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비보이팀 맥시멈 크루가 출연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라고 했다. 비보이들이 직접 연기를 한 대. 실감나는 비보잉 장면이 펼쳐지는, 뭔가 쿨한 춤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청탁 받은 감독 인터뷰를 위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른 기대로 감상한 <올웨이스 비보이>는 당혹스러웠다.
이거 뭐야. 비보이 영화 맞어? 춤추는 장면은 거의 없고(그나마 있는 장면에서도 현란한 비보잉을 구경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전문 배우가 아니라 해도 비보이들의 연기는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어설펐다. 게다가 암만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해도 화면이 너무 빛바랜데다 거칠었다. 플라톤이며 소크라테스를 논하는 것은 또 어떻고. 참으로 기묘한 영화. 비보이들을 데리고 실험영화를 만든 사람이 무척 궁금해졌다.
권우탁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화판에 발 한번 담근 적 없고 단편영화 하나 만들어 본 적 없는, 연극을 전공한 후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대본을 쓰던 사람이었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그런 그가 처음 만든 장편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고 랩 배틀에 출전했을 정도로 ‘한 힙합’ 하던 그는 6년 전 부모의 나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보잉 수업을 듣다가 맥시멈 크루 멤버들을 만났다. 그는 한국 비보잉이 세계적인 수준을 지니고 있음에도 비보이들이 돈 한 푼 못 받고 대형 의류업체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춤이 좋아 춤을 추지만 춤만 추는 게 다는 아니잖아. 그래서 플라톤이니 소크라테스 같은 책을 쥐어주며 읽고, 생각하고, 틀을 깨라고 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비보잉 없는 비보이 영화다. 춤보다 철학을 강조하고, 몸보다 머리를 잘 쓰라고 말하는 독특한 비보이 영화. 영화를 만들어본 적 없는 감독과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배우들이 오로지 뚝심으로 게리라처럼 만든 독립영화다. 비보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카메라 앞에 섰다. 관객의 재미를 위해 매끈하고 유쾌할 필요는 없었다. 감독은 소년들이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발전하길 바랐다. 누구도 아닌 비보이들을 위한 영화이길 원했다.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제작비를 마련했고, 인터넷 사이트에 공고를 내 아마추어 스탭을 모집했다. 심지어 영화는 무려 4년 전에 촬영을 마쳤다. 왜 이제야 개봉 하는고 하니, 제작비가 모자라 3년 동안 감독 혼자 후반작업을 했기 때문이란다. 지식과 기술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책만 보고 편집과 사운드 믹싱을 했다.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아무리 독립영화, 독립영화 해도 이렇게 투철한 독립정신으로 만든 독립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권우탁 감독이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거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후 북한에 납치되어 영영 가족의 곁을 떠난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한국인의 얼굴을 한 미국인인 그에게 부모의 나라, 분단의 나라인 대한민국은 어렸을 때부터 아련하게 가슴 한편을 시리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유분방한 비보잉을 남한으로, 전통적이고 규칙적인 발레를 북한으로 놓고 비보이와 발레리나가 함께 있는 모습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판문점 세트에서 이뤄진 비보이와 발레리나의 춤은 기묘하게 구슬프다.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플래닛 비보이>를 본 사람이라면 판문점 세트에서의 비보잉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또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꽤 유명한 공연이 떠오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플래닛 비보이>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보다 훨씬 먼저 기획되고 촬영을 마친 영화지만, 가장 늦게 공개됐기 때문에 ‘따라쟁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힘들다. 권우탁 감독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와는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들어 이제 넌더리가 난 상태고, ‘<플래닛 비보이>의 판문점 비보잉 장면을 따라했다’는 누명에 분개했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투박하게 빚어낸 진심이 애틋하게 발하는 영화다. 비보이들의 역동적인 몸짓을 멋지게 보여주지도, 비보이의 숨겨진 애환으로 감동을 자아내지도 않는 이상한 비보이 영화. 첨단의 첨단을 달리는 액션 블록버스터와 아리따운 스타들이 즐비한 연말 극장가에서 시대를 역행한 듯 서툴고 이질적인 만듦새로 색다른 영화보기를 선사할 가장 독립적인 독립영화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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