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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첼로를 곁에 둔 여고생 제니(카리 뮬리건)가 낭패스런 표정으로 서있어요. 좀 걱정되는 모습이죠.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고 값 비싼 악기가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때, 적갈색이 곱게 빠진 고급(스러우면서도 적당히 천박한) 차량이 스르륵 다가섭니다. 유리창이 천천히 내려가지요. 선량한 눈빛의 남자(피터 사스가드)가 그녀를 향해 제안합니다. “나는 음악애호가인데 첼로가 젖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첼로만이라도 집까지 실어줄게” 속셈이야 뻔하지만 귀여운 방법. 더구나 한참 호기심이 많을 나이, 평범한 일상에 질려 있는 제니에게 근사한 ‘어른 남자 사람’의 접근은 짜릿한 일입니다(그녀의 또래 ‘소년’ 친구 그레이엄을 보시면 이해가 갑니다. 안타깝게도). 이내 남자는 숙련된 화술을 발휘해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 소녀의 경계심마저 풀어헤쳐버리지요. 제니는 차에 올라탑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옥스퍼드에 가기 위해 공부의 여신이 되려던 어느 소녀가 근사하지만 왠지 모르게 위험해 보이는 성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니 이거 너무 심한 클리셰 아닙니까?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 감히 ‘여고생과 성인남자’라는 테마를 끄집어내다니 이 거침없는 용기는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한단 말입니까. 많은 분들께서 이 익숙하다 못해 진부한, 그리고 삼류 에로영화가 될 수도 있는 사랑 이야기에 못마땅함을 느끼실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인생이 진부한 것을. 우리가 진부함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욕망과 좌절이 보편적인 요소와 상황 속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힘은 새로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밀하게 그려진 진부함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성찰하는 훌륭한 도구인 것입니다. <언 애듀케이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정 훌륭하게 재현된 진부함이요 뛰어난 감각적 경험입니다. 1961년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정교한 묘사는 당시 사람들의 옷과 자동차, 주거생활은 물론 정서와 욕망까지 구현해내는 완벽한 영화적 체험을 이뤄냅니다.

그러나 당혹스러워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밀려오니 말이죠. 딸의 옥스퍼드 진학을 지상 최대의 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허둥대던 제니의 부모가 부유함 앞에서 보이는 천박한(하지만 가엾은) 흔들림을 보세요. 결국 부유함과 권력을 얻기 위한 교육이란 진정한 앎보다는 학력을 위해서 그 실체를 드러낼 뿐이고, 인생의 도처에서는 우리의 젊음과 생기, 심지어는 사랑을 섭취하려는 검은 순환이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말이죠.


<언 애듀케이션>이 완성하는 이 진부한 교육은 역시나 예측한대로 진부한 교훈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함정이 늘 비슷한 곳에 있다면 매번 되풀이 되는 교훈을 복창하는 것이 그리 의미 없는 일은 아니죠. 그리고 그러한 교훈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이 또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사랑이 사랑 같지 않고, 배움이 배움 같지 않은 <언 애듀케이션>의 세계관이야말로 바로 세상의 모습을 낯설게 만드는 데에 가장 큰 힘을 갖고 있으니까요.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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