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라는 <식스 센스>의 역사적인 반전(反轉) 이후 우리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이 오직 반전뿐이었다면 <식스 센스>는 명백히 실패한 영화라고 단정해도 좋다. 그러나 <식스 센스>의 그 살인적인 반전이 단순히 강도 높은 충격을 선사하기 위한 장치에 머물지 않는, 아집과 집착을 설명하기 위한 절정의 순간이었기에 <식스 센스>는 그 소문난 반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샤말란의 (그리고 반전영화의) 상징쯤으로 각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식스 센스>를 거쳐 <언브레이커블> <싸인> <빌리지> <레이디 인 더 워터> 그리고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반전을 떼고 본 샤말란의 색채는 여전히 특별하다.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배합하고 때때로 동양적인 소재를 (그 자신이 인도계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의 관점으로 녹이는 이 전도된 기묘한 오리엔탈리즘은 영화의 고풍스럽고 위태로운 분위기와 결합해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향취를 풍긴다. 특별한 소재를 영화화하는 샤말란의 재주는 언제나 흥미롭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원숙하고 정제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 <식스 센스>만의 특징이 아니라 근작인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 두루 걸쳐 있는 공통된 특징인 동시에 자타가 의식하는 그 기막힌 반전의 충격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의미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샤말란을 일컬으며 의식/무의식적으로 ‘반전’을 떠올리는 것처럼 때때로 그의 영화는 <식스 센스>의 아성을 이어가거나 얽매이거나 또는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반전강박증과의 싸움의 역사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언브레이커블>을 향해 <식스 센스>를 능가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강도 높은 반전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뱉어낸 수많은 실망감은 이를 가시화한 최초의 예가 된다.
특히 독특한 소재를 그 소재에 가장 걸맞지 않을 것 같은 의외의 방법으로 풀어나간 점은 이 영화에 크고 작은 가치들을 불어넣는다. 그 의외의 방법이란 초능력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어두침침하고 살을 에는 긴장감으로 차고 넘치는 샤말란 세계를 무대 삼고 있다는 점이며, 동시에 이곳에서 코믹스 히어로 스릴러라는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식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는 점이다. 샤말란의 영화답게 신비한 퍼즐게임에 뿌리를 둔 영화는 유리인간 일라이저(사무엘 L. 잭슨)의 허무맹랑한 이론을 면밀히 전개시키며 관객의 동조와 감화를 구한다. 감기 한번 걸린 적 없고 평생 다친 적 한번 없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인간을 슈퍼맨화하려는 이 만화적 발상의 실체화 과정은 실제로도 ‘뻔한 반전’이나 ‘약한 반전’ 따위로 가벼이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진중하다. 미스터리와 반전에 깊이 기댄 나머지 잃지 않아도 될 것을 잃어버린 부분들이 아쉽기는 하지만 <식스 센스>의 반전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죄 당할 이유는 영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이었다면(샤말란의 영화인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라도 당연히 의식하지 않았을까?) 등장인물들이 외계인의 존재를 긍정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독가스를 뿜는 외계인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내는 결론보다는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세계 각지의 UFO난입 소식과 외계인의 잘린 손가락을 봤다는 이유로 가장 신념 있어 보이는 주인공 그레이엄(멜 깁슨)이 외계인을 긍정하며 공포의 대상을 상정하는 모습에는 조작된 공포와 그 미지의 근원을 향한 영화의 정체성 거의 전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종반부 외계인의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는 장면은 여느 샤말란 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방식, 즉 오히려 가장 직접적으로 외계인 침공물이라는 단순한 장르영화를 완성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는 외계인 지구침공이라는 사건마저 공포의 색을 덧입히는 샤말란 특유의 방식과 그 특별한 분위기에 미세한 오점을 드리운다. 지나치게 정직하게, 또 그럼으로써 맥 빠지는 결말로 치닫게 된 <싸인>의 최후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결국 반전을 기대하던 관객과 이를 끝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샤말란의 계산착오였으니 여기엔 반전강박이 만들어낸 필요치 않은 얼룩들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굳이 반전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면(<빌리지>까지 이르고 나니 이미 샤말란과 반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듯하다), <빌리지>는 처음부터 뻔한 길을 밟아 나갈 뿐이다. 그럼에도 범죄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현대문명을 피해 사회와 격리된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거짓말이 새로운 범죄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한 마을의 갖가지 미스터리한 문화가 정신지체아인 노아(애드리안 브로디)가 행한 직접적 폭력보다도 수백 배 더 폭력적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스토리 또한 정직하고 수려하다. 지팡이 하나에 의존해 숲을 가로지르는 시각장애인 아이비(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처절한 고난은 폭력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야말로 주범이자 진범이며 또한 바로 이것을 또 하나의 폭력이라 규정하면서 이를 호러라는 장르 안에 충실히 구조화한다. 크고 작은 미스터리, 그리고 굳게 믿고 있던 진실들을 하나둘씩 전복해가는 크고 작은 반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굳이 반전의 대명사로서 샤말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빌리지>는 매력적인 지점들을 잔뜩 끌어안고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다만 <빌리지>를 향한 수많은 혹평과 세간의 시선이 말해주듯 영화의 실패에 관한 책임이 이제는 순전히 샤말란에게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재료는 여전히 샤말란 자신의 세계 안에 존재하던 것들이다. 초자연적 존재, 초자연적 사건, 음산한 분위기, 한 개인이 어떤 사건을 겪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 등. 특별한 반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바다의 요정 스토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를 블루 월드로 돌려보내기 위해 아파트 주민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흥미로운 게임을 지켜보는 듯하다. 특히나 동화에 불과한 허황된 이야기(사실은 유치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사뭇 진지한 투로 현대인의 삶과 호러의 구조 아래 옮기는 그의 야심은 여전히 독창적인 영지 위에 그를 분류케 이끈다.
변변한 시사회도 없이 13일의 금요일 전 세계 동시개봉으로 공개된 <해프닝>의 소재 역시 충격적이다. 멀쩡히 길을 걷던 사람들이 우뚝 서있길 수 초, 이후 갖가지 자해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에는 히치콕의 <새>에 등장하는 새떼들이 이유 없이 사람을 습격하는 것 못지않은 기괴한 공포가 서려있다. 원인을 추측하건대 인간을 위험인자로 인식한 식물들이 독소를 내뿜어 인간으로 하여금 자해를 방지하는 신경물질을 억제해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것. 하지만 이것 역시 그저 여러 이론들 중 하나일 뿐 끝내 분명한 원인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저 멀리 벌판에서 불어오는 보이지 않는 바람에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뛰어다닐 뿐이다.
<해프닝>은 일련의 공포영화와는 조금 색다른 방식의 공포를 택한다.(어쩌면 완전히 전복된 방식으로 공포를 선사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프닝>에는 패닉에 휩싸인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사고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공포영화나 재난영화의 클리셰는 고작 단 한 번 등장하는데 그친다. <해프닝>의 등장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괴하고 섬뜩한 갖가지 방법으로 자해하는데 그친다. 즉,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오직 그 자신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다. 멜로와 위트가 가미된 부분도 여전히 샤말란 식의 정제과정을 거쳐 완성되고 있으며 그는 이런 여타장르영화의 익숙한 화법마저 모조리 활용하며 히치콕 영화와 같은 고전 호러영화의 틀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화법을 구사하려 한다. 시종일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히 고정된 긴장감은 이완을 모르는 근육처럼 영화 전체를 힘겹고 불편하게 지배하고 있으며, 아무런 실마리 없이 허허벌판에서조차 무한한 고립감을 느껴야만 하는 등장인물들의 절망은 여과 없이 묘사되는 <해프닝>의 백과사전식 자살법을 능가할 만큼 영화의 백미를 이룬다.
당연히 이 사태의 분명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영화는 여느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서늘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샤말란의 트레이드마크(?)인 이렇다 할 반전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일정 수준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긴장감에 끌려 다니다 맞이하는 결말치고 허탈하기 짝이 없다는 의견도 지배적인 듯하다. 그러나 생소한 초자연적 소재를 샤말란 자신의 강점인 특유의 신비롭고 음산한 분위기 안에 녹이며 이를 고전 공포영화의 흐름으로 풀어가는 <해프닝>은 마치 반전강박증과의 싸움에 지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영리한, 혹은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될 만큼 여전히 독창적인 힘을 과시한다.이로써 M. 나이트 샤말란은 마치 반전(反轉) 영화에 대한 세간의 시선과 편견에 대해 더 이상 그 자신도 관객도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듯하다. 매 영화마다 뚜렷한 메시지를 심으며 이를 서스펜스 게임에 절묘하게 섞는 그의 능력은 비록 편차는 존재했을지언정 그 색깔만큼은 언제나 뚜렷했다는 것이 그 분명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반전강박증과의 투병생활 중 위험한 순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빌리지>에 배치한 반전이 분명 메시지 전달을 위한 필연적인 배치인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물론 샤말란 자신도 여전히 반전에 기댄 모습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충격적인 반전을 통한 노림수에 의존하기보다는 스토리에 유려히 스며들 수 있는 반전을 담아내려 했다는 사실이며, 이는 <해프닝>을 통해 반전강박증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으로 증명된다. 샤말란의 다음 영화 역시 신비한 퍼즐게임을 주도하고 또 음산한 분위기로 잔뜩 긴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지만 앞으로는 <식스 센스>의 아성에 정복당하지 않은 전혀 다른 귀결들로 인해 그는 여타의 편견들을 불식시키며 또 다시 자신만의 스타일에 집중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도 샤말란 식 장르영화를 기다리게 될 결정적인 이유다. 아니,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야만 한다. 강상준 기자 (FILMON)
'FEATURE 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만화, 안 보고 떠들지 마라 - 영화저널이 만화를 대하는 방법 (20) | 2008/07/07 |
|---|---|
| <강철중> 식 흥행 패러다임엔 미래가 없다 (8) | 2008/06/30 |
| <식스 센스>에서 <해프닝>까지 - 반전강박증 투병기 '샤말란 연대기' (3) | 2008/06/16 |
|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나니아 원정대, 두 개의 왕국, 그리고 왕의 귀환 (12) | 2008/05/19 |
| <스피드 레이서>, <매트릭스> 떼고 보기 (17) | 2008/05/13 |
| IPTV가 기가 막혀 (9) | 2008/05/12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