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돌 그룹 참 많습니다.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이요. 좋지만은 않아요. 젊은 여자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볼만하지요. 하지만 유독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불편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세상이 험해지면 역시나 어려움에 빠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현실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경제활동은 여성들을 좀 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지요. 때문에 어느 소녀의 허리 비틀림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을 때, 내지는 그녀의 허벅지가 너무나 탐스럽다는 환호성이 울려 퍼질 때, 저는 생활 전선에 나선 소녀들의, 더 나아가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이 처한 살벌한 삶의 조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과연 그럴 만도 하지요. 시대를 반영하듯 요즘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디서나 경쟁과 생존을 부르짖는 중입니다. 능력주의를 외피로 취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의 경제적 지위, 사회적 지위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생존의지와 능력에 달린 것으로 판단됩니다. 비록 부와 지식 그리고 계급의 세습이 명명백백한 마당이지만 우린 어찌됐든 각자의 능력을 바탕으로 생존, 안녕, 번영을 꾀해야만 합니다. 모순된 경쟁의 법칙은 안타깝게도 윤리나 인류애를 시원하게 잊어버렸어요. 모두가 서로를 비교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며, 타인의 약점을 공격해야 하지요. 이는 이제 모든 리얼리티 프로그램, 그리고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세요. 몰아닥친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에게 보무도 당당하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그나마 일자리가 흔치 않은 요즘, 수당 없는 야근과 철야는 기본이요 박봉은 필수입니다. 상황이 이런 중에 소녀들이 허리를 비틀고 외모를 가꾸는 데에 일말의 문제의식이 자리 잡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문제의식이라니요. 아귀다툼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어쩌면 그걸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나만 당하면 억울하잖아요.
때문에 <청춘불패>는 그 존재만으로도 무한대결의 상황에 내몰린 이 시대 소녀들의 현실과 그를 둘러싼 괴이한 관음증, 그리고 욕망을 반영합니다. 아리따운 얼굴과 상큼한 미소,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섹슈얼리티를 팔던 그녀들은 이제 좀 더 강도를 높인 새로운 볼거리를 창출해야 하는 야근, 철야작업에 나선 것입니다. 그녀들은 서로의 미모와 재능, 그리고 인기를 경주하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때로는 체면을 몰수당하기도 합니다. 그녀들이 곤경에 빠지면 빠질수록 시청자들의 쾌감은 절정에 치달을 테니까요. 일견 비참하고 민망하지만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시청률은 방송사의 지상명제이고, 돈은 삶을 구성하는 절대적 조건이며, 존엄이란 서푼어치 호사에 불과한 오늘이니까요.
하지만 천만다행입니다. 그녀들의 행동과 웃음은 욕망이 탄생시킨 괴이한 광경과 상황을 오묘한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이들의 경쟁은 간단히 말해 그리 치열하지 않습니다. 인기와 미모, 그리고 나이에 있어 열세에 처한 구성원을 수탈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조작된 상황일 수도, 그리고 계획된 처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마이너리티가 최소한의 영역을 보호받는 상황이란 근래 들어 얼마나 희귀한 광경인지요. 몸빼를 걸친 그녀들의 속 깊은 배려는 잠시간 아득하게 사라진 인류애를 구현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까 <청춘불패>의 백미는 나이 많은 누군가가 자신의 나이를 밑천으로 끼를 발산할 때나 인기 많은 누군가가 그녀만의 자신감을 표출할 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의 운명을 짊어진 그녀들이 적당한 지점에서 물러서고 부족함이 있는 구성원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순간, <청춘불패>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가 드러납니다. 양보와 배려... 역시나 세상일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렇게나 험난한 세상,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무자비한 인과율에 대해 이 어린 여성들이 제시하는 해법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하단 말입니까.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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