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애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19세 소녀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담당형사 데이브(토미 리 존스)는 이 사건을 수사하다 40년 전의 살인 사건의 단서를 접하지요. 곧 이어 또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데이브는 이 사건들 간에 모종의 연관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이때 FBI가 나타나요. 건강해 보이는 FBI요원 로지(저스티나 마차도)가 말하지요. “지난 몇 년 간 이 지역에서 10건의 유사한 살인사건이 있었다”고 말이죠.
영화는 생경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배경부터가 그렇죠. 2005년 태풍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후의 루이지애나는 “미국의 도시라기보다는 차라리 방글라데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의 원작 ‘In The Electric Mist With Confederate Dead’의 작가이자 현재 미국 최고의 범죄소설가로 손꼽히는 제임스 리 버크의 말이기도 합니다. 고전주의적 영웅이자, 카우보이의 아우라를 뒤집어쓴 주인공 데이브 로비쇼도 그렇습니다. 그는 블루칼라 노동자를 연상케 하는 노인이자 노련한 형사로서 이 생경한 여행의 안내자이자, 시적인 내레이터이지요.
<일렉트릭 미스트>는 습하고 축축하며 다소 위험의 전조가 느껴지는 루이지애나를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미국, 인종주의와 기괴한 보수주의가 순환하고 있는 폭력의 미국으로 재구성합니다. 미국 남부에 대한 이런 통찰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코엔 형제의 걸작이자 역시 토미 리 존스를 보안관으로 등장시켰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또한 다소 생경한 시선으로 미국 남부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일렉트릭 미스트>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 진행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묵시록적인 내용과 긴박감 넘치는 액션을 병치시키는 것에 비해, <일렉트릭 미스트>는 데이브 로비쇼의 푸근한 일상과 그의 느릿한 수사과정을 그저 멀찍이 떨어진 채 천천히 쫓을 뿐입니다. 심지어 약에 취한 데이브가 늪지대를 헤매기도 하지요(국내 개봉 판에서는 생략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폭력의 진정한 속성일 것입니다. 우리가 분별해 낼 수 없는, 축축한 습기처럼 다만 느껴질 뿐 떨칠 수 없는, 그렇기에 우리 주변에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은 폭력의 속성 말입니다.
<일렉트릭 미스트>의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은 ‘포지티프’,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가로서 활동하는 한편, 영화광들의 필독서라 일컬어지는 <미국 영화 50년사>같은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으며 누벨바그 세대답게 연출에 나서 1984년 <시골의 어느 하루>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1996년 <라빠>를 통해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베테랑 연출가입니다. 그런 그가 역시 베테랑 할리우드 배우들을 만나 만들어낸 <일렉트릭 미스트>는 분명 남다른 가치와 뛰어난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영화의 운명입니다. 유럽버전과는 달리 15분에 달하는 장면이 삭제된 <일렉트릭 미스트>는 미국에선 개봉도 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한 아픔이 있습니다. 더구나 연말을 맞은 극장가는 제임스 카메론의 대작 <아바타>를 비롯해 <전우치> <셜록 홈즈>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등 기대작이 즐비한 상황. 부디 건투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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