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생을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한다. 만약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누구나의 이 길고도 짧은 연극 한 편은 그저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희비극으로 족했을 게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생이란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 죽 부조리극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재능 있는 극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연출 데뷔작 <시네도키, 뉴욕>은 ‘인생은 연극’이란 이 흔한 상투구에서 진중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다. ‘시네도키(제유법, synecdoche)’라는 제목이 천명하듯 인생을 연극과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이 거대한 연극을 인생 그 자체로 수렴하는 연극연출가 케이든(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삶과 연극은 단순히 비극이나 희극으로 재단할 수 없는 기묘한 일대기, 모호한 순환구조를 그린다. 죽음을 눈앞에 둔 완전한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삶과 세계 전체를 연극으로 재구성하려는 케이든의 처절한 편집증은 차라리 도착에 가깝다. 하지만 찰리 카우프만은 케이든의 삶을 쉽게 단정 짓지도 또 단죄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저 연극이라는 이름의 인생이자 인생이라는 이름을 지닌 누구나의 부조리극이라는 듯 말이다.
초반부 케이든의 인생은 그가 연출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연극이 리얼리즘에 기반을 둘 때면 영화 또한 무기력한 그의 삶을 세밀하게 조명하며 그저 묵묵히 지켜볼 따름이다. ‘배관공’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모세혈관을 예로 들다 이내 피 얘기에 울음을 터뜨리는 딸과의 대화 장면만 봐도 그렇다. 배관공과 피, 그리고 울음으로 가는 이 도식이 일견 느닷없고 의미 없는 전개이긴 하나 그는 마치 이 역시도 분명한 현실의 편린이라 말하는 듯하다. 또 얼핏 평화로운 현실 같지만 갑자기 터진 파이프에 이마를 다치고 이때부터 꽉 막혀 있던 그의 삶이 폭파 일로를 내달리기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돋보기로밖에 볼 수 없는 미세화를 그리는 화가 아내는 딸을 데리고 독일로 떠나고, 자신의 연극뿐만 아니라 아내의 그림과 아내의 삶에도 시선을 두어야 했을 케이든은 떠난 아내와 딸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마의 외상은 어느새 아내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한 병든 동공에 이르고 또 뇌에 다다른다. 그리고 거대한 세트 위에 인생 그 자체를 모사함으로써 자신의 생조차 연출가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그의 야망은 차츰 갖가지 엉뚱한 질병이 되어 온몸을 망가뜨리며 하나둘 새로운 우화를 그려 나간다.
<시네도키, 뉴욕>은 의식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부터 부조리극이 되어버리는 누구나의 인생처럼 케이든의 삶 역시 순식간에 부조리극으로 옮겨놓는다. 케이든의 연극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진실하게 담기 위해 그 무대를 계속해서 넓혀간다. 정해진 대사도 각본도 없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면밀히 이해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매일매일 사건사고처럼 제시되는 연출가의 메모에 따라 그날의 연기를 해낼 뿐이다. 이 연극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채 몇 년, 아니 몇 십 년에 걸쳐 연습에 연습만을 반복한다. 배우는 점차 늘어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배우를 대신할 또 다른 배우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예사다. 연극 밖에서 그를 모사할 배우와 그 배우를 또 다시 모사해야 하는 배우가 이중삼중의 연극을 반복하면서 케이든의 현실은 연극이 되고 연극은 곧 현실이 된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시작으로 <휴먼 네이처> <어댑테이션> <컨페션>과 <이터널 선샤인>에 이르는 찰리 카우프만의 작업은 연극세트가 증식을 거듭해 마침내는 하나의 도시에 맞먹을 크기를 이룬다는 어마어마한 농담을 진중히 구사하는 것처럼 언제나 엉뚱한 상상 위에 인생의 중요한 조각들을 의미 있는 순서로 늘어놓는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연극을 토대로 명백한 은유들을 반복하며 구축한 그의 영화는 극중 케이든의 연극만큼이나 모두의 인생을 쓸어안으려는 야욕에 불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평범한 삶, 나약한 속내, 그리고 그것을 압축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특별한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인간이라는 우주를 파헤치는 무수한 방법 중 유독 그의 이야기가 눈에 띄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명백한 은유들로 세운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는 신묘한 상상 위에 자리 잡은 케이든의 뉴욕처럼 끊임없이 증식하고 끊임없이 성장중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필름 온 찰리 카우프만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 1990
보다 나은 삶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곧 타인의 삶을 욕망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실존 유명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삶을 체험하고 또 정복하려는 인형사 크레이그(존 쿠삭)가 레스터 회사 7.5층에서 배우 존 말코비치의 뇌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곧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와 비틀린 욕망을 동시에 향한다. 영화는 각종 시상식의 41개상을 휩쓸며 무서운 신예 찰리 카우프만의 등장을 알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휴먼 네이처> Human Nature, 2001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의 첫 번째 만남. 호르몬 이상으로 온몸에 털이 나는 여자가 문명세계에 염증을 느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잠적한다. 이후 짝을 구하기 위해 다시금 속세에 돌아온 그가 선택한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 야만성을 혐오하는 남자. 공드리는 야만과 문명이 충돌하는 세계를 유쾌한 상상력으로 극대화하며 찰리 카우프만 각본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명콤비로서 장편 데뷔를 멋들어지게 치른다.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의 그 두 번째 작업. 찰리 카우프만은 모든 각색가의 고민이자 그 자신이 당면한 고민을 아예 온전한 영화로 구축해냈다.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는 하루아침에 할리우드의 총아로 떠오른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 역이 되어 도저히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야 될지 모를 <난초도둑>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시종일관 끙끙댄다. 쌍둥이 동생을 내세워 분열증적 면모까지 은유하는 이 작품은 가히 고민을 위한 고민의 영화적 승화라 일컬을 만하다.
<컨페션> 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 2003
1984년에 출간된 척 배리스의 자서전인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토대로 한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 낮엔 방송국 PD, 밤엔 CIA 요원으로 활동했노라는 어느 방송국 프로듀서의 고백은 쇼 비즈니스의 세계 뒤에 감춰진 은밀한 실상이자 어쩌면 극진한 농담일지 모른다. 각본을 맡은 찰리 카우프만은 원작의 진실 공방을 뒤로 하고 낮과 밤의 상반된 모습을 모두 아우르며 미국에 대한 풍자와 아이러니에 초점을 맞췄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미셸 공드리는 물론 찰리 카우프만의 이름을 세간에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 사랑했지만 이제 추억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히는 그 아픈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다면? 모든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꿈꿔봤을 이 가정에 찰리 카우프만은 또 다시 진중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연인으로 남는 법으로 영화가 건네는 해답은 무척이나 단순하지만 잃어버린 기억과 추억을 헤매며 또 한 번 ‘운명적으로’ 조우하는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 모험만큼이나 이를 풀어내는 찰리 카우프만의 방법은 정말로 기상천외하다.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 찰리 카우프만의 목표는 언제나 여기에 있다.
시네도키 뉴욕(Synecdoche, New York), US, 2009. 감독 : 찰리 카우프만 출연 :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캐서린 키너, 사만다 모튼, 미셸 윌리엄스, 새디 골드스타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도 상업영화 치고는 정말 큰 강적이었는데, 그보다 더 한 녀석을 만나버렸다. 천재 각본가(로 알려진) 찰리 카우프만의 데뷔작 <시네도키 뉴욕> 제목만 쓰고 어떻게 시작해볼까라는 생각을 이틀째 하고 있다.; 우선 제목에 대한 간단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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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네이쳐는 미셸공드리 개인작업아니었나요?
2010/01/13 10:01각본만 쓰고 제작시에는 찰리 카우프만이 참여하지 않았던걸로 아는데;
잘 읽었습니다. 시네도키, 뉴욕을 더 보고싶어지게 만드는 글입니다.
2010/02/20 15:37상영중인 극장에 보도자료로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