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지붕뚫고 하이킥>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쉬웠다. 끝이라니. 오후 7시 45분마다 다가올 금단증상을 상상하자니 어느 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었을지도. ‘빵꾸똥꾸’가 저속하다는 마당에 또 누군가의 눈 밖에 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나마 제 수명을 다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터. 그러니까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지붕뚫고 하이킥>이 끝난 이 시점에서 한국의 시트콤, 그 진화의 과정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짧다하면 짧고 길다하면 긴, 한국시트콤의 역사를 휘휘 건너가며 주마간산식으로 되짚어 봤다. 유주하 기자(FILMON)
<오박사네 사람들>
드라마 제작비의 10분의 1이라던가, 한국시트콤의 토대는 아마도 그렇게 경제적인 이유 위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물론 코미디와 드라마가 공존하는 시트콤이야말로 재능 있는 작가들의 야심을, 그리고 웃음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더없이 좋은 형식이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리스크를 감당하는 데에 있어, 낮은 제작비만큼의 매력적인 이유가 따로 있을까. 바로 그렇게 1993년 SBS <오박사네 사람들>이 한국시트콤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SBS가 주도한 여명기의 한국시트콤들은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으로 모든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가족극, 홈드라마의 형태를 그 얼개로 삼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까지 사이좋게 3대를 함께 출연시키는 가족시트콤들은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일상을 바탕으로 좀 더 익숙하고 편안한 코미디를 구사하는 것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LA아리랑>(SBS, 1995), <오박사네 사람들>(SBS, 1996), <순풍 산부인과>(SBS, 1998)등 90년대 시트콤들은 이러한 가족중심의 스토리텔링 안에서 나름의 전통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한국시트콤의 새로운 물결
<남자 셋 여자 셋>
그러한 중에 출연한 것이 <남자 셋 여자 셋>(MBC, 1996>이었다. 당시 최고의 스타PD 송창의와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호령하던 신동엽, 그리고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었던 송승헌이 함께한 <남자 셋 여자 셋>은 기존의 시트콤들과는 달리 특정연령(1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초반?)을 목표로 특화된 웃음과 드라마를 전개했다. 그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첫 선을 보인 학원, 청춘시트콤은 <논스톱>(2000), <뉴논스톱>(2001)으로 계보를 이어가며 한국시트콤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SBS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SBS, 2000), <똑바로 살아라>(SBS, 2002) 등 여전히 가족시트콤이란 단일 장르에 매진하고 있을 동안 MBC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에 주력했다. 이미 <남자 셋 여자 셋>으로 학원, 청춘시트콤을 안착시킨 MBC는 본격 성인시트콤을 표방한 <세 친구>(MBC, 2000)를 출범, 불리한 방영시간(밤 11시)에도 불구하고 40%에 육박하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가족시트콤과 청춘시트콤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또 다른 연령대(아마도 30, 40대), 또 다른 취향의 시청자들을 본격 성인유머로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세 친구>가 한국시트콤계에 성인유머를 불러들인 작품이라면, <안녕, 프란체스카>(MBC, 2005)는 소외된 사람들의 감성을 본격화시킨 작품이다. 뱀파이어가족을 서울 한복판에 위치시킨 엉뚱한 설정은 그간 거의 완전히 무시되곤 했던, 소수자의 감성을 환기하는 데에 더없이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노도철PD는 소수자의 감성 속에 위치하는 낯선 감정과 유머를 대중의 관심과 재미로 바꾸어 내는데 성공했다. 특화된 시트콤이라면 <올드미스 다이어리>(KBS, 2004) 역시 빠질 수 없다. KBS의 유일한 시트콤 성공사례인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고연령, 미혼 여성을 집중 공략하는 섬세한 설정을 바탕으로 가부장제 사회 미혼 여성의 애환을 뛰어난 코미디와 성숙한 성찰 안에 감싸 안았다.
최종병기, 하이킥 시리즈
<지붕뚫고 하이킥>
그리고 <거침없이 하이킥>(MBC, 2006)이 등장했다. 얼핏 그렇고 그런 가족시트콤의 외형을 취한 <거침없이 하이킥>은 그 겉모습은 비록 진부했을지 모르지만 그간의 한국시트콤이 축적한 노하우와 갖가지 설정, 유머들을 좀 더 노련하고도 뛰어난 구성과 연출력아래 집대성한 작품이었다. 이는 <지붕뚫고 하이킥>(2009)까지 이어져 좀 더 무르익은 시선과 완성도를 갖췄는데, 평범한 가족의 틀 안에서 세대갈등은 물론, 시대가 당면한 사회, 계급의 문제, 그리고 소수자의 영역에까지 닿아있는 매캐한 유머가 앙증맞은 캐릭터들과 절묘한 조화를 빚어냈던 바. <지붕뚫고 하이킥>이야말로 한국시트콤의 역사와 함께한 김병욱PD(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LA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왠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에 참여한 한국 시트콤계의 살아있는 역사다>)의 역작으로서 가히 한국시트콤계의 최종병기라 칭할만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본 기사는 SKT에서 발행하는 정기 제작물, Tissue 2010년 3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Tissue는 SKT 고객들의 문화적인 공감대를 위한 공간으로서 eat, travel, drink 등 8개의 테마로 매월 발행되며 A4 사이즈 보다 작아 소지해 걸어 다니며 읽을 수 있는 walk magazine 형태의 인쇄물입니다. Tissue는 신촌과 홍대, 강남역과 삼성동, 가로수길, 압구정동, 대학가 등의 레스토랑, 카페 등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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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부터 94년 까지 방영했던 김승수감독의 '김가이가'(MBC)는 빠졌군요.
2010/04/29 07:56