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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재구성, <아스트로 보이> <플루토>

FEATURE ON 2010/01/13 08:27 Posted by 파란다이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인들의 만화 사랑은 각별하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을 타깃으로 한 만화잡지만도 300여종 이상에 총 판매부수는 연간 10억 부가 넘는 출판만화시장,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별함을 그대로 ‘아니메’란 단어로 정착시킨 파급력 모두는 이들의 너른 만화문화 저변에 근간한다. 이런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만화문화 뿌리로 데즈카 오사무를 가리키는 것에 주목한다면 그를 언급할 때마다 으레 따라붙는 ‘만화의 신’이란 수식어도 쉽게 납득할 만하다. 일례로 데즈카 오사무의 제1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철완 아톰>은 작품의 완성도 이전에 일본 만화문화의 초석을 다진 작품으로 단순히 걸작들로 쌓은 공로로 치하하기엔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그의 별칭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근거가 된다. 실제로 1951년 월간 <소년>에서 연재를 시작해 1963년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방영된 <철완 아톰>의 인기는 패전 후 일본에 분 새로운 바람으로 일컫기 충분한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일본 최초의 장편 TV 애니메이션이자 또 하나의 초국가적 대중문화인 아톰의 본질이다.


<아스트로 보이: 아톰의 귀환>, My name is ‘Astro’    


2009년 3D 애니메이션으로 귀환한 <아스트로 보이: 아톰의 귀환>(이하 <아스트로 보이>)은 할리우드 기술에 의해 재구성된 완연한 할리우드형 애니메이션으로 변신했다. 아들 토비(원작에서는 토비오)를 잃은 텐마 박사가 토비를 모태로 로봇 아스트로(아톰)를 창조한다는 아톰의 탄생만큼은 원작 <철완 아톰>의 탄생기를 따른다. 그러나 아스트로가 원래 세계에서 쫓겨나 새로운 세계에서의 모험과 만남을 통해 잠재된 힘을 갈고 닦은 후 다시금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로 돌아와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는 할리우드에 의해 수없이 재생산됐던 일반적인 영웅 입사식을 그대로 뒤쫓는다.

세계관 역시 원작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원작이 매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SF적 설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평범하고도 광범위한 미래형 도시를 지향했던 반면에 아스트로의 고향인 메트로시티는 키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에 등장하는 공중도시 자렘과 유사한 구조를 취한다(여담이지만, <총몽>은 <아바타>로 초대박을 일군 제임스 카메론의 차기작으로 내정되어 몇 년 내에 그 실체를 스크린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봇에 의해 모든 것이 충족된 메트로시티는 유토피아와 다름없는 곳. 그에 반해 지상세계는 메트로시티에서 내다버린 고철 로봇으로 가득하다. 공중도시에서는 실체조차 인식할 수 없는 지상세계의 존재, 그리고 저 하늘에 부유하는 메트로시티를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어딘가로 여기는 지상세계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나름의 문화를 꾸리며 아스트로가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두 개의 문화권을 분명히 구획화한다. 


지상세계로 떨어진 아스트로가 토비의 기억에서 벗어나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함으로써 메트로시티의 구세주가 되는 과정은 이 짧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명징한 줄기를 이룬다. 순수 천연 에너지인 블루 에너지와 그 반대 속성인 레드 에너지의 대비 또한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 짓는 새로운 상징. 원작에서는 로봇이라는 이유로 인간세계에서 차별 받으면서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도구가 되어야 했던 아톰이 오랜 시간 자신의 숙명을 감내했던 데에 반해 <아스트로 보이>는 가볍고도 뚜렷한 히어로물로써 영웅의 탄생에 집중한다. 덕분에 일반적인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색채는 짙어지고 원작 본래의 느낌은 감쇠했다. 하지만 영웅으로 나아가는 아톰의 일대기를 효과적으로 압축한 이 3D 기술의 성찬 또한 21세기 아톰을 즐기기 위한 새로운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토>, 21세기 소년의 서스펜스 아톰

미완성작으로는 최초로 데즈카 오사무 상을 수상했던 <몬스터>, 그리고 이 명작을 웃도는 또 하나의 걸작 <20세기 소년>으로 명실 공히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 그가 2003년 아톰의 작중 탄생일을 기점으로 막을 올린 <플루토>는 아톰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플루토의 에피소드 ‘지상최대의 로봇’을 특유의 미스터리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플루토>의 공간은 로봇이 인간과 동등한 위치를 획득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 미래 사회. 전쟁이 끝나고 오랜 평화가 계속되는 동안 한없이 인간에 가까우면서 동시에 대량학살무기도 될 수 있는 첨단과학의 정수인 7대로봇들과 로봇의 권리를 주창했던 학자들이 누군가에게 차례로 죽임을 당한다. 인간을 해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된 로봇,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 로봇이라 일컬어지는 7대로봇조차 간단히 파괴하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남겨야할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의문의 살인범은 살해 현장에 ‘명왕(Pluto)’을 상징하는 뿔 모양을 남기며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를 드리운다.

인간 본연의 욕망과 악마성에 대한 깊은 통찰, 전지구적인 스케일의 스토리를 다양한 인종과 계층을 적확하게 포착하는 작화능력으로 구현하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장점은 데즈카 오사무 원작의 <철완 아톰>을 <플루토>라는 새로운 색깔로 추출해내는 데 성공한다. 대규모의 전쟁이 로봇들로 하여금 증오와 살의, 슬픔과 허무라는 감정과 함께 연대감과 생명 의식, 이타주의를 주입하며 중층의 의미를 쌓아감으로써 원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특유의 서스펜스는 SF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과 로봇, 그 차이가 아닌 공통점으로부터 새로운 지점들을 속속 이끌어낸다. 보다 완벽에 가까운 프로그램에 다다른 로봇이 오히려 살인에 이르는 아이러니, 사악한 짓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인간에 비해 동족을 학살했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로봇 등 <플루토> 역시 로봇과 인간의 대치를 통해 데즈카 오사무가 아톰을 통해 말해왔던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있게 반문한다.

<플루토>는 ‘보라’와 ‘플루토’ 등 꽁꽁 감춘 음모와 비밀을 페르시아왕국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주장을 들어 전쟁을 벌인 트라키아합중국에 초점을 맞추며 명백히 현 세계정세를 은유하는 등 보다 현실에 밀착하는 면모를 과시한다. 덕분에 <플루토>는 우라사와 나오키에 의해 새롭게 재구성된 아톰일 뿐만 아니라 데즈카 오사무 세계의 온전한 현재화이기도 하다. 데즈카 오사무와 <철완 아톰>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현 일본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의 또 하나의 야심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아톰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까지 넘보는 완벽한 타임머신이다.


아톰의 역사는 계속된다

2003년 4월 7일 작중 아톰의 탄생일을 기점으로 눈 뜨도록 디자인된 아톰 시계와 각종 기념회, 그리고 두 번째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의 방영은 데즈카 오사무의 아들, 즉 만화의 신이 낳은 ‘신의 아들’ 아톰의 존재를 분명히 하는 것들이었다. 소년만화지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차별이라는 가혹한 주제로 벽을 두른 세계관 속에서 매번 멍청하리만큼 인간에게 봉사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만으로 정면 돌파해 온 로봇 아톰의 활약은 절대로 반세기 전의 산물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또 1980년, 2003년 두 번의 리메이크작으로 고전 아니메의 위상을 갱신했던 이력은 이를 공히 증명한다. 게다가 할리우드 3D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고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대가의 손에서 다시금 재생산된 아톰은 작중 시점 그대로 우리의 21세기에서도 여전히 비상중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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