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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기 쉬우니 똑똑히 들어야 한다. 성희(지진희)란 남자가 라디오에서 이혼하겠다고 선언한 후 집에 가니 아내 영심이 사라지고 없다. 알고 보니 성희가 이혼 선언을 하기 하루 전에 영심이 자길 찾지 말라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 버린 것. 자기가 찬 게 아니라 차였다는 사실에 화가 난 성희는 친한 동생인 동민(양익준)과 영심을 찾아 나선다. 성희를 만나기 전 영심은 동민의 애인이었다. 성희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영심의 오빠, 유곽(이문식)이란 사람이 나타난다. 성희는 유곽을 모른다. 영심에게 오빠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세 남자가 같이 영심을 찾으러 길을 떠난다. 이게 바로 이하 감독이 쓰고 연출한 <집 나온 남자들>의 줄거리다. 이하 감독의 전작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도 줄거리만 들으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이하 감독을 만나 확실히 정리를 하는 수밖에. 장성란 기자(FILMON)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럽다. 즉흥연기가 많은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즉흥연기가 ‘작렬’했다. 배우들이 대사를 좋은 느낌으로 많이 바꿨다. 대부분 즉흥연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캐릭터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졌나?
달라졌다기보다는 훨씬 더 빛이 난다고 할까. 캐릭터에 대해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지진희, 이문식, 양익준 모두 그런 걸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그렇고.(웃음) 그런데도 세 배우 모두 시나리오보다 캐릭터를 훨씬 잘 표현했다.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마음대로 연기하더라. 그 모습을 현장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즐거웠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새롭게 느껴질 만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없었나?
분명히 있었다. 근데 신기한 게, ‘이건 아닌데. 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테이크가 나중에 좋아졌다는 거다.

배우들이 정말 편하게 연기를 주고받는 느낌이다. 지진희, 양익준, 이문식 세 배우의 연기가 너무 잘 어우러진다.
이 영화를 함께 제작한 노동석 감독이 영화를 보더니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저예산 영화에서 어떻게 순서대로 찍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노동석 감독이 마치 순서대로 찍어서 극이 흐를수록 배우들이 점점 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거 같다는 얘기를 했다. 

지진희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하 <여교수>)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함께했다. <집 나온 남자들>의 지성희는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그는 어떤 사람인가?
진지한 것 같은데 가볍고 가벼운 거 같은데 진지한 사람이다.

그럼 이문식은? 유곽은 영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인물인데 역시나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웠다. 
이문식 선배는 연기를 쉽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경력이 많고 관객들한테 사랑받는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까. 늘 하던 대로 연기하는 분인 줄 알았다. 근데 연기의 방법과 인물에 대해 고민을 깊게 하더라. 열정과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의외였다.

유곽이 공기총을 쏘는 장면에서 많이 웃었다. 보통 공기총은 여자들이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건데. (웃음)
유곽이 쉽게 말하면 고등학생한테 맞고 다니는 캐릭터다. (웃음)

양익준의 연기는 전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그런 사람 같다. 
사실 동하 역으로 생각한 후보들이 많이 있었다. 고민이 돼서 지진희에게 전화해 같이 결정했다. 양익준은 <집 나온 남자들>을 하기 전에 배우보다 감독으로 좋아했다. <똥파리>(2009)를 너무 인상 깊게 봐서. <똥파리>를 보고 감독의 분노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아는 양익준은 상상도 못할 만큼 평화로운 사람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분노를 녹일 수 있는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똥파리>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민이 영화판에 들어온 지 10년 된, 오랫동안 데뷔작을 준비한 영화감독이라는 설정은 양익준을 캐스팅하면서 집어넣은 건가?
아니다. 그런 설정은 처음부터 있었다. 나와 내 주변의 영화 하는 친구들 중에 그런 사람 이 워낙 많으니까. 하지만 양익준은 이미 <똥파리>로 감독 데뷔해 전 세계 영화제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동민과는 처지가 다르다. <집 나온 남자들>에서 동민이 여자 배우만 캐스팅되면 된다고 하는데 양익준은 <똥파리>에 김꽃비를 캐스팅해서 대박 나지 않았나. (웃음)

<여교수>와 <집 나온 남자들>에서 계속 교수, PD, 음악평론가, 영화감독처럼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유치하고 속된지 이야기한다. <집 나온 남자들>에서도 겉으로는 성희가 영심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사실 그걸 핑계 삼아 무겁고 지겨운 삶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동민과 유곽이 여행에 함께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누구나 일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항상 일탈을 꿈꾸는 게 아닐까. 내용상으로는 성희, 동민, 유곽 세 남자가 영심을 찾아 나서는 거지만 어느 순간 돌이켜봤을 때 이들에게 여행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영화에 어떻게 집어넣을까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게 보였다면 자연스럽게 묻어난 거 같다.      

로드무비라 길 가는 풍경이 많다. 촬영은 주로 어디서 했나?
거의 전북 전주에서 했다. 원래 시나리오는 유곽이 베트남 가서 한몫 잡으려고 영심이 베트남에 있을 거라고 둘러대서 세 남자가 같이 베트남에 가는 걸로 썼다. 베트남에서 유곽은 성희, 동민이랑 떨어져서 혼자 주식하고 다니는 걸로. 시나리오 쓸 때 베트남 주식 시장이 장난이 아니었거든. 근데 해외 촬영을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시나리오를 몇 번 고쳐서 국내에서 끝냈다.  

두 번째 영화다. 데뷔작 <여교수>와 비교할 때 감독으로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나?
이번 영화는 정말 편안하게 만들고 싶었다. 오랜만에 찍는 영화인데다 결정적으로 워낙 어렵게 들어간 거라. 생각해 보면 분명 영화 찍는 게 재밌어서 영화감독이 된 건데 <여교수>를 찍으면서 영화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집 나온 남자들>을 만들면서 단편영화를 찍을 때처럼 다시 영화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거나 어떤 형식을 실험하지 않았다. 배우들에게 많이 맡겼고 보면서 즐겼다.

확실히 죽음을 그리는 방식이 달라졌다. <여교수>는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죄의식을 건드리는데 <집 나온 남자들>은 죽음을 더없이 애잔하게 바라본다. 의도한 건가?
평화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 이전에 내 삶이, 내 생각이 평화로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면도 많이 다르다. <여교수>는 인물의 머리 위에서 찍는 화면이 많은데 <집 나온 남자들>은 눈, 코, 입을 클로즈업으로 화면 가득 잡는다. <여교수>가 한바탕 소동극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면 <집 나온 남자들>은 영화가 세 남자와 함께 차에 타고 같이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그거다. 그거지, 뭐. 생각한 대로 써 주길 바란다. (웃음) 

하지만 <여교수>도 <집 나온 남자들>도 전형적인 장르영화가 아니긴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일본 코미디에 가깝다고 할까?
<집 나온 남자들>이?

두 영화 다 그렇다. 인물이 어떤 행동을 끝냈는데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 그 인물을 바라보면서 여운을 남긴다든지 영화 스스로 웃기보다 영화는 가만히 있으면서 관객들을 킬킬거리게 한다든지 하는 점이.
내가 그런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근데 <집 나온 남자들>도 그런가?

안 그렇게 만들려고 했나?
안 그렇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닌데 좋아하는 걸 최대한 빼려 했다. (웃음)

그럼 <집 나온 남자들>에서 감독으로서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뭔가?
최고의 배우, 최고의 스태프라고 해도 감독의 의도를 100퍼센트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가 감독의 의도를 빗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들이 영화에 담기기도 한다. 영화 찍는 일이 원래 그렇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쓴 시나리오대로 찍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집 나온 남자들> 촬영장에서 매번 어떻게 하면 새로운 애드리브를 하고 캐릭터를 좀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를 그저 웃기기만 하는 코미디로 느끼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내가 그러니까. 감독으로서 그걸 지키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청난 고집을 피워서 그걸 지켜냈다든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다든가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촬영이 아쉬운 날도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잘 된 날도 있었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건 그 가운데서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찍을 때마다 중심을 잊지 않는 거.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정말 아니다 싶을 때는 한 번 더 찍고. 그거 말고는 별로 한 일이 없다.

세상이 흔히 영화감독을 작가주의 감독과 상업영화 감독으로 구분하지 않나.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흔히 영화에 뭔가를 집어넣어야 작가주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난 거꾸로 어떤 영화든 당연히 감독의 작가적 성향이 들어간다고 본다. 억지로 빼지 않는 이상. 어쨌든 영화는, 감독이 빈 종이 위에 혼자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니까. 그래서 굳이 어떤 영화는 작가적이고 어떤 영화는 작가적이지 않다고 나눌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단지 흥행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들이 영화에서 자기 생각을 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주의 감독이라든가 내 영화가 작가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럼 흥행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기 생각을 빼기도 하나?
나도 계속 흥행이 잘 되는 영화를 찍고 싶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배우는 게 있으니까 다음엔 더 잘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계속 영화를 하는 거지. 영화를 계속 찍으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찍어야겠지. 근데 그게 참 모순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영화 너무 슬펐어요.” “영화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이야기해 주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라는 게 어쨌든 감독한테서 나오는 건데 슬픈 영화는 감독이 제일 슬프게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영화 내내 영심이 나오지 않다가 끝에 아름답게 등장하지 않나. 보면서 끝까지 영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영심의 얼굴을 보여준 건 간단한 이유에서다. 마지막에 영심이, 세 남자가 자기한테 남긴 캠코더 영상을 볼 때 영심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나. 아, 이게 이 사람한테 하는 얘기구나, 영심이 진짜 존재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 배우에게 영심 역을 맡긴 거다. 영심이 나왔을 때 관객들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그거랑 세 남자가 돌아다니는 모습만 보는 거랑 느낌이 다를 것 같았다.       

특별히 <집 나온 남자들>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나?
간단히 말해서, 무슨 이유에서건 집 나온 사람들이 보고 집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들어가도 될 것 같다. 영화의 주제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

마지막으로 물어 보자. 스스로 충무로에서 특이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오히려 특이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걸 자꾸 빼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어렸을 때 특이하단 말 좀 듣지 않았나?
아니. 나 안 그랬다. (웃음)

그럼 녹용으로 때리고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건가? 
글쎄, 그거야 뭐.

솔직히 어렸을 때 특이하단 말 한 번은 들었지?
안 들었다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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