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또 한명의 불운한 도박사가 있습니다. 상상과 이야기의 능력으로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파르나서스 박사(크리스토퍼 플러머)는 한 여자와의 사랑을 위해 딸, 발렌티나(릴리 콜)의 영혼(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을 놓고 도박을 벌입니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사람들을 그 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파르나서스 박사는 딸의 16번째 생일까지 5명의 영혼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여자와의 사랑을 가능케 해준 악마, 미스터 닉(톰 웨이츠)에게 딸을 빼앗겨야 하지요.
하지만 수 천년을 살아온 현자로서 승리를 장담하던 파르나서스 박사도, 상상과 이야기의 힘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 희망을 잃어가는 중입니다. 그의 초라한 유랑극단, 상상극장은 도시의 어귀를 전전할 따름이고요. 이 때,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토니(히스 레저)가 등장합니다. 상상극장에 활기를 몰고 오는 이 남자의 정체는 그 기억만큼이나 모호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지요. 상상극장의 운명, 그리고 파르나서스 박사와 그의 딸의 운명은 토니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입니다.
테리 길리엄을 아시나요? 이제는 다소 낯설어진 그에게도 한 때, 지금의 제임스 카메론이 부럽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더왕 전설을 요절복통 코미디로 풀어낸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정보화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브라질>(1985, 국내에는 <여인의 음모>라는 이상야릇한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된바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대한 기묘한 우화 <피셔 킹>(1991) 등등, 테리 길리엄의 영화는 독창적인 시각 스타일과 세계관, 그리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괴상한 유머감각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미국으로 입성하던 1991년 그의 위상이란 팀 버튼이나 리들리 스콧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수준이었으니 할리우드의 블루칩이란 바로 그를 지칭하는 말이었죠.
하지만 그의 독특한 미적 감각은 할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와는 분명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과보다는 우연, 설명보다는 상징에 의존하는 그의 영화적 감각은 개봉규모와 친절한 설정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작금의 할리우드 시스템과는 그야말로 상극이라 부를 만한 특별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그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상업적인 도박의 면모 역시 증가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의 이력에서 드러나는 몇몇의 거대한 상업적 성공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대중영화의 다채로운 구성요소들과 긍정적 화학작용을 일으킨 경우에 한정됐습니다. 한 마디로 우연히 벌어진 행운이었던 것입니다. 이건 그의 작가로서의 위상을 말함이 아닙니다. 대중영화, 블록버스터 감독으로서의 그의 적합성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테리 길리엄은 흥미롭지만 괴팍하고, 의미심장하지만 뜬금없는 작가입니다. 영화광 사이에서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 <바론의 대모험>(1989)과 <브라질>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의 재능이 지극히 순방향으로 작용했지만 관객의 수용도는 매우 낮았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알록달록한 비주얼과 듬성듬성한 이야기는 잠시간 전위적인 예술영화로 보일 정도로 기묘한 도상과 파편화된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더군다나 영화의 제작 중에 주연 히스 레저가 죽음으로서 테리 길리엄은 영화의 구조를 새로 짜야했습니다. 감독의 독특한 정체성에 더해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제작과정을 거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그 화려한 캐스팅과 시각효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비대중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아웃사이더 예술가 테리 길리엄이, 위태로운 상태에 빠져있던 히스 레저를 만나, 마케팅 소재라면 누군가의 죽음이라도 반색하는 할리우드에서, 우연한 사건들을 겪으며 만들어낸 의외의 결과물입니다.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으로 도박에 나서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운명이 새삼스레 테리 길리엄 감독의 운명과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지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는 영화만들기에 대한 감독의 고통과 이미지와 상상의 세계, 즉 영화를 향한 무한한 애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주연 배우의 불행한 죽음을 딛고 일어선 영화의 운명을 떠올린다면 과연 테리 길리엄 감독의 도박이야말로 성공한 것입니다. 비록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감상이야 괴상함과 독특함의 어느 중간쯤을 헤맬지라도 말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운명이란 잔인한 것이다. 히스 레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던 이유는 단지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안타까움이 아닌,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배우의 무한한 재능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한 순간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크린에 자신의 연기를 새겨 넣는 배우들에게 육신의 죽음이 곧 연기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히스 레저 또한 아직은 세상과 작별을 고할 때가 아니라며 세상을 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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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사극장.. 꼭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2009/12/23 11:04이 글을 읽고나니 묘하게 더 강하게 끌리네요..-_-a
에구궁^^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원래 좋아하던 감독이었는데...최근엔 좀 실망스러운 느낌을 없지 않아 받아 왔습니다...
2009/12/24 02:05그래서 이번엔 좀 고민 중이었는데...이글 읽고 보기로 맘 잡았습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