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하고 도발적이며 때때로 퇴폐적이었지만 지독히도 고독했던 삶. 예부터 영화는 이러한 화가들의 삶을 사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생을 살며 그 비범한 삶 그대로를 작품에 투사했던 역사적인 그들의 역사적인 일생. 영화는 감히 그들의 일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겼던 것이다. <리틀 애쉬 : 달리가 사랑한 그림>을 통해 다시금 다가온 살바도르 달리처럼 그림으로 인류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들의 특별한 삶, 특별한 영화를 모아보았다.
<카라밧지오> Caravaggio, 1986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 1573~1610 | 이탈리아 | 대표작 <그리스도의 죽음> <나자로의 부활>
문제적인 연출가 데릭 저먼이 카라바조의 삶에 독창적인 설정과 실험적인 스타일을 더한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시간 구성과 함께 타자기 같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물건들을 버젓이 엮어놓는다. 죽음의 침상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늙은 카라바조의 시점으로 시작해 카라바조, 그리고 그의 모델이자 연인, 라누치오와 라누치오의 연인, 레나를 끈적거리는 삼각관계로 묶어버린다. 유주하 기자
<아르테미시아> Artemisia, 1997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1593~1651 | 이탈리아 | 대표작 <수산나와 두 노인> <호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강간스캔들에 휩싸였던 세계 최초의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리스키의 곡절 많은 인생을 담은 영화. 유명한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교육 속에서 화가로서의 재능을 키워가던 아르테미시아는 곧 오라치오의 후원자, 타시와 만나게 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을 사랑하던 연인으로 상정하고 오라치오가 타시를 딸의 강간범으로 몰았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더한다(역사는 아르테미시아가 타시를 자신을 강간한 혐의로 고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주하 기자
<렘브란트> Rembrandt, 1936
렘브란트 판 레인 | 1606~1669 | 네덜란드 | 대표작 <엠마오의 그리스도> <병자를 고치를 그리스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으나 그 작가혼만은 시들지 않았던 렘브란트의 말년을 그린 영화. 파산 상태에 처한 렘브란트는 유일하게 의지하던 하녀 헨드리지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나마도 신분차별이 존재하던 시대였으니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국 추방당한 두 연인의 삶에 쌉쌀하되 달콤한 행복이 깃들었다는 것이다. 촬영기사 조지 페리날이 구사한 ‘렘브란트 조명’이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 렘브란트 못잖게 빛의 통제가 뛰어났다. 유주하 기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 | 1632~1675 | 네덜란드 | 대표작 <우유 따르는 하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페르메이르를 그림의 피사체였던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화가로 재구성한 작품. 페르메이르의 역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중심으로 색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그림의 모델로 등장하는 하녀, 그리트 역의 스칼렛 요한슨이다. 순진해 보이는 동시에 농염한 그녀의 눈빛이 그림 한 장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은 아직까지 신원이 알려진바 없다. 유주하 기자
<고야의 유령> Goya's Ghosts, 2006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프란시스코 고야) | 1746~1828 | 스페인 | 대표작 <마야> 연작, 판화집 <카프리초스> 등
고야의 일생보다는 고야가 바라본 시대의 절망과 아픔에 초점을 드리운 영화. 18세기말 스페인 종교재판의 광풍 속에 스러져 간 개인의 가혹한 비극은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였던 관찰자 고야의 시선과 그의 작품들로 상징화·구체화된다. 영화는 카툰의 시초로 평가받는 판화집 <카프리초스>를 통해 당대 권력에 대한 풍자를, 프랑스 침공에 이은 전쟁의 참상은 <전쟁의 재난> 연작으로 그의 시선을 적극 시각화한다. 청력을 잃은 고야가 바라보고 그려낸 절망은 곧 시대의 고통에 대한 가장 명철한 통찰이다. 강상준 기자
<미인도> 2008
신윤복 | 1758~? | 조선 | 대표작 <미인도> <단오도> 등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이 실은 여자였다? 영화 <미인도>는 유교문화에 대한 혜원의 저항적 면모를 여자로 가정, 속화로 대변되는 그의 인간중심주의 작품세계를 풀어낸다. 영화는 혜원의 대표작인 <미인도> 역시도 그 자신의 자화상으로 해석함으로써 당대 누구보다 여성세계와 색정주의에 집중했던 혜원에 대한 도발적인 설정 아래 새로운 단초를 마련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이러한 참신한 가정보다는 혜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치명적인 애정관계와 그로 말미암은 선정적 노출로 더 화제를 모았다. 강상준 기자
<취화선> 2002
장승업 | 1843~1897 | 조선 | 대표작 <산수도> <호취도>
혼란스런 시대를 살았던 화가 장승업에 대한 영화다. 자신만의 고집으로 가득한 장승업의 재능은 임금의 어명 앞에서도 통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술에 취하고 흥이 오를 때에만 신들린 듯한 붓이 종이 위를 노닌다. 격변기를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대체로 불행하고 고통스럽다. 다만 그 예술적인 성취는 날이 갈수록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장승업역을 맡은 최민식의 취한 연기가 일품이다. 유주하 기자
<파리의 고갱> Oviri, 1986
유진 앙리 폴 고갱 | 1848~1903 | 프랑스 | 대표작 <황색의 그리스도> <타히티의 여인>
오랜 시간을 타히티에서 보낸 후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삶은 척박하다. 영화는 부인과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생활인으로서의 고갱과 타히티를 눈 안에 담은 화가로서의 고갱을 병치시킨다. 젊은 가정부나 타히티 출신의 여인이 등장해 고갱을 위해 누드모델을 자임한다. 덕분인지 국내 비디오 출시제목이 <누드가 있는 풍경> 이었다. 원제 ‘오비리’는 고갱의 조각으로 널리 알려진 타히티여신의 이름이다. 유주하 기자
<빈센트> Vincent & Theo, 1990
빈센트 반 고흐 | 1853~1890 | 네덜란드 | 대표작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고흐의 일대기를 로버트 알트만이 묘사했다. 고흐의 살아생전 그의 작품을 이해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던 동생 테오와의 우정, 창부 시엥과의 동거, 폴 고갱과의 반목 등 언제나 정신적으로 위태로웠으며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고흐의 일생을 그의 강렬한 색채에 힘입어 표현해낸다. 고흐 역을 맡은 팀 로스의 호연이 누구보다 외롭고 척박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에 대한 명징한 해석을 더한다. 강상준 기자
<클림트> Klimt, 2006
구스타프 클림트 | 1862~1968 | 오스트리아 | 대표작 <키스> 등
라울 루이즈 감독은 프랑스 파리에서 빛을 발한 클림트의 황금빛 환상의 근원을 죽음을 앞둔 그의 분열된 정신세계에서부터 풀어나간다. 영화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고국 오스트리아에서는 냉대 받던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 그리고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희대의 난봉꾼으로서의 클림트를 조명하며 그의 분열된 자아로부터 화려한 작품과 비범한 인생을 추출해낸다. 관능적 여성에 집착했던 그의 작품들이 매순간 혼돈에 꿈틀대던 예술가 클림트의 정신세계를 거치며 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쌓아간다. 강상준 기자
<로트렉> Lautrec, 1998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1864~1901 | 프랑스 | 대표작 <물랑 드 라 가레트에서> <물랑 가의 살롱에서>
19세기말 특유의 자유로움과 대담함으로 세계의 중심에 섰던 프랑스 연예계를 배경으로 툴루즈 로트렉의 삶을 재구성한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에 다리 불구가 된 로트렉은 사창가가 있는 몽마르트에 화실을 차린 후, 극장식 술집의 무희들을 뮤즈로 삼아 독특한 창작활동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여류 화가 쉬잔 발라동이 등장하고 둘은 짧지만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다. 유주하 기자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988
카미유 클로델 | 1864~1943 | 프랑스 | 대표작 <왈츠> <사쿤탈라> 등
천재 조각가 로댕의 연인이었던 19세기 여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 영화.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은 사제지간이자 24살 나이차의 연인.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관계 이상으로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던 사이다. 로댕과의 관계를 숨기며 재능을 키우던 카미유 클로델은 세간에 그와의 관계가 알려지며 여성 예술가로서의 힘겨운 홀로서기에 들어선다. 그러나 로댕과의 결별 이후 우울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인 말년을 보낸다. 이자벨 아자니는 뛰어난 재능에 오히려 발목을 잡힌 광기 어린 예술가로 분해 베를린과 세자르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강상준 기자
<피카소> Surviving Picasso, 1996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 | 1881~1973 | 프랑스 |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
누구나 알고 있는 피카소라면 스페인 출신의 화가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입체파의 시대를 연 선구적 예술가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공산주의자였음에도 자본주의의 수혜를 크게 입은 그의 역설적 면모와 더불어 지나친 여성편력에 집중한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을 거치며 사랑을 나누기보다는 정복하는 데 여념 없던 늙은 예술가의 이중적인 모습이 영화 <피카소>의 골자. 앤서니 홉킨스가 ‘마초’ 피카소로 분했다. 강상준 기자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Little Ashes, 2008
살바도르 달리 | 1904~1989 | 스페인 | 대표작 <안달루시아의 개> <기억의 지속>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리고 영화감독 루이스 브뉘엘과 교우했던 살바도르 달리의 젊은 시절을 재구성한 영화.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살바도르 달리는 로르카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오묘한 동성애 감정에 빠진다.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이는 살바도르 달리의 자서전에도 언급된 내용이다. “로르카는 나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 남색가가 아닌 나에게도 남색가인 그에게도 비극이었지만 어쨌든 관능적인 사랑이었다” 유주하 기자
<프리다> Frida, 2002
프리다 칼로 | 1907~1954 | 멕시코 | 대표작 <두 명의 프리다> <내 마음 속의 디에고 자화상>
풍파 많은 인생을 살았던 일자 눈썹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사랑과 사고(정말 자동차 사고였다)를 남미풍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프리다 칼로는 행복의 순간마다 그녀를 좌절케 하는 불행과 고통을 작품 활동에 대한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다소 공식화된 설정이 지루하지만 미간을 까맣게 채운 셀마 헤이엑이 프리다 칼로를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외모만 보더라도 판박이다. 유주하 기자
<이중섭> 1974
이중섭 | 1916~1956 | 한국 | 대표작 <흰소> 등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이중섭의 전기 영화.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던 이중섭은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 한국전쟁 때 월남한다. 이후 그는 그림 재료를 살 수조차 없는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며 정신분열증을 앓는 와중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반복한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창작에 매달리던 그의 말년은 밀린 병원비 청구서뿐. 1974년 대종상에서 우수작품상과 이중섭 역의 박근형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상준 기자
<폴락> Pollock, 2000
잭슨 폴락 | 1912~1956 | 미국 | 대표작 <No.31> <서부로 가는 길>
여류 화가 리 크레이즈너는 무명의 알콜중독자 화가 잭슨 폴락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경력을 포기한 채 잭슨 폴락의 성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액션 페인팅으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추상표현주의의 거목 잭슨 폴락이 사실은 한 여인의 지극한 사랑으로 성공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그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니 만큼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각각 폴락과 리를 연기하는 에드 해리스와 마샤 게이 하든의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유주하 기자
<팩토리 걸> Factory Girl, 2006
앤디 워홀 | 1928~1987 | 미국 | 대표작 <마릴린 먼로> 초상화, 캠벨수프캔 등
앤디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의 이야기. 팝아트의 기수 앤디 워홀, 그의 예술작업의 중심이었던 ‘팩토리’에 합류한 에디의 눈을 통해 60년대 흐름을 주도했던 예술가 그룹의 도발적인 행동들이 펼쳐진다. 영화 역시 앤디 워홀의 느낌을 그대로 수용해 빠르고 경쾌하며 발랄한 편집으로 일관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어야 했을 여인의 ‘몰락’에 초점을 드리운 영화는 60년대의 명암에 대한 소녀의 관찰기로 눈부시게 반짝이다 무섭게 저문다. 강상준 기자
<바스키아> Basquiat, 1996
장 미셸 바스키아 | 1960~1988 | 미국 | 대표작 <무제: 붉은 남자> 등
27세에 요절한 뉴욕의 그래피티 화가 바스키아의 삶을 동료화가이자 영화감독인 줄리앙 슈나벨이 영화화했다. 길거리 벽을 캔버스 삼아 낙서로 꿈을 키워나가던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과 관계 맺은 이후 세간에 이름을 드날린다. 그러나 뒷골목 세계에서 약물과 함께 했던 그의 생은 연인과의 이별, 그리고 앤디 워홀의 죽음 등으로 다시금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영화 그 자체가 바스키아의 예술혼에 대한 추도식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는 바스키아의 특별한 작품들로 하여금 그의 생을 조용히 응시하도록 이끈다. 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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