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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이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는 나쁩니다. 여러 측면에서 그러한데,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웃기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입니다.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웃음거리로 활용하겠다는 자세 역시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접근이 모두 다큐멘터리일 필요는 없는 법. 상업영화로서 누군가의 성정체성을 소비하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영화로서의 방식’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그래봐야 입만 아프니까).

다만 그렇게, 성정체성을 활용해 관객을 웃길 생각이 있었다면 그 작업을 제대로 했어야죠. 이 영화는 간혹 웃기는데(내지는 웃기려고 하는데), 그나마도 대사를 주고받는 타이밍이나 편집리듬이 들쭉날쭉해서 관객은 필요한 지점에서 약 5초가량을 지체한 후에야 그것이 코미디였음을 깨닫게 되니, 이는 장르상으로도 거의 치명적인 수준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뜻밖에도 이나영입니다. 그녀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녀의 외모입니다. 이나영은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기에는 지나치게 여성스런 외모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는 간혹 과거로 돌아가 수술하기 이전의 주인공, 남자 손지현을 비춰줍니다. 그런데 이 수술이 있기 전, 남성의 몸을 가진 지현을 역시나 이나영이 연기합니다! 그것도 어색한 가발을 쓰고서 말이죠. 영화의 중반부에 들어선 불현듯 찾아온 아들을 만난 지현이 다시 남장을 하고서 남자 행세를 반복합니다. 이나영은 콧수염을 붙이고 가발을 쓴 채 어색한 남자 연기를 선보이는데, 이건 정말이지 중학교 학예회 수준입니다. 물론 이렇게 외모에 근거한 성별 판독법이 하나의 고정관념이자 차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장을 통해 성별을 오가는 영화라면 성정체성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 분장에 적합한 배우를 골랐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우습기는 합니다. 아니 오히려 웃지 않기가 힘듭니다. 3살짜리 아이들도 속지 않을 가소로운 분장에도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잘도 변죽을 올려대니까요.  특히 지현의 아들 희수는 분장전의 지현과 분장 후의 지현을 거의 연달아 보는데도 그 정체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습니다. 이게 코미디라면 나름 고도의 코미디이겠죠.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분장유머가 이나영의 외계형 미모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은 웃기지도 재밌지도 않은, 그냥 괴상한 광경입니다. 이나영의 머리는 그 크기가 어찌나 작은지 가발을 썼음에도 아들역의 김희수(11살)보다도 작아 보여 얼핏 보기에도 아빠도 남자도 아님을 확실시 합니다.

<트랜스아메리카>


그에 비해 역시나 아들을 만나는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 <트랜스아메리카>(2006)는 올바른 캐스팅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아 분장은 물론 목소리까지 변조하는 펠리시티 허프만의 연기력은 과연 배우란 직업이 또 하나의 기술직임을 시사합니다. 물론 그녀에게는 약간이나마 섭섭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남자 같은 여자(내지는 여자같은 남자)’란 일상적으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지나치게 비하되는 정체성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그러한 불의를 드러내지 않고서야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의 실체도, 이를 둘러싼 현실도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심히 겉도는 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 이나영의 완벽한 여성성, 내지는 어설픈 남자 분장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무중력의 상태로 밀어내는 데에는 나름대로 알찬 성취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 성취가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덕분에 영화는 젠더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본적인 힘을 상실합니다.


이미 결정된 영화의 자세는 곳곳에서 보수적인 의견으로 수렴됩니다. 일례로 지현과 연애관계를 형성하는 준서(김지석)가 그녀의 비밀을 고백 받는 순간을 들 수 있습니다. 지현이 준서에게 감춘 두 가지 비밀은 그녀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과 이전에 남자였다는 사실인데, 이를 고백 받은 준서의 반응이 희한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그녀가 남자였다는 사실에는 놀라움과 함께 분노를 표시합니다. 이 분노의 근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영화는 은연중에 성정체성의 변동이 다분히 다른 사람의 분노를 일으킬 만한 비밀임을 상정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마지막까지 지현의 아들, 유빈이가 아버지의 정체성을 모르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는 중에서도 이야기는 교묘하게 이어져서 유빈을 제외한 구성원들이 모종의 대안가족으로 뭉쳐지는 훈훈한 결말에 도달하지요. 하지만 이는 미성년을 판단의 주체에서 배제하는 무척이나 편파적인 설정일 뿐만 아니라 특정의 성적정체성이 다소간 비밀로 유지되어야 하는, 고로 떳떳치 못한 사실임을 내포하는 불공정하고 미숙한 시선입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결국 불공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처럼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영화 역시 그 존재 기반을 확보할 수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이 아닙니다. 역시나 트랜스젠더가 가족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수녀를 임신시키는 한편, 가족의 희망이랄 수 있는 새로운 세대를 죽음으로 모는 참으로 불편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성정체성의 다름에서 시작된 고통과 죽음의 연쇄가 새로운 탄생과 회복의 기회로 이어지는 영화적 표현력은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이 처한 삶의 조건들과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성찰하게 이끕니다. 그렇다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도대체 무슨 영화입니까. 예비한 장막으로 불편함을 가두고, 인간이 처한 삶의 조건들을 그저 코미디로 허비하는(그나마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이 영화를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물론 이나영, 김지석의 팬이라면 이 한가한 영화에 나름의 지지와 희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쁜 척하는 남장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이나영이나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를 연기하는 김지석이나 분명 평균 이상의 공을 들였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어정쩡한 작품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트랜스아메리카>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일견하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지만 나쁜 영화도 많고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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