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 개막식은 어느 해보다 후끈했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처음으로 기획, 제작한 영화 <원 나잇 스탠드>가 개막작으로 상영됐기 때문이다. 민용근, 이유림, 장훈. 세 명의 감독이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만든 세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영화 <원 나잇 스탠드>로 묶였다. 이 영화, 제대로 야하고 상당히 지적이며 매우 웃긴다. 상영이 끝나자마자 세 감독을 붙잡고 얘길 나눴다. 정미래 기자(FILMON)
민용근의 Episode 1 | “야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돼서 설렜어요.” <도둑 소년>(2006)의 민용근 감독은 그동안 전체관람가 영화만 만들어 온 터라 이번 프로젝트가 꽤 즐거웠던 눈치다.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점점 눈이 멀어가는 청년이 어떤 여대생을 스토킹 하고, 그런 청년을 어떤 여자가 몰래 지켜보고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청년은 오직 소리와 냄새로만 짝사랑하는 여인을 느낀다. 문에 청진기를 대고 집 안의 소리를 엿들으며, 쓰레기를 뒤져 그녀의 체취를 간직한다. 영화는 ‘훔쳐듣기’ ‘훔쳐맡기’의 은밀한 긴장과 쾌락을 관능적으로 시각화하며 청년의 애절함을 전달한다. “누군가를 스토킹 할 때 시각적인 게 가장 쉽잖아요. 하지만 청년은 그게 불가능하죠.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어요. 그의 세밀한 행동과 감정을 잡아내는 데 공들였습니다.” 또한 그 청년을 ‘훔쳐보는’ 여자의 호기심과 장난기 어린 행동이 미소를 자아낸다. 자신의 시야에 갇힌 청년은 잘 때도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는 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비로소 청년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영화를 보고 나서 생라면에 케첩과 참기름을 뿌려 먹어 볼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이 충고한다. “그거 되게 맛없어요.”
이유림의 Episode 2 | “두 개의 꿈과 두 개의 현실이 부딪히는 영화에요.” 신혼부부가 있다. 남편은 아내와 빨리 섹스를 하고 싶은데 정숙해 보이는 아내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던 중 아내가 갑자기 사라지고, 남편은 아내를 찾아 헤맨다. <새끼 여우>(2007)의 이유림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에피소드는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여자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남자는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요. 하지만 여자는 그 어떤 것에도 포함될 수 없는 독립적인 개체거든요.” 영화 속 아내는 남편이 알고 있는 것 외에 굉장히 다양한 면을 지닌 여자다. 감독은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을 인용해 아내의 꿈과 현실을 좇는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떨어뜨려놓고 각 상황마다 어떻게 변하는 지 보여줘요. 소설에서의 플로베르의 시각이 바로 이 영화에서의 남편의 시각인 것이죠. 그 속에서 진짜 여자, 실제 아내의 모습이 과연 있는 건인가. 그것에 관한 질문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장훈의 Episode 3 | 알알하고 아리송한 두 개의 밤이 지나고 대미를 장식한 건 발랄한 소동극이다. <불한당들>(2007) 장훈 감독이 연출한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그리고 사회적 계층을 뛰어 넘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성적 담론이 즐비하다. 뉴욕 영화평론가 장-끌로드 로메르에 대한 한국 공중목욕탕 목욕관리사 진영의 우정은 진영의 여자친구가 끼어들면서 이성으로서의 질투가 되기도 하고, 로메르가 야릇한 태도를 취하면서 호모포비아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편한 마음으로 페스티벌에 맞는 영화, 즐거운 영화를 찍으려고 노력했어요.” 장훈 감독은 때 밀어주는 행위가 얼마나 에로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를 새삼 알게 해준다. 서양인 로메르가 한국의 목욕관리사에게 몸을 맡기며 행복해 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이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우리 안의 편견을 일깨우며 기분 좋은 깨달음을 선사한다. 로메르로 분해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도 빼놓을 수 없다. “로메르를 연기할 배우를 끝내 찾지 못해서 결국 중간에서 배우를 알아봐주던 달시가 그냥 출연하게 됐어요.” 알몸 연기도 불사한 달시 파켓. 때 미는 장면에서는 이태리타올이 너무 까칠해서 천을 댈 수밖에 없었다고. 세 가지 색 에로스 <원 나잇 스탠드>는 13일과 17일에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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