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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괴물’ 헐크(슈렉 아님)가 돌아왔다. 1편과 인연을 끊기 위해 ‘믿을 수 없는’(인크레더블)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이고 말이다.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된 브루스 배너(에드워드 노튼)는 분노하면 신축성 좋은 바지만 남기고 모든 걸 찢어버리는 괴력의 헐크로 변한다. 헐크를 인간병기로 사용하고자 하는 썬더볼트 장군(윌리암 허트)은 베테랑 군인 에밀 브론스키(팀 로스)와 함께 브루스를 쫓는다. 브루스는 그의 여자친구 베티 로스(리브 타일러)와 함께 도망치던 도중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처절한 싸움터로 나간다.

다소 뜬금 없는 얘기지만 <인크레더블 헐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최근 한국 상황이 떠오른다. 첫 번째 공통점은 ‘분노’다. 브루스는 감마선에 노출된 이후, 심장박동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헐크로 변한다.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 조속한 한미FTA 비준을 위해 강행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은 국민들에게 불안과 동시에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국민에게 감마선의 역할을 한 셈이다.

영화 속 미국과 한국의 모습은 여러모로 닮아있다. 목표를 위해 수많은 가치들을 포기한다는 것. 미국은 우월한 비밀병기를 만들어 세계를 제압하고자 한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자본의 영원한 친구, ‘힘’ 뿐이다. 썬더볼트 장군으로 상징되는 미국은 그의 몸을 치료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력을 뽑아내기 위해 헐크를 쫓는다. 거기에 생명과 인권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에서 자본 이외의 가치는 모두 그 빛을 잃는다. 수입 장벽을 없애, 살아남는 자들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사서삼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영어 몰입교육, 공기업 민영화 등 ‘경쟁’이란 말이 이젠 지긋지긋하다.)

헐크를 쫓는 미군과 촛불문화제를 대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처음 브루스를 잡기 위해 투입된 것은 소총으로 무장한 미 정예부대. 하지만 총알은 헐크의 강한 피부를 뚫지 못하고, 병기의 수위가 대포, 탱크, 헬기 등으로 차차 높아진다. 병기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무고한 시민이다. 대학 캠퍼스와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병기가 사용되면 시민이 피해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지금 한국정부도 마찬가지다. 촛불문화제가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도 국민들과 대화 한 번 하고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고 한승수 총리가 대학생들과 토론을 했지만 거기에 진심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귀를 막고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소화기와 물대포를 쓴다.

최근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시민 내부의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시위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와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그리고 10일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바로 옆에서 보수단체 5만 명이 참가하는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서로 충돌하고, 무의미한 감정의 소요만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예방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결과가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를 빌미로 양측 모두를 허용했다면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보수적 성향의) 종교계 원로들을 만나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보수 세력을 모아 자신을 도와달라는 일종의 ‘호출’이다. 영화 속에서 썬더볼트 장군이 에밀 브론스키를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모습과 유사하다. 에밀 브론스키는 파괴본능의 ‘어보미네이션’이 된다.

6월 10일, 100만 명의 헐크가 전국에서 변신 준비를 하고 있다. 100만 명의 헐크들은 미국산 헐크보다 덩치가 작고, 힘도 약하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은 영웅이 아닌 국민, 혹은 시민이다. 주권국가의 국민으로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을 노래하는 수많은 이들이 2008년 뜨거운 여름날의 주인공이다. 이야말로 ‘인크레더블’ 한 귀환이다. 21년 만에 귀환한 헐크들의 길이 싸움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효원 기자(FILMON)

덧붙이는 말. ‘한국산 헐크’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수많은 작품들이 짜깁기 된 ‘변종 영화’라고 판단한다. 추후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를 하겠다.

2008/06/03 - [딴소리] -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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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촌총각 2008/06/1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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