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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의 소설들은 영화화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너무 단호한가요?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세상에 모든 작가들을 영화화에 적합한 소설을 쓰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눈다면, 코맥 맥카시는 분명 후자 사이에 낄 것입니다.

코맥 매카시는 대체로 비관적인 시선을 견지합니다. 그 비관적인 시선은 다소 모호한 세계관에 근거를 두고 있고요. 요약하자면 그의 작품들은 모호한 비관주의가 충만합니다. 이건 감각적인 경험으로 재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무엇’이에요. 코맥 매카시는 유능한 문학가인 만큼 정련된 언어로 이 ‘모호한 비관주의’를 형상화하거나 전달하겠죠. 하지만 여타의 사람들이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걸 또 다시 다른 요소와 형식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한 작업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롭고도 난감한 작업이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얼핏 간단해 보일 수도 있어요. 코맥 매카시는 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작가이고, 그의 묘사에서 드러나는 시각적인 요소들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얼렁뚱땅 영화 한 편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겠죠. 하지만 시각적인 요소만 존재하는 코맥 매카시의 작품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무의식의 저편을 넘나드는 고졸한 운율이나 세상의 어둠을 직시하는 우울한 통찰이 부재한다면 코맥 매카시의 시각적인 현란함도 그저 무상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코맥 매카시의 소설 중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큼 영화화에 적합한 작품이 없었던 것입니다. 안톤 쉬거의 살해 행각을 추적하는 늙은 보안관 벨의 시선은 바로 코맥 매카시의 그것이기도 합니다. 벨은 세상의 어둠을 증언하면서 안톤 쉬거로 대표되는 광기와 절망을 따라다니는데, 덕분에 영화는 코맥 매카시의 시적인 분위기를 구현하는 동시에 팽팽한 긴박감으로 충만했어요. 액션이 있고 추적이 있어서 영화로 각색하기가 수월했을 겁니다(코엔 형제는 인터뷰에서 소설의 추격장면들을 있는 그대로 옮겼기에 작업이 수월했다고 하더군요). 코맥 매카시의 작품들 중에서는 매우 드문 요소들이죠(물론 코엔 형제의 연출력도 탁월했지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더 로드>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같은 느낌을 기대하시다가는 다소 곤란한 감상에 빠지실 겁니다. <더 로드>의 원작 <로드>는 무척이나 코맥 매카시다운 작품이에요. 세상은 절망으로 치닫는 중이고 인간은 그곳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죠. 아들과 함께 남쪽을 향하는 주인공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에게 허락된 것이라곤 그저 세상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만한 통찰이나 용기 정도가 전부입니다. 당장의 굶주림도 면할 수 없는 취약한 상태죠.

때문에 <더 로드>에서 영화적인 긴박감이나 강렬한 클라이막스를 기대해선 안 됩니다. 남자와 아들은 지독하게 황폐화된 미래의 어딘가를 처량하게 떠돕니다. 중간 중간 충격적인 사건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아요. 그저 살벌한 미래의 무시무시한 풍경일 따름이죠. 대신에 코맥 매카시 특유의 시학이나 절망의 운율이 느껴질 수는 있어요. 코맥 매카시의 의도 역시 그러한 것들에 있었고, 영화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는 잘 맞아 떨어집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

코맥 매카시는 미국 평단에서 필립 로스, 토마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 문학의 4대 작가’로 꼽히는 작가입니다. 할리우드도 그의 작품들을 주목하고 있지요. 개봉을 앞둔 영화만도 2편입니다(2011년에는 <핏빛 자오선>이, 2012년에는 <평원의 도시들>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의 팬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더 로드>의 개봉에 발맞춰 여기 국내 출간된 코맥 매카시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꼭 한 번 읽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핏빛 자오선> Blood Meridian or the Evening Redness in the West, 1985 | 2008년 11월, 민음사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고딕풍 소설을 쓰던 매카시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인간 본성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한편, 이후 그의 작품 기저에 흐르는 묵시록적 세계관을 구축한다. 소설은 1846년 미국 멕시코 전쟁이 끝난 뒤 벌어졌던 미군의 무차별 학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열네 살의 이름 없는 소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이런 지옥 같은 세계 속에서 30여 년간 인간 내면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목도한다. 매카시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 서부 개척의 신화가 결국 살인과 폭력이 난무한 광기의 역사였음을 증명한다. 특히 한줄기 희망을 상징하던 주인공을 무참히 죽도록 방치하면서, 무차별적인 죽음과 악이 세상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어휘에 대한 실험과 미학적 문체로 매카시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모두 다 예쁜 말들>
All The Pretty Horses, 1992 | 2008년 8월,  민음사

미국 텍사스, 멕시코의 접경지역에 사는 카우보이 소년 존 그래디 콜의 파란만장한 삶과 성장을 따라나선다. 존은 불우하다. 부모는 이혼했으며 의지하던 할아버지도 죽었다. 목장은 그가 유일하게 정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자 죽고 흩어진 가족을 대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존은 카우보이 생활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목장을 팔려는 생각뿐이다. 어머니와 갈등하던 그는 카우보이가 되기 위해, 자아를 찾기 위해 멕시코로 떠난다. 우연히 들른 멕시코의 목장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거나 아리따운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등 뜻밖의 행운이 깃들기도 하지만 이내 ‘인간과 자연의 무자비함’,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매카시는 점점 황폐해지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고통스런 성장을 보여준다. 전작들에 비해 한층 쉬워진 문체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출간 초 6개월 동안 20만 부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국경을 넘어> The Crossing, 1994 | 2009년 9월, 민음사

전작 <모두 다 예쁜 말들>과 마찬가지로 10대 카우보이 소년이 주인공이다. 아버지와 함께 늑대를 사로잡은 빌리 퍼햄은 늑대를 죽이는 대신 멕시코로 데려가 풀어주려고 한다. 코맥 매카시의 작품 속 여행은 죽음이나 비극적 변화를 동반한다.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곁엔 늑대도, 부모도 남아 있지 않다. 살아남은 사람은 남동생 보이드가 유일. 우연히 만난 멕시코 소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잠시간 희망이 샘솟기도 하지만 곧 불행과 무자비한 섭리가 깃든다. 소설의 마지막, 빌리는 간절한 눈빛과 신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개를 차갑게 외면한다. 피하고 싶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런 성장이 담겨있다.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초판 20만 부를 한 달 만에 팔아 치운 베스트셀러다.




<평원의 도시들>
Cities of the Plain, 1998 | 2009년 9월, 민음사

<평원의 도시들>은 1편의 주인공 존 그래디 콜이 다시 등장해 새로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한편 2편의 주인공 빌리 퍼햄은 존의 친구이자 관찰자로 나서 모든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각각 20세, 28세의 청년으로 성장한 이들은 국경 근처 작은 목장에서 함께 일한다. 땅과 말, 야생과 함께하는 이들의 삶에서 잠시간 행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멕시코의 창녀촌을 드나들며 간편하게 욕망을 해결하던 존이 어리고 연약한 창녀, 막달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불행이 찾아든다. 막달레나를 사랑하고 동시에 구속하는 포주 에두아르도가 이 커플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존과 도피를 약속한 막달레나는 에두아르도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분노한 존은 복수에 나선다. 매카시는 서로 사랑하는 두 연인과 관련 인물들을 모두 파멸시킴으로써 우연한 만남과 사건들이 빚어낸 무차별적인 비극을 다시 한 번 펼쳐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5 | 2008년 2월, 사피엔스21

1980년대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지역. 우연히 마약 거래 사건에 휘말린 모스와 미치광이 살인마 쉬거, 그리고 지역 보안관 벨을 중심으로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과 절망적인 세계관을 버무린 작품이다. ‘국경 3부작’ 이후 간략하고 쉬운 문체를 추구하던 매카시는 모스와 쉬거의 쫓고 쫓기는 장면들을 연속하면서 설명을 배제한 묘사로 일관한다. ‘그리고’나 ‘하고’를 연속으로 사용하는 문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극의 전개를 건조하게 전달하지만 기묘하게도 시적인 리듬감이 충만하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내용 전체가 문명, 그리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절망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늙고 지친 보안관 벨은 이 모든 것을 전달하는 시인일 것이며, 실체가 잡히지 않는 살인마 쉬거는 이 불행한 서사시의 두운이자 요운이며 각운일 것이다.
 
<로드> The Road, 2006 | 2008년 6월, 문학동네

미국의 과거를 순례하며 자신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피력하던 매카시가 미래의 이야기에 도전한 작품. 문명은 사라지고 모든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지구가 소설의 배경이다. 주인공은 남쪽을 향해 ‘불을 운반하는’ 아버지와 아들. 극단적인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그들은 자살을 위해 두 발의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보관하고 있다. 춥고 굶주린 여행이, 어둡고 두려운 밤이 계속된다. 매일 피를 토하는 남자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한편, 천진하고 이타적인 아들의 미래를 염려한다. 인육을 노리는 인간 사냥꾼들과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참혹한 광경이 만연한 가운데, 과연 남자와 아들(더구나 이타적인 아들)의 생존은 요원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절망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로드>는 지금까지의 매카시 작품과는 다소 다른 결말을 취한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동기가 됐던 매카시의 어린 아들이 그의 작품 세계를 다소 변화시킨 원인으로 보인다. 덕분인지 <로드>는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내에서만 18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현한 덕분인가?).
 
매카시의 연극 작품
 
매카시는 켄터키 루이스빌에 사는 중산층 흑인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스톤메이슨 The Stonemason>(1995)을 만들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작품에 대해선 “언어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극의 사건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에 매카시는 그의 두 번째 연극 작품 <선셋 리미티드 The Sunset Limited>(2006)를 제작하는 동시에 ‘드라마 형식의 소설’이라는 부제를 붙여 책으로 출간한다. 이 작품에서는 백인 캐릭터 ‘화이트’와 흑인 캐릭터 ‘블랙’이 등장해 그의 작품에 항상 드러나는 인간의 고통과 신의 존재 그리고 자살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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