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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더 큰 비극이란 게 있을까? 과거 어느 누군가와의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무자비한 죽음 하나만 되돌아보더라도 죽음 그 이상의 비극이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허나, 착각이다. 불행하게도 죽음 그 이상의 비극이란 무수하다. 그야말로 비일비재한 것.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것이 아무리 법정최고형으로 명시되어 있다한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던가. 굳이 자살률 1위라는 영예로운 이 땅에서만의 이야기로 한정지을 것도 없다. 대체로 비극이란 죽음보다는 삶 속에 만연해 있다. 떠난 자보다는 남겨진 자에게, 죽음이 끝내주기 전까지 죽 감내해야 하는 살아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남겨진 비극이란 어쩌면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비극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장황하게 늘어놨지만,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얘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어쩌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또 다시 비틀어 장르 그 이상을 목표해야 하는 것이 장르영화의 아이러니한 속성이자 숙명이라면 작정하고 드러낸 작위적 설정은 그야말로 독 중의 독이 된다. 토막 살해당한 여자의 시체, 즉 죽음으로 막을 올린 스릴러 <용서는 없다>는 한마디로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진리를 작위성이라는 맹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스스로를 옭아맨 영화다.


우선 영화는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처럼 딸의 유괴를 접한 부모가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어느 범죄자의 무죄 방면을 도와야 한다는 흡사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븐 데이즈>가 “내가 왜 변호사 딸을 유괴했을까요?”라는 유괴범의 대사만으로 충분히 대변되는 영화라면 <용서는 없다>는 변호사 대신 부검의라는 직업으로 새로이 빈칸을 채운다. 이윽고 <용서는 없다> 역시 질문을 던진다. 왜 검시관 딸을 유괴했을까요?

<세븐 데이즈>가 내러티브상의 합당한 구조 안에 변호사를 끌어들이고 또 활용하고 있다면, <용서는 없다>는 애초부터 죽음 그 이상의 비극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부검의를 동원했다는 혐의가 짙다.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의 복수가 15년간 오대수(최민식)를 감금한 게 아니라 15년 후 오대수를 풀어준 데에 있었다면, <용서는 없다>의 살인마 이성호(류승범), 아니 김형준 감독은 마치 이 끔찍한 비극의 몽타주를 그린 후 검시관 강민호(설경구)를 던져놓는 데에 온통 승부수를 던진 듯하다. 잃어버린 것 이상을 되돌려 주는 것, 그것도 받은 방식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 죽음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비극. 복수라는 이름하에 부검의에게 가할 수 있는 최상의 복수에 대한 그의 고민은 그만큼 극진하다. 덕분에 그 결과 또한 정말로 지독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소한의 핍진성마저 망각해야만 했는지 역시도 그만큼 큰 의문으로 남는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결말과 관련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언급됩니다. 

영화는 발붙이고 있는 지금 우리네 현실에 꽤나 밀착한 모습을 띤다. 토막 살인을 벌이고 또 다시 부검의 강민호의 딸을 유괴한 뒤 여유로이 취조실에 앉아 제2의 살인을 도모하는 이성호는 극중 환경운동가로 등장해 명백히 현 4대강 개발정책을 향해 이를 드러낸 듯한 자세를 취한다. 또한 몇 년 전 실제 군산에서 있었던 어느 사건은 영화의 단순 모티브에 그치지 않고 영화 내 복수와 비극에 단단히 엉겨 붙으며 그 울분을 소급하는 데 최대 목표를 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군분투했건만 이미 시체가 된 딸의 잘린 머리를 붙들고 오열하는 결말부 강민호의 모습은 비통한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위적 비극마저 불사하겠다는 영화의 얄팍한 신념을 그대로 보여줄 따름이다. 이 비극을 위해 극중 대한민국 최고 부검의라 명명되는 강민호는 토막 살인난 시체의 머리와 몸통이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란 사실조차 깨닫지 못해야만 한다. 그래야 “선홍빛 유두, 적당한 음모” 등 양식 있는 교수님에게는 좀 과하다 싶은 대사를 날리며 이내 시체를 완전히 물화한 뒤 자르고 여미며 또 최후에는 어느 누군가의 정액까지 부러 우겨넣었던 그것이 알고 보니 딸의 시체였다는 이 비극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방법이야 어찌됐든 이성호의 복수는 사실 충분히 납득가능하다. 그 자신의 비극과 복수에의 일념을 정직하게 연설하는 것마저 감싸안아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자극적인 결말, 좀 더 극대화된 비극을 위해 애써 눈감아야 했던 설정들은 너무나 안이하기 짝이 없다(딸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차를 몰고 달려간 곳이건만 어느새 이성호는 그 집 마당에서 한가로이 휘파람을 불고 있는 불가사의한 광경은 아예 논외로 하자).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는 어느 노회한 형사로 하여금 15년간이나 과거를 숨기고 살아온 두 연인을 뒤쫓게 하기 위해 아들의 황망한 죽음을 선사하는 악수를 뒀다. 또 <시크릿>은 내 아내가 범인일지 모른다는 영화의 대전제를 긍정하기 위해 하고 많은 곳 중에 하필이면 형사인 남편의 관할 내 그것도 담당사건으로 배정한 것도 모자라 조폭과 마약과 살인이 횡행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사건 모두를 이들 부부의 소관으로 이양한다. 이들 두 영화와 <용서는 없다>의 공통점은 바로 보다 강도 높은 비극을 완성하기 위해 때때로 상식선 이하의 설정을 근간으로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단한 반전을 앞세우기 위한 치장치고는 이 빠진 칼마냥 무딘데다 끊임없이 덜컹대니 그 대단한 비극을 맛보기 위해 스릴러의 장르적 묘미마저 부분 포기해야 했던 성긴 구성은 끝내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용서는 없다>가 보여주고자 하는 비극의 강도는 워낙에 대단하고 여기에 건 무게 또한 엄청난지라 아귀가 맞던 말든 영화는 그저 가슴 먹먹하게 만들거나 눈물 흘릴 자리를 만들기 위한 그리스 비극을 목표한 듯 보일 정도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단순한 연출 전략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에 비해 굉장히 긴 호흡으로 가져간 장면들은 이성호의 막무가내식 요구와 강민호의 부응에 잦은 흠결을 낸다. 또 설경구와 류승범의 연기 앙상블은 꽤 탁월하지만 그에 비해 조력자로 등장하는 여형사 민서영 역의 한혜진은 다른 시골 형사와는 완벽히 차별화되는 외모로 두각을 나타내는 동시에 시종일관 뉴스데스크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화법을 구사하며 몰입을 방해한다. <용서는 없다>는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마따나 온통 비극적 결말에 초점을 드리우고 가공할 비극을 목표하며 여기서부터 싹을 틔운 영화로 그 반작용은 물론이거니와 미처 돌보지 못한 크고 작은 흠집 또한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한국산 스릴러들이 이 ‘가슴 먹먹함’이나 ‘비통함’ ‘눈물’ 같은 코드에 직접적으로 눈을 돌리면서 그동안 활황세를 띠던 한국 스릴러의 위상도 다시금 주춤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들 영화들이 몸을 아끼지 않아가며 주지했다시피 그 코드들은 처음부터 궁극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었다. 어렵사리 완성한 스릴러가 끔찍한 비극의 그림만을 상정한 탓에 결국 앞뒤도 맞지 않는 장대한 미로를 헤매고 만다면 남는 건 공허함뿐 그 비극조차 허상에 불과하다. 자극적인 잔인함, 자극적인 비극 모두 마땅한 근거가 필요한 건 매한가지다. <용서는 없다>는 정교한 연출에 관한 아쉬움 또한 지적받아야겠지만 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했다. ‘최루’와 ‘스릴러’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도 없으니 말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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