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 돈 300달러를 들여 만든 짧은 영상으로 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얻어낸 감독의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우루과이의 무명 영화감독 페데리코 알바레즈는 지난달 3일 유튜브에 <패닉 어택(원제: Ataque de panico!)>이라는 4분48초짜리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외계 로봇과 비행체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인데, 뉴스를 전하는 듯한 현실적인 형식이나 액티브한 연출, 특수효과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약간의 행운도 따랐어요. 미국의 힙합 뮤지션 카니에 웨스트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영상을 연결시키며 조회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것입니다. 곧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알바레즈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그중에는 <스파이더맨>시리즈의 연출자이자, 제작사 고스트하우스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샘 레이미도 있었습니다. 알바레즈 감독은 샘 레이미가 제시한 3000만 달러로 장편 영화 버전의 <패닉 어택>을 만드는데 동의했습니다. 조만간 우리는 3000만 달러로 버전업된 <패닉 어택>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2011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성공담 역시 <패닉 어택> 못잖게 쫄깃쫄깃합니다. 단돈 만 5천불의 제작비로 완성된 이 페이크 다큐는(게다가 장편!) 1월 11일 현재까지 1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 중입니다. 감독 오렌 펠리의 개인적인 경험(스스로 움직인 상자였다고 합니다)에서 출발했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귀신의 집에 살기로 한 어느 커플의 일상을 파고듭니다. 제한된 공간을 비추는 한정된 카메라 구도는 폐쇄회로에 잡힌 듯한 영상으로 생경한 현실감을 엮어내지요. 참신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알 만한 사람들에겐 다소 진부한 것이기도 합니다.
1999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린 <블레어 윗치>는 순제작비 6만 달러를 들여 자그마치 2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할리우드는 이 기적적인 수익률에 종교적인 열광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이후 수많은 영화학도들은 이 작품이 전파한 아이디어를 마치 복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복하고 변이하고 활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좀 안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첫인상은 아류작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었던 겁니다(하지만 미리 예단하지는 마시길 이 영화의 지루한 초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으스스한 공포로 능숙하게 탈바꿈합니다).
저예산의 기적으로 말하자면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역시 빠질 수 없는 이름들입니다. <이블 데드>를 찍던 당시의 샘 레이미는 제작비 부족으로 배우들이 중도 이탈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급조한 상황과 캐릭터를 활용해 영화를 완성하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때문에 영화의 대부분은 주인공 브루스 캠벨의 원맨쇼가 됐습니다).
피터 잭슨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자린고비 연출자입니다. 그가 시도했던 ‘되는대로 특수효과’는 가히 ‘거칠 것 없이 영화 만들기’의 전범이라고 부를만합니다. 그의 출세작 <고무 인간의 최후>는 보란 듯이 휘두르는 스폰지 망치는 물론 무려 23번이나 죽어나가는 단역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자랑함으로서 그야말로 포복절도할 재미를 창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발칙한 아이디어는 분명 경제적인 면에서도 알찬 것이었습니다. 그의 위치를 순식간에 격상시킨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그의 몫이 된 데에는 피터 잭슨만의 경제학이 큰 역할을 담당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3부작을 동시에 촬영함으로써 제작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알뜰함에 매료된 제작자들은(할리우드를 주름잡고 있는 그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제작자들 말입니다) 다소 인지도가 떨어졌던 피터 잭슨에게 초대형 프로젝트 <반지의 제왕>을 덥석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산의 힘은 실로 막대한 것입니다. <쏘우> 시리즈나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를 살펴볼까요? 이 두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얼마나 가열한 행진을 벌이고 있는지 아실겁니다. 이렇다 할 스타 배역도 없는 이 들은 자그마치 일곱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속편을 예고하고 있어요. 그도 그럴 만도 하지요. 이 시리즈들은 시작부터 투자금의 곱절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던 작품들이니까요. 첫 편들이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하고 나자, 약점으로 지적되던 스타의 부재는 오히려 제작상의 강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개런티를 요구하는 스타가 없었던 만큼 후속편에 발걸음은 한결 상큼할 수 있었습니다. 부담이 적으니 다소간 흥행이 시원치 않더라도 문제될 것도 없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이 되는 방법이란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결국 이렇게나 물질적인 세상에서 영화라는 매체의(아니면 다른 분야라 할지라도) 총아가 될 수 있는 앗쌀한 지름길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를 찬탄케 하는 고매한 예술혼도 아니요. 세상의 비의를 꿰뚫는 비상한 통찰도 아니었습니다(이러한 현실에 우리는 과연 놀라야 하는 것일까요?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요?).
단돈 30만원으로는 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엄격한 물질 체계와 역시나 극복하기 힘든 권력지향의 영화예술론의 틈바구니 속에서, 맨손으로 일어나려는 신인 감독들의 성공여부는 역설적이게도, 그리고 너무나 간단하게도 얼마나 경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영화가 얼마나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팔려 나가는가?”같은 질문은 작금의 영화, 영화산업 어쩌면 영화예술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세계적인 감독이 되는 길은 바로 여러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피폐한 상황에 놓인 영화노동자들에게 다소간 예외적인 능력자들의 저비용을 근거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할지 모를 약삭빠른 제작자들의 잔머리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닉 어택>이나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자랑하는 저렴한 비용의 근거를 오인해선 안 됩니다. 이들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것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기획이 참신했던 탓이지 단지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노동, 그리고 낮은 임금의 덕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페데리코 알바레즈 감독이 이룩한 3000만 달러 신화의 뒤편에는 수십만 번의 마우스질(CG가 하늘에서 떨어졌을리는 없겠지요)에 대한 비용이 생략되었으리라는 혐의가 무척이나 짙다 해도 말입니다(역시나 만만한 것은 노동력이란 말입니까?).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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