두르며 집회를 해산시키는 것이었다. 집회에 모여 침묵시위를 벌이던 학생 중 누군가가 외친다. “너희들도 학생 아니냐”고. 호창은 머뭇거리지만 다른 야구부 학생들의 몸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움직인다. 그러다 오늘 몸이 별로 좋지 않은 야구부 동료 하나가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쓰러진다. 이제 호창도 별 수 없다. 자기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배트를 휘두를 수밖에. 그 솔직한 목적 단 하나만으로 총장실 앞에 모인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기에 그는 이내 그 쓰디쓴 기억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압에 못 이겨 할 수밖에 없었던, 아니 어느 순간에는 자신 역시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날뛰며 폭력을 주도하고야 말았던 그곳으로부터······. 다만 불행한 것은 세영이 그런 호창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간밤 내내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배후세력’(상부에서 내려온 취조 지시문 중 하나로 ‘다음 아고라’라는 ‘조직’에 대한 질문들이 있다고 한다. 허허)에 의해 촬영된 시위현장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일설에 따르면(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살수차가 뿜어대는 물살에 직격으로 맞은 한 고교생이 실명에 이르렀다고도 하고, 과잉진압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듯 전경들은 칼날 같은 방패를 앞세워 시민들을 무참히 찍어대고, 머리채를 잡고 연행하고, 군화발로 마구 밟아 내리더라. 그곳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피 흘리고 있는 처참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방패로 시민을 가격한 한 전경도 어느 카메라에 잡혔다. 그 뒤로 지나치던 또 다른 전경은 걸쭉한 욕을 내뱉으며 “깝치지 말라”고 하더라. “니들이 지랄하는 바람에 며칠 동안 잠도 자지 못했”노라고. 그들의 분노는 대충 그런 것이다. 내가 훈련소에 있던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조교들이 전해주던 바깥소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2002년, 훈련소에서 원로코미디언 이주일의 사망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인기가수 L양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터무니없는 루머조차 훈련병들은 100% 진실로 받아들였다), 아마 그들도 시민들의 분노가 무언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의 부상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날카로운 시민들과 오랜 시간 대치하면서 자연스레 또 다른 분노를 키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시민들의 평화시위는 어느새 분노로 변해갔다. 집회를 해산시키려는 전경들의 강경진압이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전경들의 분노는 이미 시민을 향하고 있고, 또 어느 순간 시민들의 분노가 눈앞에 있는 전경들에게만큼은 향하지 않을 것을 절대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슬픈 꼴을 보니 저 높이 앉아 이를 지켜보는, 채 임기 100일도 채우지 못한 대통령은 마치 자신의 과오를 지적받지 않기 위해 일반시민과 전경이라는 ‘국민들’ 간의 어이없는 전투를 주도하고 있는 듯하다. 호창이 학우들을 향해 휘두른 배트만큼이나 전경들의 방패는 누구나에게 큰 아픔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새벽 집회는 어느 위정자를 제외한 공허한 외침으로 소진하는 듯해 또 다시 속이 쓰리다.

2008년 촛불집회가 5.18의 무서운 악몽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그만큼 피 흘리고 얻어맞은 젊은 학생들의 모습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속 광주시민과 다르지 않은 건 물론이고 TV로 본 그때 그 광주시민들과도 다르지 않았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는 연일 시위대를 염려하며 현 17대 대통령의 조용한 퇴진을 진심으로 바라신다. 군의 잔학한 진압과 학살에 대응하기 위해 무장을 강행할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쓰러졌듯 힘 있는 자의 느긋한 속셈과 대처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겪어본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스카우트>의 5.18이 호창의 참회이자 치유의 싸움이었듯 2008년 촛불집회 역시 분노와 실의를 향한 싸움이 아니라 하루 빨리 치유로 결론나길 바란다. 고통 없고 상처 없는 그런 치유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평화시위가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평화로운 시위로 끝날 수 있도록 말이다. 강상준 기자 (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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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다이스 2008/06/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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