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의 대표종목을 꼽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종목을 꼽으시겠습니까? 요즘의 대세를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쇼트 트랙이나 피겨 스케이팅, 어쩌면 스피드 스케이팅일까요?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종목이라면 역시나 스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궂은 날씨 탓에 17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알파인 스키 종목들이 모두 연기되면서 저는 기묘한 기록을 남긴 어떤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에베레스트에서 스키를 탄 사나이>는 1970년 5월 6일, 에베레스트 해발 8000미터 지점에서부터 무려 2000미터에 달하는 스키활강 기록을 남긴 산악인이자 스키어, 미우라 유이치로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입니다. 역시 산악인이자 스키어였던 미우라 케이조의 아들이자, 1964년 7월 18일 이탈리아에서 산악스키활강 부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던 그는 장장 2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90%가 얼음으로 구성된 에베레스트의 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스키활강에 도전합니다. 짐을 들어주는 현지인 셰르파(sherpa)들을 포함한 팀의 규모가 자그마치 180여명. 과학적인 장비와 체계적인 계획은 물론 풍부한 인력들이 그의 도전에 동참합니다.
영화는 미우라의 내레이션으로 자연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한 남자의 감정과 각오를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때로 그 내레이션이란 것이 너무 비장한 나머지 엄숙한 시처럼 들릴 정도이지요. 하지만 그럴 만도 합니다. 에베레스트를 뒤덮은 거대한 눈과 얼음은 순백색의 고요함으로 웅크려 있다가 이내 까마득하게 무너져 내리는 함몰이나 순식간에 입을 벌리는 크레바스의 모습으로 미우라와 그의 동료들을 위협합니다. 자연은 허세를 부리지 않는 법입니다. 미우라와 동료들은 무척이나 조심스럽지만 결국 6명의 팀원들이 함몰 속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팀원들의 죽음과 커져가는 공포 속에서 미우라의 마음은 혼돈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과 에베레스트의 시험 속에서도 그와 그의 동료들은 서로를 북돋습니다. 그들은 같이 운동을 하기도 하고 준비해온 비디오 플레이어를 통해 <7인의 사무라이>를 감상하면서 불행과 공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다소간 혼란에 빠져있었던 미우라의 마음도 점점 더 단단해지고 마침내 영화의 마지막, 희박한 공기와 엄청난 가속에 대비해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낙하산을 장착한 미우라 유이치로는 단 6초 만에 시속 160km에 도달하는 속력으로 2분 20초 동안의 2000미터 활강에 성공합니다. 어떻게 보면 허망할 정도로 짧은 시간의 미끄러짐. 2분 20초 동안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하얀색뿐입니다.
미우라는 고백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산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잊는 기분이 훨씬 만족스러웠다”고 말이죠. 따지고 보면 이 도전의 목적은 2분 20초라는 시간도, 시속 160km라는 속도도, 2000미터라는 거리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록의 경주보다 중요한 것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바로 여기에 스포츠의 정수가 깃들어 있습니다. 진정한 스포츠란 자신의 한계와 극한에 도전하려는 자세와 의지에 대한 것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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